호르무즈해협 봉쇄에 산유국들 "석유 생산 중단" 언급 WTI 선물, 12% 이상 폭등해 90달러 돌파스테그플레이션 우려 고조에 美 증시 일제 하락 반도체주 급락, 마이크론 6%대 폭락유가에 더 취약한 韓 경제, 타격 더 불가피 스테그플레이션 넘어 디플레까지 우려할 판
  • ▲ 지난 6일 서울 시내 주유소 모습. /연합뉴스
    ▲ 지난 6일 서울 시내 주유소 모습. /연합뉴스

    미국의 이란 공격 이후 우려됐던 경제적 타격이 빠르게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글로벌 관세 폭격 여파로 가뜩이나 취약해지던 경제가 이란 전쟁이 덮치면서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는 것이다. 

    가장 견조한 경제를 자랑하는 미국에서 지난달 신규 일자리가 '쇼크' 수준으로 급감한 것으로 나타난데 이어, 호르무즈해협 봉쇄에 산유국들의 생산 중단 가능성이 언급되면서 유가가 하룻새 12% 폭등한 것이다. 말 그대로 고물가와 경기 침체가 동반하는 스태그플레이션의 우려가 미국 경제에 급부상하기 시작했고, 미국의 금융시장은 이제야 이를 본격적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6일(현지 시각) 뉴욕증시에서 다우는 0.95%, S&P500은 1.33%, 나스닥은 1.59% 각각 하락했다. 7대 기술주는 엔비디아가 2.98% 급락하는 등 일제히 하락했다. 마이크론테크놀로지는 6.58%나 폭락했다. 

    이란 전쟁의 극적인 변화가 없을 경우 오는 9일 한국 금융시장은 '블랙 먼데이' 상황을 벗어나기 힘들어 보인다. 

    미국 경제를 우선 타격한 것으로 고용시장이었다. 미국 경제 전문가들은 이날 고용 보고서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는데, 이들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수준으로 나왔다. 

    노동통계국은 2월 비농업 부문 신규 일자리가 9만2000명 감소했다고 발표했는데, 이는 1월의 12만6000명 증가와는 확연하게 다른 그림이었다. 

    발표에 앞서 다우존스는 5만 명 증가를 예상했는데 증가는커녕 대폭 감소로 나오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인 연출된 것이다. 당연히  실업률도 예상치(4.3%)보다 높은 4.4%로 나왔다. 

    고용 시장이 이렇게 급격하게 위축된다는 것은 미국이 기준금리를 빠르게 내려야 한다는 얘기이고, 대응 가능한 상황이다. 증시는 오히려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에 적어도 기술주 만큼은, 오르는 것이 상식이다. 

    하지만 이는 평상시 그림이다. 이란 전쟁 앞에서 이런 시나리오는 의미가 없었다. 

    불을 끼얹은 것은 사드 알-카아비 카타르 에너지 장관이었다. 그는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돼 산유국들이 며칠 내 생산을 중단할 수밖에 없다. 유가가 150달러를 돌파할 것"이라는 끔찍한 경고장을 내밀었다. 

    그의 발언이 니온 이후 서부텍사스산중질유(WTI) 선물은 무려 12% 이상 폭등해 단숨에 90달러 위로 치솟았다. 2023년 9월 이후 처음인데 이제 이런 비교도 의미가 없을 수 있는 상황이 되고 있다. 

    고용 쇼크는 경기 침체를 의미하고, 유가 상승은 이른바 '코스트(비용) 푸시 인플레이션'을 말한다. 인플레이션과 경기 침체가 동시에 일어나는 전형적인 스태그플레이션 상황이다. 


  • ▲ 트럼프 대통령이 6일(현지시간) 워싱턴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열린 대학 스포츠 관련 원탁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 트럼프 대통령이 6일(현지시간) 워싱턴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열린 대학 스포츠 관련 원탁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트럼프 미 대통령은 더 암담한 말을 했다. 그는 6일(현지시각) 이란의 "무조건 항복 이외에는 어떤 것도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전쟁 장기화를 대놓고 우려했다. 

    미국 경제가 아직 4% 이상의 성장률을 예상할 정도로 견조하다지만, 이는 언제든 돌변할 수 있다. 현재 미국의 경제 구조상 성장률이 2% 안팎으로만 내려와도 일자리 등에서 감당하기 힘들다. 스태그플레이션 상황에서는 금리를 내리려 해도 물가 때문에 내리지 못하게 된다. 그나마 미국는 비축류 방출 등으로 대응할 수 있다지만, 다른 나라들은 쉽지 않다. 

    특히 한국은 말 그대로 무방비 상황으로 치닫게 된다. 이미 세계 경제의 양 축인 중국은 디플레(경기 대침체)의 그림지가 짙게 드리우고 있다. 미국이 베네수엘라에 이어 이란산 원유까지 막게 돼 중국은 첩첩산중이다. 이런 마당에 세계 경제의 견인차 역할을 해온 미국마저 침체 곡선을 그리면 한국 경제는 운신하기가 더 힘들어진다. 

    이재명 정부와 한국은행은 우리 경제 성장률을 2% 이상으로 높여 잡은 상황. 이란 전쟁이 길어지면서 사실상 이를 맞추는 것은 힘들어지고 있다. 반도체 가격이 기하급수적으로 오르고 있다고 하지만, 미국 경제가 침체되면 하루아침에 상황은 달라진다. 대형 빅테크들이 데이터센터 등 설비 투자를 늦출 수밖에 없고, 이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에 치명상은 입힌다. 스태그플레이션 우려에 이날 미국의 반도체 기업 주가가 더 크게 반응한 까닭이다. 반도체 지수는 엔비디아가 2.98% 급락하는 등 3.93% 급락했다.

    우리 주식 시장은 삼성전자가 25%, SK하이닉스가 15%, 반도체 주변 주식이 15% 등 전체 시총의 55% 가량을 반도체가 메우고 있다. 거시 경제 역시 '반도체 공화국'이라 할 정도로 경제 전체가 대만에 버금갈 정도로 반도체 사슬로 연결돼 있다. 반도체 호황 덕분에 이재명 정부의 순항이 가능했다. 
  • ▲ 미국 동북부 일리노이주의 한 식료품점에 구인 포스터가 게시돼 있다. /AP 연합뉴스
    ▲ 미국 동북부 일리노이주의 한 식료품점에 구인 포스터가 게시돼 있다. /AP 연합뉴스

    이런 공식이 단숨에 깨질 우려에 처하게 된 것이다. 더욱 걱정은 스태그플레이션 속에서 우리 정부가 꺼낼 처방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비축류도 충분하다고 말하지만, 실상을 보면 여의치 않다. 기준금리는 2.5%에서 상향 조정하는 예상까지 나왔었지만, 이는 이제 불가능해졌다. 그렇다고 물가가 치솟을텐데 경기 악화를 막으려 금리를 내리기도 힘들다. 정부가 기업들에게 가공 물가를 올리지 말라고 찍어누르는 것도 한계가 있다. 치솟는 유가 앞에서 정유소들을 상대로 '최고 가격제'를 시행하는 것도 무리가 있다. 

    경제 침체 속도가 빨라지기에 앞서 정부는 재정 확대의 유혹을 느낄텐데, 이는 물가를 더 끌어 올리는 최악의 경기 처방이다. 최악의 그림이 도래하기 전에 현 정부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폴리시 믹스(정책적 조합)'을 빨리 찾아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