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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그러니까 내가 3살 때 아버지가 북한으로 납치됐다. 그 때 나는 북한이 어떤 곳인지도 몰랐고, 아버지가 왜 납치됐는지도 몰랐다. 내 여동생은 겨우 100일이었다.
아버지를 찾는데 평생을 쏟았다. 이제 겨우 희망이 보인다. 42년만이다.
왜 나의 아버지는 그토록 그리는 조국으로 돌아오지 못하나? 자유를 찾아 남하한 북한 주민도 다 돌려보내 주는 정부가 왜 납치된 우리 국민은 생사조차 확인하지 못하는가? 미국은 전사자의 유해까지 찾아주는데….
1969년 KAL기 납치 사건에서 잃은 아버지 황원(75) 씨를 애타게 찾는 황인철 씨의 사연이다.
KAL기 납치사건은 1969년 12월 11일 강릉에서 서울로 향하던 대한항공 YS-11기가 북한 고정간첩 조창희에 의해 대관령 상공에서 납치, 함경남도 원산 근처 선덕비행장에 강제착륙된 사건이다. 승객 47명과 기장을 비롯한 승무원 4명 등 51명 가운데 사건이 발생 후 66일만인 1970년 2월 14일 승객 39명은 판문점을 통해 귀환했지만, 승무원 전원과 승객 7명은 끝내 한국땅을 밟지 못했다.
미귀환자는 기장 유병하, 부기장 최석만, 여승무원 성경희 정경숙, 승객 채헌덕 장기영 임철수 황원 김봉주 이동기 최정웅 등 11명.
사건 이후 피해자 가족들은 백방으로 송환을 요구했지만, 쉽지 않은 일이었다. 정작 사건의 전말조차 밝히지 않는 정부에 울분만 쌓여갔다. -
- ▲ 1969년 KAL기 납치피해자 가족회 대표 황인철씨가 정부청사 앞에서 외롭게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피해자 가족회 대표 황인철 씨는 “말 그대로 ‘맨땅에 헤딩’이었다. 정부는 피해자 가족들의 말은 들어주지 않고 ‘기다리라’는 말만 40년을 넘게 반복해왔다”고 성토했다.
이처럼 수십년간 피해자 가족들에게 아픔을 아로새긴, 더욱이 정부가 제대로 된 해결책 한번 내놓지 못해 영원히 미제로 남을 것만 같았던 이 사건이 드디어 해결의 실마리를 보이기 시작했다.
정부가 최초로 납치 피해자 가족회와 간담회를 열기로 한 것이다.
‘1969년 KAL기 납치피해자 가족회’에 따르면 오는 23일 국회에서 통일부-외교통상부 실무관들과 가족회가 이 사건에 대한 간담회가 열린다.
북한 인권 포럼을 통해 한나라당 황우여 원내대표의 주선으로 이뤄진 이번 간담회는 사건 이후 정부와 가족회가 공식적으로 처음 만나는 자리다.
그래서 가족회는 이번 간담회를 앞두고 벅차기만 하다. 이 자리에서 가족회는 납북된 가족들의 생사 확인과 송환 절차를 요구할 계획이다.
특히 피해자 가족들은 아직도 혈육이 살아있다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었다. “아직도 어제일 처럼 생생하다” “얼굴이라도 보고 싶다”는 말을 되뇌이고 있다.
황 대표는 “자국민을 납치당하고도 말 한번 제대로 하지 못한 우리나라가 이제야 피해자 가족들과 대화를 시작한다는 것에 큰 의의를 둔다”며 “이는 결국 통일로 가는 중요한 주춧돌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는 또 “가족들의 생사 여부를 확인하고자 해도 정보가 차단된 상황인데다 북한에 있을 가족들에게 피해가 돌아갈까 피해자 가족들도 적극적으로 나서기 어려운 점이 있다”며 “그러나 이미 피해자들이나 그 가족들이 고령인 만큼, 더 이상 늦출 순 없다. 앞으로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돼 11명의 송환이 이뤄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