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고려대서 KAL기 납북사건 증언대회.. 아버지 찾는 황인철씨
  • 43년 전, 1969년 12월 11일.

    오후 12시25분 쯤, 당시 강릉에서 승객 47명과 승무원 4명 등 51명을 태우고 서울로 향하던 비행기는 대관령 상공에서 고정간첩에 의해 납치됐다.

    오후 1시 18분 쯤, 비행기가 강제착륙한 곳은 원산 중간에 위치한 선덕비행장. 66일 뒤인 2월 14일 북한은 39명만 송환했다.

    2013년을 눈앞에 두고 있지만 남은 11명(간첩 1명 제외)의 생사는 아직까지도 오리무중이다. 다음은 미귀환자들의 이름.

    기장 유병하, 부기장 최석만, 여승무원 성경희 정경숙,
    승객 채헌덕 장기영 임철수 황원 김봉주 이동기 최정웅 등 11명.

    황인철 KAL기납치피해자가족회 대표의 아버지인 강릉 MBC(당시 영동MBC) PD 황원 씨(당시 32세)도 그중 한명이다.


  • 27일 오후 고려대학교 4·18기념관 소강당에서 열린 증언대회 '아버지를 찾습니다'에 선 황인철 대표는 잊혀졌던 그 때 그 사건을 얘기했다.

    "과거의 인도주의적 사안은 현재의 인도주의와는 상관없는 건가요.
    KAL기 납치 사건은 악랄한 인권유린행위이자 도저히 용서받을 수 없는 흉악 범죄입니다."

    그를 가장 슬프게 하는 것은 다름아닌 국민들의 '무관심'이었다.
    정부가 이 문제에 앞장서주길 바라지만 황인철 대표는 "국민정서에 반하는 정책은 나오지 않는다"며 서운함을 토로했다.

    "사건이 발생했던 당시 냉전체제였기 때문에 이 사건은 국제적으로 굉장히 예민한 문제였다.
    한국정부는 소극적으로 대응했고, 북한은 묵묵부답이었다.
    언론도 사건을 점차 다루지 않으면서 관심이 사그라들었고 결국 43년간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

    "국민들이 이런 사건들에 관심을 가지고 목소리를 낸다면 정부를 움직일 수 있다.
    이를 위해 계속해서 국민들에게 KAL기 납치 사건을 알려주고 기억 속에서 끌어내고, 같이 동참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강연에 앞서 고려대 중앙광장에서 'KAL납북 미귀환 11인의 생사확인과 송환을 위한 100만인 서명운동'을 진행한 황인철 대표는 단지 납북자 개인의 아픔을 기억해달라고 하소연했다.

    "40여 년 전의 일이 현재의 우리와 무슨 관계가 있느냐는 말을 들으면 마음이 갈기갈기 찢어집니다."

    방학인데도 불구하고 서명에는 고려대 학생 300여 명이 참여했다.
    강연에는 학생 50여명이 황 대표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이날 증언대회는 고려대학교 남북대학생연합 북한인권학회인 'LIBERTAS(리베르타스)'가 주최했다. 학생들과 저녁 식사를 하러 간다는 황인철 대표는 밝은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저와 제 아버지, 그리고 수많은 납북자 가족들에게 이런 학생들이 있어 천만다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