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들과 함께 우는 방역관들 농장서 노숙...구제역 방제현장을 가다
  • 구제역이 몰아친 경기도청은 현재 초상집 분위기다. 언론 보도에서도 침울한 표정을 사진과 글로 전달하고는 있지만, 현지 상황은 심각함이 극을 달하고 있다.

    4일 현재 경기도내에선 12개 시·군에서 14건이 발생했다. 소, 돼지 35만2752두를 살처분 했고, 3일부터 이틀간 소 16만1132두에게 예방백신을 접종했다.

    하지만 상황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7~10일 주기로 구제역 재앙이 번번이 겹치니 ‘화불단행’이고, 구제역 전파를 막고자 안간힘을 쓰는 방역당국 처지에선 맡은 책임은 무거운데 이를 수행할 길은 멀기만 하다.

    가장 아픔이 큰 사람이야 자식 같은 가축을 파묻는 축산농민이다. 하지만 이들을 설득하고 지켜봐야 하는 방역 공무원들도 지칠 대로 지쳤다. 때론 농민에게 저주섞인 말도 듣는다. '당신들 천국 못 갈 것이여.' 악담을 들어도 내색하지 못한다. 누구도 생명을 죽이는 일을 나서서 할 사람은 없다. 단지 천직이라서, 소임이라서 참고 견딘다. 그들밖에 이 일을 해낼 사람이 없으니까.

    구제역은 아직 방역당국의 통제권 밖이지만, 언제가는 쓰라린 상처가 ‘완치’될 수 있다는 희망에 방역현장을 누비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① 여주군 유일의 가축방역관, 김형신 여주군 가축방역관

    발령 첫날부터 방역현장 투입돼 밤샘 근무, 모닥불 쬐며 쪽잠
    “생때같은 소, 돼지 살처분하고 통곡하는 농민 보며 심적 고통”

  • ▲ 여주군 가축방역관인 김형신(42) 씨. 김 씨는 지난달 26일 여주군 농가에서 구제역이 발생한 후 일주일간 현장에서 철야 근무를 했다.
    ▲ 여주군 가축방역관인 김형신(42) 씨. 김 씨는 지난달 26일 여주군 농가에서 구제역이 발생한 후 일주일간 현장에서 철야 근무를 했다.

    초등학교 5학년생 딸과 3학년생 아들을 둔 김형신(여·42·7급)씨의 올해 소망은 소박하다. 양주시에서 여주군으로 이사 온 지 한 달 남짓. 볼거리, 즐길 거리 많은 여주군 이곳저곳을 제대로 둘러본 적이 없다. 그래서 새해 소망은 신륵사, 세종대왕릉, 온천 등 여주군내 관광명소를 아이들 손을 잡고 유람하는 것이다. 단, 전국적으로 창궐한 구제역이 빠른 시일 내 종식돼야 한다는 단서가 붙는다.

    “여주 온천이 괜찮다고 하더라고요. 여주에 가볼 데가 많은데 오자마자 구제역이 터져서 애들하고 못 가고 있어요. 일단 구제역 상황이 좋아지면 식구끼리 가려고요.”

    김 씨는 여주군청 축산팀 직원 5명 중 한 명밖에 없는 가축방역관이다. 인근 양평군이나 이천시는 가축방역관이 2~3명인데 여주군에선 김 씨가 유일하다. 12월 14일 경기도내에선 처음으로 양주와 연천에서 발생한 구제역이 방역망을 뚫고 여주 농가까지 전파된 게 불과 8일 전인 26일. 그날부터 김 씨는 방역현장에서 철야를 했다. 구제역 발생 농가에 들어가 매몰지 선정, 살처분 보상평가, 매몰 사후관리 등을 총괄하는 게 김 씨의 업무다.

    “처음에 신고가 들어왔는데 살처분이 결정됐어요. 농장에 들어간 날 사람들을 동원해 하루종일 땅 파고 매몰하기까지 하루이틀이 걸렸어요. 날씨가 많이 추워서 직원들이 많이 힘들어 했죠. 그 다음에 또 다른 데서 구제역이 발생하다 보니 거기서 또 살처분에 들어가고. 현장에서 일주일만에 나왔어요.”

    한번 살처분할 때마다 보통 이삼십명이 투입된다. 살처분만 하는 게 아니라 볏짚, 가축사료, 약품, 분변 등 오염물질까지 다 태워야 한다. 전부 처리하는 데 하루 정도 걸린다. 돼지 같은 경우 두수가 많으면 60명까지 동원되기도 한다. 그런 곳은 살처분하는 데 며칠이 소요된다. 현장에서 날밤을 새야 하니 잠은 모닥불을 피워놓고 쪽잠을 잔다. 김 씨도 그렇게 일주일 동안 현장생활을 했다.

    김 씨는 “여주에서 처음 구제역이 발생했을 때 우선 일주일 정도 급한 불부터 끄느라고 밖에서 방역활동을 했다”며 “현장에서 신경을 계속 쓰고 있어야 해서 잠을 거의 못 잤다”고 말했다.

    “현장 일이 많아요. 땅을 얼마를 파야하고, 부지를 어디로 선정하고… 잘못하면 안 되니까요. 농가에 보상금 지급해야 하니까 두수 정확히 세고, 사료와 볏짚 태운 것도 확인하고. 매몰하는 것도 환경오염 되지 않게 절차가 있어요. 비닐 깔고 석회 깔고 그런 것들 다 하고, 분변처리까지 다 확인해요.”

    김 씨는 해가 바뀐 1월 1일 사무실로 복귀했다. 일주일만이었다. 집에 들러 오랜만에 아이들과 남편 얼굴도 보고, 잠도 몇 시간 잤다. 하지만 쳇바퀴처럼 구제역과의 싸움은 다시 시작됐다. 농가 보상 문제라든가 추가 발생에 따른 이동제한조치 등의 현장업무는 김 씨를 대신해 다른 농정과 직원들이 수행하고 있다. 김 씨는 현재 방역대 설정과 그에 따른 방역조치, 살처분에 들어갈 제반사항, 인원장비 등을 지원하는 업무를 하고 있다.

    방역대 설정은 구제역 발생지 반경 3㎞ 이내를 위험지역, 10㎞ 이내를 경계지역으로 정하는 것이다. 구제역 발생지 500m 이내는 기본 살처분 지역이다. 경기도내에선 이에 따라 살처분 조치가 취해졌다. 하지만, 강화군의 경우 3㎞ 이내까지 살처분됐다. 이 결정 권한은 중앙방역대책본부에 있다. 김 씨는 “방역대 설정이야말로 가장 시급한 업무다. 살처분 조치에 앞서 방역대가 우선 설정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 ▲ 김형신 여주군 가축방역관과 그녀의 상급자인 권병렬(50) 여주군 축산팀장. 권 팀장은 김형신 씨에 대해 “발령장도 받기 전에 불철주야 밤샘하고 근무한, 책임감 강한 직원”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 김형신 여주군 가축방역관과 그녀의 상급자인 권병렬(50) 여주군 축산팀장. 권 팀장은 김형신 씨에 대해 “발령장도 받기 전에 불철주야 밤샘하고 근무한, 책임감 강한 직원”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 이삿짐도 못 풀고 발령 첫날부터 방역 업무에 투입

    전남대 수의학과를 졸업한 김 씨는 29살 때 전남 함양군청에서 수의직으로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다. 자녀교육 문제로 일을 그만뒀다가 2005년 경기도 제2축산위생연구소로 복귀했다.

    김 씨가 여주군으로 발령받은 건 지난해 12월 1일. 공교롭게도 11월 26일 경기도 안동에서 구제역이 발생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첫날 발령장도 못 받고 김 씨는 곧장 업무에 투입됐다. 상급자인 권병렬(남·50) 여주군 축산팀장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삿짐도 못 풀고” 업무를 시작한 것이다. 가족들은 김 씨 없이 이사했다. 자녀 얼굴도 첫 출근한 후 일주일 만에 봤단다.

    “처음에 여주군에 군(君)대책상황실이 없었어요. 그렇다보니 축산팀에서 몇 명이 일처리를 해야 하니까 그때 좀 힘들었어요. 지금은 구제역이 산발적으로 발생되다 보니 상황실에서 업무를 많이 챙겨주고 하니까 좀 나아졌죠.”

    여주군 구제역방역대책본부는 현재 군(君) 공무원을 필두로 경기도, 농림수산식품부 공무원, 군 병력 등이 협력한 가운데 방역대책을 시행하고 있다. 여주군청 공무원의 경우 농정과 직원 22명을 비롯해 하루 평균 150명 이상이 현장에 투입되고 있다. 이는 총직원의 3분의 1에 해당한다.

    이들은 통제초소와 살처분 현장 등 방역현장에 투입된다. 2교대로 현장에 투입되는데 따로 근무시간이 정해져있지 않고, 날밤을 새는 건 다반사다. 농가들의 시름이 커갈수록 공무원도 ‘파김치’가 될 수밖에 없다.

    특공대 출신이라는 권병렬 축산팀장의 말이 걸작이다. “제가 2000년대부터 방역업무를 하면서 크리스마스이브를 사무실에서 세 번 보냈어요. 군(軍)보다 더 무서워요. 국가가 더 무섭게 공무원을 다뤄요, 진짜 무섭게. 특공대 훈련은 아무 것도 아니에요. 제가 제부도 앞바다에서 물 포복으로 4㎞를 가봤어요, 살 다 찢어지면서요. 그것보다 더 무섭습니다.”

    권 팀장에게 상급자로서 김형신 씨의 업무능력을 물었다. 뜻밖에도 권 팀장은 눈시울을 붉히며 고마움을 표했다. “발령장도 받기 전에 불철주야 밤샘하며 근무했습니다. 제가 울었습니다. 저는 남자니깐 괜찮아요… 모든 직원이 마찬가집니다만, 진짜 책임감 강하고 훌륭한 직원이에요.” 물 포복을 견뎌낸 전직 특공대원도 눈물짓게 하는 게 인류 최대 재앙 중 하나인 구제역의 위력이다.

    ◇ “뭔가 상황이 좋아져야 할 때…그래야 보람도 있을 것”

  • ▲ 3일 여주군 구제역방역대책본부의 긴박한 모습.
    ▲ 3일 여주군 구제역방역대책본부의 긴박한 모습.

    여주군내 구제역 발생 대상이 된 농가는 15곳. 사육두수 7173마리 중 4009두가 살처분됐다(3일 기준). 도내 전역으로 예방 백신접종이 확산되면서 여주군에서도 접종대상 소 2만9578마리 중 2만8588마리(접종률 96.6%)를 접종했다.

    때 아닌 혼돈과 살육의 한복판에 김 씨는 서 있다. 그녀는 의연했지만 괴로움을 떨쳐내지 못했다. 특히, 생때같은 소와 돼지를 죽여 묻어야 하는 농민들의 통곡을 들을 때마다 가슴 한구석이 먹먹해왔다. “농가들의 소, 돼지를 살처분해야 한다는 게 마음이 안 좋다”고 말했다.

    “돼지를 200두 정도 키우는 분이었어요. 다른 분들보다 훨씬 적게 키우는데 돼지들이 말을 잘 듣더라고요. 살처분하는 데도 돼지들이 말을 잘 듣는 거예요. 원래 안 가려고 해야 맞는데… 그만큼 정성을 들여 돼지를 키운 거죠. 얼마 안 되는 돼지지만, 가란다고 따라 가니까 마음이 안 좋았어요. 돼지들을 묻고 나서 우시더라고요…”

    김 씨는 가축방역관으로서 고충을 털어놨다. “축산농가에 이로운 거 주고 싶죠. 그런데 우리가 하는 게 살아있는 거 매몰한다든지 해서 농가에 피해 입히는 거니까, 해줄 수 있는 만큼 해줄 수 없다는 거… 많은 어려움이 있죠. 살처분 농가는 농가대로 아픔이 있을 것이고, 옆에 농가에서 구제역이 발생해 이동제한을 받는 농가는 사료도 공급 못 받고 분변처리도 힘들고. 이런 문제를 여주 축산농가 대부분이 겪고 있어요. 뭔가 상황이 좋아져야 하는데 그렇지 않고 계속 상태가 나빠지는 거 같아 마음이 아파요.”

    힘든 상황 속에서 그나마 보람을 느낀 적이 있냐는 질문에 김 씨는 “지금은 그런 것보다 뭔가 달라져야하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든다”고 나직하면서도 결기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상황이, 정책이 뭔가 달라져야 하지 않나, 지금은 너무 많은 피해만을 요구하기 때문에 현 상황에서, 행정 쪽에서 뭔가 달라져야 하지 않나 싶어요. 그래야만 보람도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김 씨는 구제역이 사라진 뒤 엄마로서 두 아이와 소풍갈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 이르면 한두달. 봄이 오면 좋은 날이 올 거라고 김 씨는 예상해 본다. 아울러 “여주군청에 배속된 지 한달여밖에 안 되다보니 업무가 서툴다”며 “올해는 좀 더 일을 배우고 시간이 나면 취미생활도 하고 싶다”는 게 김 씨의 또 다른 새해 소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