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은 전쟁을 잊고 마냥 평화를 만끽해도 좋은 나라가 아니다

    지금 시점에서 천안함 사건에 대해 논하는 것은 합당치 않다는 생각이다. 무엇보다도 침몰 사고의 원인이 아직은 확실치 않다. 이런 상황에서 섣부른 추측으로 예단하는 것은 결코 옳은 일이 아니다. 하지만 천안함 사건 이후 벌어진 각종 행태에 대해선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다는 생각이다.

     ‘가능성’이라는 단어 하루도 빠지지 않았던 언론보도 

    우선 언론의 보도행태다. 많은 언론들은 지금도 그렇지만 처음부터 온갖 추측 보도를 쏟아냈다. 이처럼 큰 사건에 대한 언론의 지대한 관심은 당연하다. 그러나 그 보도행태는 언론 본연의 자연스러움으로만 간주하기에는 심히 우려스럽다.

    언론 보도에선 모든 것에 앞서 ‘사실’이 가장 중요하다. 그런데 천안함 사건 직후부터 언론들은 사실의 취재 보도가 아니라 온갖 ‘설’들을 경쟁적으로 올리고 있다. 모든 언론들의 관련 보도에서 “가능성”이라는 단어가 하루도 빠짐없이 등장하고 있다. 지금껏 어떤 사건 보도에서도 “가능성” 운운이 이처럼 많이 등장하는 것을 본적이 없다.

    언론들의 보도 경쟁을 탓할 수는 없다. 하지만 “가능성”이라는 한마디에 기대 갖은 추측을 기사화하는 것은 보도 경쟁이 아니라 소설 쓰기 경쟁이다. 그런데 급기야는 ‘설’의 작화를 넘어 오보까지 곁들이고 있으니, 이쯤 되면 혀를 차다 못해 “뭐하는 짓이냐”는 힐난을 하지 않을 수 없다.

    헛된 소문과 불건강한 언어 배설은 여론 아닌 오물 

    이른바 ‘여론’이라는 것도 생각할 대목이다. 언제부터인지 이 나라에는 ‘네티즌 여론’이라는 용어가 상용어처럼 통용되고 있다. 인터넷 강국다운 당연한 현상이라 하면 좋겠지만 지금 인터넷 상에 난무하는 온갖 가지 설들에 ‘여론’이라는 용어를 적용시킬만한지 의문이다. 더욱이 인간으로서의 기본 양식조차 의심스러운 악성 ‘댓글’들에 이르면 ‘꼬락서니’라는 비속어가 떠오른다.

    여론은 중요하다. 민주정치가 아니라 왕정시대에도 여론은 중요했다. 그러나 인격의 바닥을 보이는 욕지거리와 무책임한 설들은 존중돼야 할 여론이 아니다. 헛된 소문과 불건강한 언어의 배설은 존중이 아니라 청소하고 정화해야할 오물에 지나지 않는다.

     정치인 이전에 인간으로서 기본은 돼있나 

    이 나라 정치판에 대해서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와중에 야당은 또 정치공세다. 정부와 군이 진상을 은폐하니 어쩌니, 교신록을 공개하라니 어쩌니 하더니 구조된 병사들을 공개석상에 세우라는 주장까지 하고 있다. 책임 있는 정치인의 자세 이전에 인간으로서의 기본에 대해서까지 회의가 드는 대목이다.

    진상을 은폐한다니? 침몰된 천안함은 아직 인양도 되지 않았다. 사고 해역은 거센 조류와 탁류로 잠수사들이 자신의 시계를 보기도 힘들 정도며, 천안함의 사고 부위를 손으로도 더듬기 힘든 상황이다. 진상은 파악 중이다. 그런데 은폐라니!

    전시에 준하는 상황의 사고다. 이런 상황에서 확인되지 않은 악성 댓글 수준의 설들을 동원해 정부와 군을 공격하고, 군사기밀에 해당되는 사항의 공개를 요구하는 것은 일종의 이적행위다.

    앞장서서 단결을 고취하고 정부와 군에 힘을 실어주는 것까지는 아니라도 좋다. 다만 최소한의 수습이 있기까지는 정치공세를 자제하는 것 정도는 필요한 것 아닌가? 전쟁에선 최전선에서 대치하고 있는 적보다 후방에서 아군에게 총질을 하는 자들이 더 큰 위협이다. 뒤에서 총질하는 식의 짓거리로 어떻게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을 것인지 숙고해야 할 것이다.

    여당은 또 어떤가? 여당의 책임 있는 고위인사라는 사람이 고 한주호 준위의 빈소에서 기념사진을 찍는다고 부산을 떨었다. 해외토픽감이다. 이웃나라 어느 정치인이 “정치란 곧 사진”이라 했다지만 빈소에서까지 그 놈의 사진을 찍겠다고 그 난리를 치다니. 이 나라의 수준을 보여주는 대목 같아 한마디로 창피하다. 

    한주호 준위 희생은 언론·정치판·여론 전부의 책임 

    고 한준호 준위의 경우가 그나마 위안이다.
    고귀하지만 비극적인 희생을 두고 위안이라는 용어를 써야 하는 것이 무엇보다 고인과 유가족에 죄송스럽다. 그러나 그의 고귀한 희생이 이 어지러운 지경에 그래도 이 나라를 명예롭게 했다. 53세의 군인, 죽음을 무릅쓰고 뛰어들었고 그리고 유명을 달리했다. 그는 영웅이다. 이런 군인이 있기에 이 나라가 지켜지고 있다. 인터넷에 ‘찌질이’들이 마음 놓고 쓰레기 같은 댓글 나부랭이를 갈겨댈 수 있는 것도 고 한주호 준위처럼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나라를 지키는 군인이 있는 덕분이다.

    정치판의 작태에, 언론의 난리법석에, 찌질이들만 날뛰는 식이라면 나라의 앞날이 서글프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한준위 같은 영웅도 있다.

    하지만 한 준위의 희생에는 이 나라의 언론, 정치판 이른바 여론 전부가 다 책임이 있음은 반드시 지적해두고 가야겠다. 흥분한 실종자 가족을 달래고 여론을 다독여야 할 책임 있는 자들이 제 몫을 다하지 못했다. 이성을 가지고 침착한 대응을 주문해야 할 자들이 오로지 빠른 수색과 구조만 외쳤다. 그 결과 안전수칙이 완전히 도외시되는 분위기가 조성됐다. 물론 한주호 준위는 그렇지 않더라도 자식 같은 장병들을 구하기 위해 바다에 뛰어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고귀한 영웅적 희생과는 별도로, 상황을 이성적으로 통제하지 못하는데 원인제공을 한 모든 이들은 책임을 통감해야 한다.

    실종자 가족들이 수색중단을 요청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더 이상의 희생을 막기 위함이라 한다. 경박한 일부 언론, 정치인 무리보다 훨씬 성숙한 모습이다. 숙연한 마음으로 경의를 표한다. 지금 이 순간 우리 대한민국 국민은 모두 실종 장병들의 한 가족이다! 대한민국은 실종 장병들을 결코 잊지 않을 것이다. 살아서든 죽어서든 그들은 다시 조국의 품으로 귀환할 것이다.  

    전쟁을 잊은 나라에는 평화가 없다 

    시간이 지나면 진상은 밝혀질 것이다. 북한의 도발이 원인일 수도 있고 또 아닐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떻든 북한의 도발이 아닌 것으로 몰아가고 싶어 하는 것은 북한의 도발로 단정하는 것보다 더 위험하다. 설사 천안함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이 북한의 도발이 아니라 해도 근본적인 원인(遠因)은 결국 북한이다. 천안함 사고는 대한민국과 북한이라는 군사깡패 집단의 대치 속에서 일어난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천안함 사고에서 깨달아야 할 가장 중요한 사실은 한국은 전쟁을 잊고 마냥 평화를 만끽해도 좋은 그런 나라가 아니라는 점이다. 개발시대, 우리는 일하면서 사우고 싸우면서 일하자고 했다. 한 손에 망치 들고 또 한 손에 총을 들고, 그 시절 우리는 그렇게 고비를 넘고 넘어 대한민국의 오늘을 개척했다. 그 시절의 깃발은 결코 낡은 것이 아니다. 천안함 사고는 지금도 우리는 그럴 수밖에 없는 시절을 살고 있음을 웅변한다.

    “로마인들은 끊임없이 전쟁을 준비함으로써 평화를 유지했다.” 에드워드 기번의 명저 ‘로마제국 쇠망사’에 나오는 한 대목이다. 평화는 구호와 협상으로 지켜지는 게 아니다. 국방이라는 무력의 뒷받침이 없으면 평화는 없다. 평화를 원한다면 도발자들을 제압할 압도적 무력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명심하라! 전쟁을 잊은 나라에는 평화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