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안을 내면서 비판해야지 골프치고 변명하고 길거리 나와 드러눕는게 정치인이냐"

    19일 바른사회시민회의는 서울 광화문 프레스센터 외신기자클럽에서 '이명박정부 1주년 평가와 과제' 토론회를 열었다. 유세희 한양대 명예교수의 사회로 진행된 토론회는 지난 1년간 이명박 정부의 정책에 대한 평가와 함께 향후 국정운영과 정책 방향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이날 경제분야에서 'MB노믹스 1년 평가와 향후 정책과제'로 발제한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를 궁지에 몰아 넣었던 사람들을 폄하할 필요는 없지만 냉정하게 봐야 한다"며 "야당은 비판을 위한 비판뿐"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컨텐츠, 프로그램을 갖고 대안을 가진 비판을 해야지 골프치고 변명하고 길거리 나와 드러눕는게 정치인 맞느냐"며 "좌파도 철학적 기초없이 반대로만 하는게 좌파가 아니다"고 꾸짖었다.

    그는 "이 정부가 잘못했다해도 3개월만에 정권퇴진운동이 일어난 것이 과연 순수했느냐"며 "쇠고기 촛불집회가 국민 건강권을 지키는 거였는데 이걸 볼모로 3개월만에 (이 정부를) 나가라고 압박한 것이 말이 되느냐"고 비판했다. 또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은 FTA체결되면 대기업 힘 커지면서 노조 불러들일 것이고 (MBC)민영화하면 민주총 가입할 기회가 많아지는데 왜 반대하는지 이해가 안간다"며 "이것은 정치영향력을 획득하려는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고 비판했다.

    조 교수는 "자유시장경제이념을 확실히 가지고 경제정책을 펴야 한다"며 "시장주의가 절대설은 아니지만 역사적 경험으로 볼 때 국가 개입보다 덜 해롭다"고 주장했다. 또 "최악의 경제를 이기는 방법은 땀과 눈물 뿐"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정치분야를 맡아 발제한 박효종 서울대 사범대 교수는 '소통'과 '설득'을 강조했다. 박 교수는 "많은 사람들이 이 정부가 CEO형 리더십이라고 하는데 CEO는 설득과 소통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며 "정부는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설득"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설득은 상대방의 입장을 변화시키는 것은 아니다"며 "진보좌파세력의 마음을 변화시키기보다 계속 설득하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정치부분 토론자로 참석한 조윤영 중앙대 국제관계학과 교수는 "국민들이 일관성 있는 정부의 대북정책에 많은 지지를 보내는 듯하다"며 칭찬했다. 이어 "그러나 핵만 관련된 대북정책뿐 아니라 일반 대북정책도 만들어 나가야 한다"며 "비핵개방 정책과 함께 하면서 경제협력을 통한 통일 담론을 시작해야 되는 시점이다"고 지적했다.

    조성환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교수 역시 설득의 리더십을 강조하면서 "CEO 리더십은 잘못됐다. 실용주의는 다 버려야 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 정부는 CEO 리더십은 잊어버리고 야당과 여당이 힘을 발휘할 수 있도록 큰 마음으로 자신의 정치세력을 다시 꾸려야 한다"고 말했다.

    경제부분 토론자인 강석훈 성신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금융위기는 미래지향적으로 대응해야 되는 일"이라며 "중장기전 과제로 규제완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공공부분을 효율화하고 과감하게 정책을 펼 필요가 있다"며 "이런 부분은 기업형 CEO처럼 강력하게 밀고 나갔으면 한다"고 말했다.

    최승노 자유기업원 대외협력실장은 "정부가 돈을 많이 쓰면 위기가 극복될 거 같지만 역사적 측면에서 그것은 위기의 장기화"라고 말했다. 그는 "따뜻한 리더십은 많은 사람들이 이익집단화를 만들어 내 주머니로 넣기 때문에 결국 노무현 정부처럼 부패로 남을 것"이라며 "정부가 성공하려면 규제 푸는데 집중하고 경제는 시장에 맡겨야 하다"고 주장했다.


    다음은 박효종 교수와 조동근 교수의 발제문 요약본 전문

    <정치 분야> 이명박 정부의 1년 평가: ‘변화의 욕구’를 아우르는데 부족했던 1년
                : 박 효 종 서울대 사범대 교수
     Ⅰ. ‘변화의 리더십’이 부족했다
    ○ 이명박 정부는 변화에 대한 국민의 열화와 같은 기대 속에서 출범했다. 또 이러한 변화에 대한 욕구는 거대여당에 대한 국민의 선택으로 나타났다. 길게는 10년간, 짧게는 5년간, 특히 노무현정부의 국정에 대한 국민들의 피로감이 극에 달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런 변화의 리더십이 제대로 발휘되고 있으며 그 리더십에 국민들은 만족하고 있는가. 단적으로 말해 30%를 넘나드는 지지율이야말로 정부의 리더십에 만족하고 있지 못함을 말해주고 있다고 할 것이다.
    ○ 사실 이명박 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순탄한 ‘블루오션’이 아니라 거친 ‘레드오션’을 항해해 왔다. 이른바 ‘허니문 기간’도 없이 출범 백일도 안된 정부에 “퇴진하라”는 구호가 등장했을 정도다. 대선에서 패배한 정치사회세력은 끈질긴 저항과 불복종의 기류를 이어갔다. 특히 민주당과 좌파진보세력의 저항은 강성(强性) 강기(剛氣) 일변도였고 사생결단 식이었다. 이명박 정부가 내세우는 정책이나 어젠다에 있어서도 사안에 따라 시시비비(是是非非)를 가리는 평가의 대상이라기보다는 전면거부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국정에 대한 정부의 책임은 ‘유한책임’이 아니라 ‘무한책임’일 수밖에 없다. 반대세력에 의해 조성된 거대한 장애물과 역경들이 이명박 정부의 무기력함의 배경원인은 될지언정 국민들로부터 높은 지지를 받지 못해 의기소침해진 정부의 책임을 면책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 작년 2월말 우리 국민들도 이명박 정부를 선택하고 출범시킬 때 그러한 어려움들을 충분히 예상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변화의 리더십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했던 점, 변화의 욕구를 아우르려는 권력의지와 정치적 감수성이 부족했던 것은 이명박 정부의 책임이다. 이명박 정부는 국민들이 염원한 변화의 욕구의 실체를 잘못 읽은 것 같다. 변화의 욕구를 단순히 효율성을 위주로 한 정부, 또 작은 정부를 위한 구조조정정도로 읽은 것이다. 그 결과 인수위시절부터 정부의 조직개편, 부처의 통폐합이 전부인양 심혈을 기울였다. 그러나 이것은 시대의 대의(大義)를 정확하게 판독한 것이 아니었다.
    ○ 사실 국민들이 바랐던 것은 그와 같은 작은 정부를 위한 무리한 구조조정이나 조직개편보다는 사심 없이 공익에 헌신하는 리더십, 진정성을 갖고 소통과 설득에 힘쓰는 리더십, 과잉홍보보다 실적으로 말하는 리더십, ‘편가르기’의 분열을 지양하고 통합에 힘쓰는 리더십, 읍참마속(泣斬馬謖)을 서슴지 않을 정도로 측근에 대하여 엄격하며 국민을 섬기는 ‘서번트 리더십(servant leadership)’이었다. 그런데 많은 국민들이 기대했던 이명박 정부의 사심 없는 공익지향의 리더십은 자기 캠프사람만 고집한 인사형태에서부터 의구심의 대상이 되기 시작했고, 소통과 설득의 리더십은 진정성을 띤 상호대화보다는 너무 자질구레한 것들에 대한 상명하달식의 간섭적인 지시와 명령의 형태로 변질되었다. 또한, 낭비적이며 소모적인 정당들간의 정쟁(政爭)에 연루되지 않고 오로지 묵묵히 일에만 전념하겠다는 탈(脫)여의도 정치선언은 의회주의를 무시한 권위주의의 오만함으로 비추어졌는가하면, 효율에 대한 강조는 불도저식 속도전으로 평가절하되었고 이념과잉을 지양하고 공리공론(空理空論)보다 실적과 생산성제고에 주력하겠다는 실용주의는 몰가치적(沒價値的)인 무(無)방향성의 정치이념으로 비판받았다. 서울시장 시절 청계천에 물을 흐르게 할 정도로 유연한 소통과 설득의 리더십이 정작 대통령이 되어서는 사라졌다는 비판까지도 받고 있는 실정이다.
    ○ 결국 국민들의 불만의 요체는 정권은 바뀌었는데, 정치는 크게 바뀌지 않았으며 과거의 군림형의 ‘오만한 리더십’에서 섬기는 형의 ‘겸손한 리더십’으로의 변화도 현저하지 않다는 점에 있다. 국민들은 ‘오복(五福)조르듯이’ 변화를 원했는데도 이명박 정부는 그 변화에 대한 시대적 대의를 장악하지 못했고, 따라서 국민들이 변화를 체감하고 있지 못하다는 아쉬움, 혹은 변화의 욕구를 아우르려는 정치적 의지가 부족하다고 많은 사람들은 느끼고 있는 것이다.
     
    Ⅱ. ‘설득의 리더십’이 부족했다
    ○ 정부의 의회에 대한 존중이나 당에 대한 존중도 부족하다는 것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정부는 일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람을 아우르는 것은 더욱더 중요하다. 그럼에도 이명박 정부에서는 일을 강조하다보니 사람을 아우르는 것을 소홀히 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또한 대통령과 여당 사이에 원활한 소통이나 합의 혹은 협의가 활성화되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없다. 이처럼 국정 주도 세력들 간에 소통이 원활하지 않다보니, 이명박 정부의 국정철학이나 국정비전은 소수의 측근들, 즉 대선캠프에 참여했던 인사들만이 공유하는, 제한적인 어떤 것이 되었다.
    ○ 이명박 정부에서 가장 아쉬운 부분은 설득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일단 변화가 시대적 요청임을 제창하고 나섰고, 많은 유권자들이 이에 공감했다. 하지만 그 변화의 필요성을 인정하지 않거나 반대하는 세력이 있음은 당연하다. 또한 보수정부에 대해 태생적으로 거부감을 보이는 좌파진보인사들도 적지 않다. 이러한 상황에서 방법은 오직 하나다. 첫째도 설득이고 둘째도 설득이며 셋째도 설득이다. 단순한 소통보다는 설득이 중요하다는 의미이다.
    ○ 그럼에도 지금 이명박 정부에서는 설득의 과정이 부족하고 오히려 지시나 명령의 언어에 익숙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물론 지금은 위기의 상황이고 또 위기를 관리해야할 국정책임자의 입장에서 설득을 위한 시간조차 아깝다고 판단한 결과일수도 있다. 설득을 소홀히 하거나 설득의 과정에서 진정성이 부족하다면, 지지자들을 결집할 수도 없고 또 반대자들의 마음을 되돌릴 수도 없다. 그런가하면 반대자들의 마음을 되돌리기가 불가능함은 물론이고 그들의 한과 섭섭한 감정을 누그러뜨릴 수조차 없다.
    ○ 아직도 이 사회에서는 이명박 정부에 대한 극도의 반감이 대선패배세력들을 중심으로 강하게 남아있다. 이들의 열패감과 상대적인 박탈감은 너무나 극심하여 이명박 정부가 아무리 합리적인 정책을 내세운다 한들 돌아선 마음을 되돌릴 수 없을 것 같지가 않다. 심지어 이들은 자신들이 과거 노무현 정권 때 추진했던 정책도 지금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면 반대다. 한미 FTA문제는 물론이거니와 금산분리완화정책도 그렇고 시위 때 마스크 착용을 금지하자는 법도 그렇다.
    ○ 이처럼 아무리 보수 성향의 이명박 정부라고 하더라도 ‘깨끗한 정부’를 유지하며 널리 인재를 구하여 중용하고 진정성을 다하여 반대자에 대한 설득과 대화를 할 때, 비록 다수의 좌파 진보로부터 공감은 얻지 못하겠지만, 또한 그들의 반대는 계속되더라도, 적어도 그들로부터 ‘존경할만한 적’의 범주로 평가받을 수 있지 않겠는가.
    ○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즉 이념과 생각이 다른 사람들로부터 공감은 받지 못하고 반대와 저항은 계속되더라도 ‘존경을 받을 수 있는 정부’는 가능하지 않을까하는 소망을 피력해본다. 비록 이명박 정부의 정책에는 찬성할 수 없고 적대감을 수시로 분출할 수밖에 없겠으나, 그럼에도 정부의 노력여하에 따라 좌파진보진영으로부터 존경할만한 적군의 장수라는 평가를 받는 것은 불가능한 것은 아닐 것이다.

    Ⅲ. ‘따뜻한 리더십’이 요구된다
    ○ 이명박 정부는 법과 질서를 내세워 왔다. 이것은 물론 올바른 국정방향이다. 법과 질서는 일부의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공동체 구성원 모두를 위한 것이다. 또한 우리 사회에서는 그동안 법과 질서가 심하게 훼손됨으로 비싼 사회적 비용을 지불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이명박 정부의 출범을 지지한 많은 사람들이 법과 질서에 대한 복원 움직임을 반기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법보다 주먹이 가깝다”는 속언을 방불케 할 만큼, 문제만 생기면 적법한 절차보다는 폭력이나 위협적인 시위를 통하여 해결하려는 경향이 현저해진 것을 개탄하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이다. 따라서 무너진 법과 질서를 세우겠다는 이명박 정부의 의지는 환영할 만하다.
    ○ 그럼에도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 법과 질서가 살아 꿈틀거리기 위해서는 그것이 강자와 약자를 구분하지 않고, 혹은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강자보다는 약자를 위해 작동한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유감스럽게도 우리 사회에는 이러한 풍토가 희박하다.
    ○ 이런 점에서 볼 때 용산참사는 유감이다. 물론 이 불행한 사태에서 법을 수호하려는 치안당국의 고민과 의도도 충분히 읽을 수 있고 또한 그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정치는 ‘의도’로 평가되는 것이 아니라 ‘결과’로 평가되는 것이다. 화염병과 시너가 난무한 극단적 시위였음은 분명하나, 인명피해를 낸 것을 두고는 정부로서는 적어도 ‘부덕의 소치’로 받아들이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그러한 점에서 경찰청장이 도의적 책임을 진 것은 불가피한 일이었다. 이 문제에서 정부는 철거민과 경찰과의 관계만을 놓고 고민할 것이 아니라 정부와 국민과의 관계에서 문제의 심각성을 볼 줄 알아야 한다는 점이 그것이다.
    ○ 지금의 상황은 비상상황이고 위기상황이기 때문에 ‘능동적 복지’와 같은 것만을 생각하기보다 이 절박한 상황 하에서 고통을 받고 있는 소외계층과 약자들을 생각해야 한다. 이점에서 비효율적인 복지전달체계를 정교화하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복지제도를 아무리 정교하게 만들어도 복지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은 언제나 있게 마련이다. 따라서 복지를 확대하면 ‘도덕적 해이’나 ‘복지병’에 걸릴 것이라는 우려를 하기 보다는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해주어야 한다는 절박성의 생각을 할 줄 알아야 한다.
    ○ 이명박 정부는 실용보수 정부로서 법과 질서를 바로 세우는 일도 중시하는 정부로 평가받아야하지만, 동시에 어려운 계층에 따뜻한 손을 내미는 정부로 국민들의 머릿속에 각인될 필요가 있다. 이명박 정부가 보수정부이면서도 말과 행동으로 약자를 배려한 따뜻한 정부로 평가받는다면, 그것만으로도 적지 않은 성취라고 해야 할 것이다.

    Ⅳ. ‘비르투(Virtu)’가 ‘포르투나(Fortuna)’를 이긴다
    ○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30% 내외의 지지율은 원활한 국정을 수행하기에 충분한 수치는 아니다. 그럼에도 다행스러운 것은 지지율 하락이 바닥을 쳤고 상승의 조짐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이 상승의 조짐을 “과거 1년 동안 일을 잘했다”, 혹은 “국민의 기대를 충족시켰다”라기 보다는 “앞으로 남은 기간 동안 일을 잘해라”, 혹은 “국민의 기대를 충족시키도록 최선을 다하라”라는 희구형의 주문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 누가 뭐래도 마키아벨리가 정치지도자에게 설파했던 사상의 요체는 “‘비르투(virtu)’가 ‘포르투나(fortuna)’를 이긴다”는 명제에서 음미할 수 있다. 마키아벨리가 이해한 ‘비르투’와 ‘포르투나’의 관계는 인간의 앞을 가로막는 항거할 수 없는 운명과 그 운명을 극복하기 위한 힘과 정치적 의지의 관계라고 할 수 있다. 즉 마키아벨리의 ‘비르투’ 개념은 정치지도자의 권력의지가 핵심을 이루는 것으로 권력에 대한 적극적인 비전을 상정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 이처럼 ‘비르투’ 개념은 국가공동체의 보존과 유지, 및 번영과 밀접하게 연관되어있다. 마키아벨리는 정치를 기독교적 덕목과 동일시하는 당대의 정치사상과는 선을 긋고 덕이란 국가공동체를 보전하는 데 필요한 자질임을 부각시켰던 것이다. 즉, 마키아벨리 이전까지 ‘비르투’의 터득이란 모든 주요 덕목의 터득을 의미했지만, 마키아벨리는 정치적 지도자가 국가공동체를 유지하고 위업을 성취하기 위해서 갖추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여기는 자질이라면 무엇이든 포용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의미에서 볼 때 훌륭한 ‘비르투’를 갖춘 지도자란 ‘포르투나’와 불리한 상황을 헤치고 공화국의 선(善)을 이룩할 수 있는 인물이며 위기의 상황일수록 이런 인물이 필요하다.

    Ⅴ. 이명박 정부, 앞으로의 과제
    ○ 그렇다면 국가를 위한 공동선의 헌신과 ‘비르투’를 각별히 강조한 마키아벨리의 비전에 입각하여 이명박 정부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다. ‘포르투나’를 다스릴 정치지도자의 ‘비르투’는 지금 어디 있는가. 지금 경제위기가 나라를 강타하여 절박한 상황이 되었다. 대선결과에 불복종하는 세력은 그 저항의지를 거두지 않고 있다. 국회도 국민의 민의를 헤아리지 못한 채 여야다툼에만 몰두하다가 폭력까지 자행하고 있다. 그 결과 세계적 스캔들이 되었다. 이처럼 세상이 어지러우니 ‘포르투나’가 횡행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여성성인 ‘포르투나’를 다스릴 수 있는 것은 ‘비르투’밖에 없다. 그런데 ‘포르투나’를 제압할 그 ‘비르투’, 국가공동체를 운영하는데 요구되는 ‘비르투’는 충분히 발휘되고 있는가.
    ○ 과연 1년 된 이명박 정부에게 ‘포르투나’를 제어할 정치적 ‘비르투’가 충분했는가. 충분했다고는 말하기 어렵다. 노력도 한 것이 사실이고 효율과 경쟁력을 극대화하고자하는 CEO형 덕목은 충분히 발휘했다고 생각되지만, 설득과 소통을 통해 온 국가 공동체를 아우르고자하는 정치적 덕목은 부족했다고 할 수 있다. 변화를 갈망하는 국민의 욕구를 이해하는 ‘정치적 감수성’이 부족했기 때문에 그 욕구를 온전히 충족시키지 못했다. 그러다보니 노무현 정부때 국민의 원성을 산 과거의 정치적 프레임에서도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다.
    ○ 물론 대통령이 직접 비판적인 여론과 언론을 겨냥하여 질타함으로써 국민들을 화나게 한 경우는 없다. 또한 대통령으로서의 품위도 과거보다 높아진 것이 사실이다. 그런가하면 법질서제고 노력과 외교 분야에서의 실적은 좋은 평가를 받고 있기도 하다.
    ○ 그럼에도 설득의 부족, 소통의 부족, 의회주의의 부족, 당정 간의 소통 부족은 국민을 섬기는 정부, ‘서번트 리더십’의 비전에 어울리는 것은 아니었다. 특히 사람보다 일에만 몰두하겠다는 효율성의 리더십만으로는 성공하는 정부를 위해 충분치 않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정치란 일의 성격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결국 사람들과 시민들의 일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일을 다루는 정치는 때로는 비효율적이며 낭비적 요소를 가질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국가의 지도자는 설득과 소통, 대화라는 정치의 특성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 결국 이러한 점들이야말로 이명박 정부로서는 가슴에 새겨야할 지난 1년간 국정에 대한 성찰거리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남은 4년 동안 지난 1년간의 시행착오와 고뇌가 성공적인 국정을 위해 의미 있는 밑거름이 되기를 바란다.

    <경제 분야> “MB노믹스 1년 평가와 향후 정책과제”
                 : 조 동 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
     2007년 대통령 선거에서 국민의 선택은 ‘우파적’이라기보다 ‘반(反)좌파적’이 맞음. 논리의 세계에서 “부정(否定)의 부정은 긍정”이지만, 정치세계에서 ‘반(反)좌파적’ 선택이 반드시 ‘우파적’ 지지로 나타나는 것은 아님. 이명박 대통령은 ‘자유주의 이념과 가치’를 국정의 기초로 삼겠다고 공언했어야 함. 이는 색깔논쟁이 아닌 국민과의 ‘소통’임.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이념의 정체성’이 갖는 의미를 간과. “이념의 시대는 가고 실용의 시대가 왔다”는 취임사가 이를 웅변. 실용은 ‘시대정신’일 수도 ‘국정철학’일 수도 없음. ‘이명박 호(號)’는 표류할 수밖에 없었음.

     이명박 정부는 안일한 상황인식으로 좌파정권 10년 동안 ‘조직화되고 기득권화’된 좌파세력의 존재를 간과. 승리에 취한 나머지 소통 및 국민설득 중요성을 간과. 또한 사려 깊지도 못했음. 초대 내각 인선에 대해 Best of Best(최고엘리트)라는 자평이 한 사례. “반미, 반FTA, 민감품목, 축산농가, 국민건강”등이 중첩된 ‘복합의제’인 쇠고기 수입문제를 너무 쉽게 접근해, 촛불저항의 빌미를 제공. 이명박 정부는 ‘시장주의’를 표방하면서도 실제의 정책사고는 ‘반(反)시장적’이었음. 첫 작품이 행정지도를 통해 통신요금을 내리고 52개 품목의 가격관리를 통해 생활물가를 안정시킨다는 것. ‘산업화 시대’에나 나올 법한 정책발상이 아닐 수 없음. ‘기업 프렌들리’도 오해의 여지가 많은 용어. ‘창업하기 좋은 환경 구축’의 의미로 정제됐어야 함.

     참여정부로부터 물려받은 경제의 ‘초기 조건’은 결코 녹녹한 것이 아니었음. 정치적 반대세력의 협조를 기대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으며, ‘정책의 방향성’도 분명하지 않았음. 이명박 정부의 ‘초기’ 정책실패는 숙명적이었음. 촛불시위는 이명박 정부에 치명상을 입힘. 가장 큰 기회손실은 촛불시위에 의한 개혁과제의 표류. 촛불이 진정되자, 2008년 3분기부터 미국발 서브프라임 금융위기가 본격적으로 영향을 미침. 주식시장과 채권시장에서 외화자금이 빠져나가면서, 환율이 오를 수밖에 없었음. 2008년 4분기 실질 국내총생산은 전기 대비 마이너스 5.6%를 기록. 2008년 연간 GDP 성장률은 2.5%를 기록할 것으로 추정. 2009년도 예상 GDP성장률은 마이너스 2.0%로 전망. 고용도 최악의 상황에 놓여 있음.

     공기업선진화 추진은 사실상 중단상태에 놓임. 미국발 금융위기로 ‘이명박 정부의 개혁’은  다시금 논쟁에 휩싸이게 됨. 그리고 강만수 장관에게 포화가 집중. 야권은 이명박 정부의 개혁을 ‘MB 악법’으로 규정. 한·미FTA 국회비준과 미디어관련법을 차치하면 ‘MB 악법’은 경제관련 법률개정안. 이들 개정안은 크게 ‘출총제 폐지, 금산분리 완화, 산업은행 민영화’로 대분(大分). ‘MB 악법’의 논거는 간명. “재벌에게 특혜를 준다”는 것. 좌파지식인들은 금융위기를 지렛대로 ‘신자유주의’를 비판. 그 기저에는 ‘실지 회복’을 꾀하려는 정치적 계산이 깔려 있음. 그들은 대중들에게 이슈화 할 수 있는 것을 찾은 셈. 시장에서 나타난 실패현상, ‘시장의 실패’는 시장을 중시하는 이념의 실패, 즉 신자유주의의 실패, 따라서 “국가의 개입을 통해 탐욕을 제어할 수 있는 체제로 가야 한다”는 것임. 글로벌 금융위기는 최악의 대외환경을 제공함. 이명박 정부는 사면초가에 빠짐.

     그러나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은 없음. 뒤집어 보면 길이 보임. 초기 실패는 반전(反轉)의 호재임. 실패를 실패학(失敗學)으로 정리하면, 반전의 길이 보임. 중요한 것은 ‘확신편향’에 빠지지 않는 겸손함과 학습을 통한 ‘자기교정’의 유연성과 진취성을 되찾는 것. 경기침체기는 제도를 개선할 수 있는 호기(好機). 이명박 정부의 개혁드라이브의 방향은 “민간의 자율을 신장시키고 시장의 영역을 넓히는 것”으로 압축. 이는 시대정신에 부합되는 옳은 방향임. 긴 호흡에서 “공기업 개혁, 규제완화, 기업가정신 고취”등 성장잠재력을 높이는 정책노력을 기울여야 함.

     우리에게 필요한 리더십은, “땀과 눈물에 의하지 않은 부의 축적은 화폐적 현상(모래성)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오직 두려움 그 자체입니다”라는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말을 뒤집어보는 눈이 필요, “모든 나라가 두려워할 때가 한국이 비약할 수 있는 때”. IT, BT, ET, GT(녹색기술)가 신성장동력. 그러나 ‘진정한’ 성장동력은 ‘땀과 눈물’ 그리고 ‘희생과 용기’. 이는 궁극적으로 “자유주의에 기초한 시장주의”로 통함.

     이명박 정부 저항세력의 진정성을 냉철하게 짚어봐야 함. 정권출범 3개월만의 ‘정권퇴진 운동’은 순수한 저항운동이 아님을 스스로 드러낸 것. ‘추가협상’을 통해 얻지 못한 것은 무엇? ‘재협상’이 아니면 안 되는 이유는 무엇? ‘추가협상’이 아닌 ‘재협상’을 요구한 것은 이명박 정부를 압박하기 위한 것. 촛불집회의 목적은 ‘국민건강권’을 지키는 것이어야 함. 촛불집회를 통해 ‘광우병 대책회의’는 자신의 정체를 백일하에 드러냄. 촛불이 꺼진 것은 ‘촛불의 무게’를 스스로 이기지 못해서 임. 쇠고기 재협상을 요구하면서 민영화에 반대한 민주노총의 행태도 논리에 맞지 않음.

     ‘MB악법’이라는 주홍글씨를 새긴 정치세력의 대안은? ‘성장과 분배’ 면에서의 참여정부의 경제실패는 ‘큰 정부-작은 시장’과 ‘국가개입주의’로 압축되는 참여정부의 경제패러다임에서 비롯된 것. 야권이 ‘MB 악법’으로 몰아세운 법령 개정안은, 사실은 ‘큰 정부-작은 시장’을 ‘큰 시장-작은 정부’로, ‘국가개입주의’를 ‘시장규율에 의한 사적자치(私的自治)’로 돌리는 조치. 과거의 실패를 교정하려는 시도. 규제완화를 악(惡)으로 규정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음. ‘대안적 반대’와 ‘반대를 위한 반대’는 구분되어야 함. 이명박 정부의 실정(失政)에서 반사이익을 얻으려는 것은 정치적으로 ‘무임승차자’가 되겠다는 것. 무임승차자는 국정의 중심에 설 자격이 없음.

     이명박 정부는 남은 4년 동안 우리나라의 ‘이념 지형’을 정리할 필요가 있음. “보수=수구세력” “진보=민주화 세력”의 고정관념을 버려야 함. 고정관념을 버리지 않는 한 보수와 진보는 ‘반목’할 수밖에 없음. 깨끗한 보수, 유능한 보수, 원조 보수는 군더더기. ‘형용사’가 붙는 이유는 진보가 보수에 덧칠을 했기 때문.  “상대진영에 대해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려는 식”의 '보수 vs 진보'가 아닌 정치․경제사상에 기초한 ‘우파 vs 좌파’의 분류를 정당하게 받아들여야 함. 그럼으로써 “차이를 인정하고 서로를 존중”할 수 있게 됨. ‘선의’의 경쟁이 가능하고 서로 ‘소통’할 수 있음. “우파는 자유를 핵심적 가치로 삼으며, 개인의 자율과 선택을 중요시 하는 이념사조”를, “좌파는 평등을 핵심적 가치로 삼으며, 국가의 적극적 역할을 중요시 하는 이념사조”를 의미. 국가와 시대에 적합한 이념지형의 모색도 ‘경쟁을 통한 발견과정’임. 

     미국발 금융위기는 시장의 실패가 아닌 정책의 실패. 금융위기는 정책실패에 대한 ‘시장의 응징’이기 때문에 오히려 시장이 작동한다는 증거로 보는 것이 맞음. 시장경제는 정책실패를 통해 튼실해지고 진화. 미국발 금융위기를 계기로 금융건전성 규제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기회로 삼는 것은 좋지만, ‘국가개입’을 강화하는 방편으로 삼아서는 안 됨. 금융산업의 ‘신(新)성장동력화’와 ‘투자은행’ (investment bank)의 육성은 여전히 유효한 전략. 출자규제는 조건 없이 폐지되어야 하며,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의 ‘융합’을 위해 금산분리 규제는 적절한 선까지 완화되어야 함.

     끝으로 이글은 강만수 장관의 경질론의 진실게임을 해부했으며, 공기업선진화의 성공적 수행을 위한 구체적 실천전략을 제시하였음. 그리고 금융위기가 초래한 실물위기를 극복하려는 이명박 정부의 단기 정책대응(2009년 예산편성)을 분석하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