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7일자 오피니언면에 박지향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가 쓴 '엘리트가 조롱받는 사회'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대통령이 지명한 국무위원 후보 몇 명이 청문회도 열리기 전에 사퇴하는 민망한 일이 일어났다. 임명된 이들 가운데도 재산이 너무 많거나 다른 이유로 구설수에 오른 인사들이 있다. 청와대는 촉박하게 일을 하다 보니 검증에 문제가 있었다고 해명했다. 그것은 사태의 본질을 잘못 짚은 것이다.

    이번에 집중포화를 받은 재산에 관한 건(件)만 따져보면, 국민의 불만은 지명된 이들의 재산이 너무 많다는 것이며 그렇게 많은 재산을 정당한 방법으로 형성했을 리가 없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여기에는 사실 두 가지 쟁점이 혼재되어 있다. 하나는 재산이 많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축재 방법이 정당하지 못했으리라는 가정이다. 물론 부자에 대한 보통사람들의 정서는 이해할 수 있지만, 재산이 많다고 해서 무조건 미워하고 부정한 방법으로 축재했을 것이라고 단정 짓는 태도는 옳지 못하다. 정당하게 이룬 재산은 인정하고 존중해 주어야 한다. 그래야 더 많은 사람들이 더 신바람이 나서 더 많은 부를 창출하고 더 많은 일자리를 제공해줄 것이다. 문제의 핵심은 재산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정당성 여부에 있음을 확실히 해야 한다.

    그렇다 해도, 정당하게 번 돈이라도 나와 내 가족만을 위해 움켜쥐고 있는 모습은 추하다. 사실 우리만큼 엘리트에 대한 존경심이 약한 사회도 드물다. 그 이유는 우리의 평등의식이 강한 때문이기도 하지만, 엘리트가 존경받을 만한 역할을 제대로 못한 탓이기도 하다.

    우리 사회의 엘리트층에게 노블레스 오블리주(지도층의 도덕적 의무)를 발견할 수 없다는 사실은 이미 구한말 이곳을 다녀간 외국인들이 한결같이 지적한 사안이다. 공인(公人)의 의무라는 개념에 익숙해 있던 서양인 관찰자에게, 나와 내 자식의 안위와 가문의 영광 외에 다른 관심사는 없는 것처럼 보이는 조선의 양반은 엘리트의 지위를 누려서는 안 되는 한심한 존재였다. 개화파 지식인 윤치호도 민왕후에 대해서 "왕과 왕자와 자신의 안전만 보장된다면 무슨 일이 일어나도 상관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그런 지배층 밑에서 결국 나라는 망했다. 그리고 그 뼈아픈 기억이 오늘날 우리 사회에 만연한 엘리트에 대한 적대감의 기원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번 각료 임명 사태에 쏟아진 비난과 조롱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지 않은 채 군림하고 사리사욕만 채우려 했던 엘리트에 대한 반감을 볼 수 있다.

    그러나 기본이 제대로 된 나라는 우리와 사정이 다르다. 오늘날까지 영국의 귀족제가 살아남은 이유 가운데 하나는 그들이 일방적으로 권리만 향유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영국 엘리트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던 사회주의 성향의 작가 조지 오웰조차 그들이 '불한당'은 아니었다고 인정했다. 오웰에 의하면 영국의 엘리트는 공적 의무감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었으며 도덕적으로 건전한 사람들이었다. 그것은 그들이 전쟁터에서 나라를 위해 죽을 준비가 되어 있었고 실제로 누구보다도 먼저, 그리고 더 많이 그렇게 했다는 사실에서 드러났다는 것이다. 우리는 어떤가? 이번 각료 후보들의 언사(言辭)를 듣다 보면 왜 어설프기 짝이 없는 좌파 이상주의자들의 글이 아직도 베스트셀러로 팔리고 있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이번 사태에서 중요한 점은 논란의 한가운데에 대통령이 있다는 사실이다. 대선 기간 내내 대통령의 재산 형성 과정에 의구심이 제기되었다. 그렇지만 딱히 결정적 증거가 있는 것도 아니고 "열심히 일하다 보면 손톱 밑에 때가 끼는 법"이라는 변명이 이해가 되기에 우리 국민은 이명박 후보를 대통령으로 세웠다. 그러나 이제 국민들은 대선 기간에 가졌던 의구심이 앞으로 5년 내내 우리와 함께하는 것이 아니냐는 불안감을 느끼게 되었다. 이렇게 시작하는 정부는 이 나라를 선진화의 길로 이끌어야 하는 중차대한 과업은 고사하고 5년 후 과거보다 더 거센 물결로 좌파 세력이 정권을 되찾는 빌미를 제공할 수도 있다. 새 정부가 정신 바짝 차려야 하는 당장의 이유가 거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