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란했던 제2차 남북정상회담이 끝났다. 7년 전보다 많이 차분해졌다고는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이 발표한 선언문을 둘러싸고 논란이 치열하다. 그리고 이런저런 후속 이벤트들이 벌어질 것이고, 여권 일각에서는 이것을 대선에 이용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날 것이다.

    그제(10월 4일) MBC-TV ‘100분 토론’에서는 제2차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토론이 있었다. 여권 사람들과 보수 진영 사람들 사이에 논쟁이 치열하게 벌어졌다. 내가 그 토론을 지켜보면서 느낀 것은 10.4 선언의 내용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문제의 본질을 비켜간 것이 아닌가 하는 점이었다.

    물론, 선언문 내용의 옳고 그름이나 내포하고 있는 의미를 해석하고 분석하는 일도 필요하겠지만, 보다 근본적으로 중요한 것은 작금의 한반도 문제를 과연 어떤 틀 속에서 바라볼 것인가 하는 점이다. 한반도에 살고 있는 평범한 소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갖고 있는 생각을 말하고자 한다.

    첫째, 과연 북한은 믿을 수 있는 국가 혹은 집단인가? 그리고 김정일 위원장은 믿을 수 있는 지도자인가? 이 시점에서 판단의 기준은 ‘벼랑 끝 전술’과 ‘선군(先軍) 정치’로 대표되는 그간의 북한의 기본 노선에 변화가 있다고 볼 것인가?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작년 10월 핵 실험 발표 이후 북한은 많은 이익을 얻고 있고, 한국과 국제사회는 북한의 장단에 놀아난 꼴이 아닌가! 또 다시 그렇게 하지 말라고 장담할 수 있는가? 6자 회담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는데, 과연 북한이 약속대로 실천을 할지는 지켜보아야 한다.

    둘째, 한국과 국제사회가 평화(평화라기보다는 핵을 이용한 북한의 외화벌이 게임)를 대가로 지불하는 돈으로 북한이 개혁·개방이라는 체제 정상화로 나아가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엄청난 비용과 시간이 소요될 것이라는 점만은 분명한 것 같다. 열악한 사회기반시설, 전체주의적인 사회 기풍 등, 나는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설령 한국과 국제사회의 도움으로 하드웨어를 갖춘다 하더라도 소프트웨어와 휴먼웨어는 엄청난 세월을 요할 것이다. 아니, 지금으로서는 김정일 위원장에게 그런 의지가 있는지가 의심스럽다. 개혁·개방을 본격화할 경우 김정일 체제가 흔들릴 수밖에 없는 딜레마를 넘어설 수가 있을지 회의적이다.

    셋째, 대한민국이 북한을 먹여 살릴 경제적 능력이 있는가? 주지하듯이 지금 한국은 엄청난 재정 수요에 시달리고 있다. 게다가 한국의 경제 여건이 앞으로 좋아지리라는 보장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 대북 지원을 할 여력이 있는가? 정부에서는 ‘투자’라고 강변하고 있다. 그러나 투자를 통해서 그 이익을 회수해야 하는데, 어느 세월에 그것이 가능하겠는가? 또 민간 기업도 참여한다는데, 그렇게 하다 망한 기업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설령 대북 프로젝트를 가동하더라도 국제사회가 나설 수밖에 없다. 능력이 안 되는 한국이 할 수 있는 일들이 아니다.

    마지막으로 우리의 민족주의에 대하여 다시 한 번 생각을 해 보아야 한다. 오랜 세월 한반도라는 반쪽 섬에서 혈통을 같이 해 오고 민족적 정체성을 함께 해 왔기 때문에 ‘우리’라는 의식이 많이 남아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통일’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살아야 한다는 강박 관념 같은 것이 우리에게 있다. 그러나 지난 60년의 분단은 남북을 이질적으로 만들어놓지 않았는가! 체제와 사상이 너무 달라 제대로 된 통일이 과연 가능할지 의문이다. 차라리 서로 통일에 대한 당위성을 버린 채 평화로운 이웃으로 살 수는 없을까? 그러나 북한이 그렇게 하지 않을 것 같다. 먹고 살기 힘드니까 도와 달라고 할 것이다. 앞으로는 갈수록 안보상의 부담보다는 북한을 먹여 살려야 할 일이 꿈만 같을 것이다.

    물론, 당위적으로는 북한의 급변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연착륙을 도와주는 것이 옳을 수도 있다. 그러나 역사는 늘 인간의 희망 사항으로 전개되지 않는 법이다. 한국 정부가 북한을 도우려고 아무리 발버둥 치더라도 포스트 김정일 체제가 불안정한 이상 70에 가까운 고령의 김정일 위원장에게 변화가 생길 경우, 그 때가 북한의 큰 전환점이 될 것이다. 그 때의 상황 여하에 따라 지금의 선언문은 어쩌면 의미가 없을 지도 모른다.

    <객원 칼럼니스트의 칼럼은 뉴데일리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