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 붕괴에 대비하는 계획을 세워야 할 시점이다.

    "이제 북한의 붕괴에 대비하는 계획을 세워야 할 시점이다." 영국의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세계전망' 2007년 판에서 북한 핵문제를 전망하면서 이같이 주장했다.(2006. 11. 22, 동아일보)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도 이미 한반도 장래에 대해 깊이 있는 '전략대화'가 진행되고 있고 최근에는 한국과 미국이 북한의 붕괴와 같은 급변사태에 대비한 '개념계획(CONPLAN) 5029'를 2007년 말까지 마련키로 했다는 소식도 나오고 있다.

    북한의 붕괴 가능성에 대한 논의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북한 핵실험에 따라 김정일 정권의 불확실성이 높아져가면서 주변국들은 북한의 붕괴 이후를 대비한 전략 마련에 더욱 부심하고 있는 모습이다. 북한 체제는 특유의 지속성(체제 유지)과 취약성(체제 붕괴)의 양면을 동시에 갖고 있지만 미국의 금융제재 성공과 유엔의 대북제재 결의 등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흐름에 비추어 시간이 갈수록 후자의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느낌이다.

    흥미로운 것은 2005년 5월 주한미군 특수전사령부에서 열린 비공개 회의에서 김정일 정권 이후의 북한과 새로이 들어설 정권에 관한 논의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또한 북한이 10월 3일 핵실험 계획을 발표했을 당시에도 미국의 정보기관은 '김정일 이후의 북한'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에 대한 '우발계획'(contingency plans)을 작성 중이었다는 사실이다.(윌리엄 M 아킨; 2006. 10. 17, 조갑제닷컴)

    미국의 강경파들은 북한 핵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은 김정일 정권 교체나 북한 체제 붕괴를 통해서만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핵무기를 가진 나라가 정권 교체 없이 핵무기를 포기한 전례가 없다"는 명제는 이러한 주장의 설득력을 높여준다. 이제 김정일 정권의 교체를 준비해온 미국의 대응과 이에 대한 중국의 대응이 점차 가시권 안으로 들어오고 있다는 느낌이다.

    북한 핵실험 이후 강력한 대북제재를 주도하고 있는 미국이 국내 정치환경의 변화와 중국의 권유에 따라 6자회담에 참석하기는 했지만 회담의 진행 과정이 보여주듯이 북한과의 협상 여지가 현저하게 줄어들었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따라서 명분 확보를 위해 6자회담에 참석했던 미국은 김정일이 핵무기를 포기할 가능성이 없다는 전제 하에 정권 교체나 체제 붕괴를 포함하는 다양한 대안을 놓고 국내외의 컨센서스를 만들어 가는 것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미국은 현재 경제봉쇄를 통해 김정일 정권의 붕괴를 유도하는 방안을 하나의 대안으로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2005년 9월 북한의 주거래 은행인 마카오 방코델타아시아(BDA) 은행에 대한 봉쇄를 통한 금융제재는 이미 김정일 정권의 기반을 뿌리째 흔들고 있는 중이다. 이와 관련하여 일본 도쿄재단의 "한반도 중장기 전망과 일본의 대응" 연구 프로젝트 2005년도 최종보고서는 "미국의 금융제재는 확실히 북한 지도부를 흔들고 있고 김정일 정권의 레짐 체인지(regime change)는 진행중이다"라고 분석했다.(2006. 3. 13, 미래한국)

    군사공격도 거론되지만 유엔 차원의 군사제재가 중국과 러시아의 반대로 결의안 논의 과정에서 제외되었듯이 국제사회의 반대와 전면전의 위험성을 수반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가능성은 낮다. 만약 미국이 실제적인 군사공격을 검토한다면 단순히 핵시설을 파괴하는 제한적인 수준이 아니라 단기간 내에 확실하게 김정일 정권을 붕괴시킬 수 있는 것이라야 한다.

    이처럼 미국이 북한 핵무기 폐기를 위해 구상하고 있는 대안은 모두 궁극적으로 김정일 정권 교체나 북한 체제 붕괴와 연결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은 현재 김정일 정권 교체와 북한 체제 붕괴를 포함한 한반도 장래 문제를 놓고 중국과 '전략대화'를 통해 협상중이다. 2005년 8월 베이징을 방문한 로버트 졸릭 전 미국 국무부 부장관이 중국에게 권유했다는 "미국과 중국 모두에게 유익한 한반도의 장래를 제시해 보라"는 내용의 발언이 단적인 예이다.

    논의의 핵심은 포스트 김정일의 대상자 선정 문제, 김정일 정권의 교체를 위한 역할 분담 문제, 역할 분담 대신 북한과 대만을 맞교환하는 문제가 될 것이다. 그 중에서도 포스트 김정일의 대상자 선정은 미국과 중국의 국가이익을 대변하는 핵심적 사안이다. 만일 포스트 김정일에 대하여 미국과 중국의 의견이 일치된다면 김정일 정권의 교체를 위한 역할 분담이 논의될 수 있고 그렇지 않다면 북한과 대만을 맞교환하는 논의가 진행될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방법만이 북한의 변화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혼란을 최소화하는 방안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일 북한의 변화 과정에서 내란과 같은 심각한 사태가 발생할 경우 미국과 중국은 즉각 개입하려 할 것이고 만일 이 과정에서 양자간에 충돌이 일어나거나 또는 북한이 핵무기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하여 핵무기가 국외로 반출되는 경우 공히 세계적인 재앙으로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상에서 보듯이 북한 핵문제 해결의 궁극적 관건이 김정일 정권 교체나 북한 체제 붕괴와 맞물려 있는 상황에서 미국은 언제 대북정책 패러다임을 바꿀 것인가? 12월 18일 6자회담에서 나온 "북한이 비핵화를 원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다른 길'로 갈 준비가 되어 있다"는 크리스토퍼 힐 미국 수석대표의 발언에 비추어 시간은 별로 남지 않은 느낌이다.

    이상과 같은 충격적인 가능성 앞에서 한국은 과연 어떤 선택과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인가?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자 시절 방미대표단의 한 사람이 워싱턴에서 했다는 "굳이 선택해야 한다면 새 정부는 북한의 붕괴보다는 핵을 보유한 북한을 선호할 것"이라는 발언처럼(2006. 11. 20, 조선일보) 죽어 가는 북한을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북한에 핵무기가 있더라도 한국의 군사력은 우월적 균형을 이루고 있다"는 노대통령의 희한한 발언처럼 무책임하게 현 상황을 수수방관할 것인가? 그러기에도 이미 때가 늦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