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일보 27일자 오피니언면 '오후여담'란에 이 신문 김성호 객원논설위원이 쓴 <'제 정신, 억울'>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나 또는 자기를 낮추어 부를 때 ‘저’라 하고 이것의 소유격은 ‘저의’가 된다. 이 ‘저의’의 준 말이 ‘제’이다. 그래서 “제(또는 저의)생각은 이렇습니다”라는 말은 같은 뜻이 된다. 노무현 대통령의 ‘12·21 격정 토로’ 가운데 “저는 제정신입니다”라는 말이 나온다. ‘제정신’은 우리말 사전에 보면 ‘자기 본래의 똑바른 정신’이라고 나와 있다.
2006년 12월21일의 그 수많은 ‘절제되지 않은 표현’ 가운데 이 말이 포함된 경위는 이재정 통일부장관의 국회 인사청문회와 관련된다. 노 대통령은 12월17일 국회 인사 청문회에서 이 통일부장관 후보에게 “6·25가 남침입니까 북침입니까”라는 질문이 건네진 것을 의식하고, “제가 6·25가 남침인지 북침인지도 모르는 사람을 장관으로 임명할 사고력을 가졌습니까. 억울합니다. 저는 제정신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 때 이씨는 무어라고 답변했나. “한 마디로 규정해 답변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답하지 않았던가.
따라서 6·25전쟁을 분명한 남침이라고 즉각 대답하지 못한 인사를 통일부장관에 임명한 노 내통령의 책임은 결코 가볍지 않을 것이다.‘제정신, 딴 정신’의 문제가 아니고 ‘적절한 인물을 기용했느냐’의 차원인 것이다.
아울러 노 대통령은 그런 질문이 나온 상황 자체를 ‘억울’하다고 표현했는데 이것도 사리에 맞지 않다. ‘격정 토로’에 의하면 노 대통령의 ‘억울’은 2002년 대선 TV토론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노 후보는 ‘김정일이 합리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을 받았는데 “이 질문에 대해 ‘예’ 하면 박살이 날 것이고, ‘아니오’라고 해도 곤란한 질문이었다”고 회상하면서 이 질문이 나온 상황도 억울하다는 소회를 우회적으로 말하고 있다.
사전에 보면 억울(抑鬱)의 뜻은 ‘① 억제를 받아 답답함. ② 애먼 일을 당해서 원통하여 가슴이 답답함’이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이 상황도 노 대통령에게 결코 억울한 게 아니다. 노 대통령은 ‘김정일도 나름대로 합리적인 사람이니까 전쟁을 도발하지 않고 있다’는 뜻을 언중에 나타내려고 애쓰고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 대통령의 자리는 자신의 가치판단을 배제한 몰역사적이고 기계적인 중립론, ‘반대편을 죽이는 문화는 안된다’같은 대북 일반론을 말할 수 없는 자리다. 보통사람들은 다 아는 이 사실을 대통령도 알면 억울이고 뭐고가 없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