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행 2주 만에 판사 30명 피고발 당해재판 불복 수단으로 전락한 '법왜곡죄'변호비 지원 등 '판사 보호' 고민하는 사법부학계 "결국 여론재판으로 변질될 것"
  • ▲ 대법원. ⓒ뉴데일리DB
    ▲ 대법원. ⓒ뉴데일리DB
    법왜곡죄는 시행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사법 불복의 새 통로로 번지는 양상이다. 재판 결과에 불복한 당사자들이 판결을 다투는 절차를 넘어 판사 개인을 형사고발 대상으로 삼는 흐름이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법왜곡죄 시행 이후 2주간 총 44건의 고소·고발이 접수됐고 판사 30명도 고발 대상에 올랐다. 서울경찰청 역시 지난 3일 피고발인 91명을 대상으로 수사 중이라고 밝혔다. 이 중 법관은 26명에 달했다. 
     
    법조계에서는 단순한 법왜곡죄 관련 사건 증가를 넘어 형사재판 전반의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실제 서울경찰청도 접수 사건의 대부분이 판결이나 수사 결과에 대한 불만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밝혔다. 

    판결이 선고되는 순간 법관이 곧바로 형사고발 대상이 될 수 있다. 이에 따라 법관 독립을 흔드는 현실적 압박이 이미 시작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혼선이 이어지는 가운데 지난 2일에는 처벌 대상을, 지난 6일에는 적용 범위를 다투는 취지의 헌법소원이 각각 제기됐다. 결국 법의 외연과 한계도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법관들만 고발 압박의 최전선에 놓였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 ▲ 사법부와 야당이 강하게 반발한 법왜곡죄 신설 형법 일부개정법률안(대안)이 지난달 26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통과되고 있다. ⓒ이종현 기자
    ▲ 사법부와 야당이 강하게 반발한 법왜곡죄 신설 형법 일부개정법률안(대안)이 지난달 26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통과되고 있다. ⓒ이종현 기자
    ◆ 판결문 대신 '피고발 대비책' 짜는 법원 … '재판 독립'의 역설

    11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은 지난 9일 기우종 법원행정처 차장 주재로 전국수석부장간담회를 개최했다. 각급 법원 수석부장판사 등 총 33명이 참석한 가운데 기 차장은 "법치주의 최후의 보루로서 재판 독립의 수호와 신속하고 공정한 재판 수행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일선 재판 현장의 변화와 대응 방안을 심도 있게 논의해달라"고 당부했다.

    간담회에선 법왜곡죄 도입 이후 법관을 상대로 한 고소·고발 증가와 형사재판부 기피 현상 심화 가능성이 주요 쟁점으로 다뤄졌다. 법왜곡죄는 판·검사 등이 타인에게 이익을 주거나 권익을 해할 목적으로 법을 왜곡해 적용한 경우 10년 이하 징역 또는 10년 이하 자격정지에 처하도록 하는 것이다. 

    수석부장판사들은 형사법관들이 위축되지 않고 재판 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대를 이뤘다.

    구체적으로 ▲법관 대상 변호인 선임 지원 ▲전담 대응 기구 설립 ▲고소·고발 대응 매뉴얼 제작 ▲부당소송 지원 내부 규정 정비 등 지원 방안이 논의됐다. 법왜곡죄 시행 이후 일선 형사재판부가 감당해야 할 부담이 단순한 우려를 넘어 현실적인 대응 과제로 떠올랐다는 의미다.

    앞서 대법원은 지난달 12일 각급 법원장 등 총 44명이 참석한 가운데 전국법원장간담회를 개최하고 '법왜곡죄에 따른 형사법관 지원 방안'을 논의한 바 있다. 법왜곡죄 시행과 동시에 형사법관의 고소·고발에 대한 부담과 재판에서의 어려움 가중이 예견된 것이다.

    이어 지난달 16일에는 '형사재판 보호·지원 태스크포스(TF)'를 구성했다. 법왜곡죄 시행과 동시에 형사법관의 고소·고발 부담과 재판 위축 가능성이 예견되자 사법부가 본격적인 지원 체계 마련에 착수한 것이다.

    기 차장은 당시 "법왜곡죄가 법관들의 자긍심을 지키는 데 걸림돌이 되지 않고 재판작용이 위축되지 않도록 정책적 조치들을 세심히 모색하겠다"고 전했다. 

    법원이 재판 독립 수호를 위해 판결 논리 못지않게 법관 보호 장치까지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에 법왜곡죄가 사법부에 가한 압박의 현실을 보여준다는 평가가 나온다.

  • ▲ 대법원. ⓒ뉴데일리DB
    ▲ 대법원. ⓒ뉴데일리DB
    ◆ "소신 판결 대신 '보복 고발' 우려 … 재판 독립 흔드는 족쇄"

    사법부가 직접 형사법관 보호 장치 마련에 나선 것 자체가 법왜곡죄의 구조적 결함을 드러낸다는 지적이 나온다. 법관 개인 보호에 대한 대책이 마련되더라도 법 자체가 존치하는 한 임시방편에 그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 같은 혼란이 법 도입 당시부터 예견된 일이었다고 봤다. 피해 당사자뿐 아니라 제3자까지 고발할 수 있도록 문을 열어둔 이상 사건 폭증은 당연한 수순이었다는 것이다.

    장 교수는 "피해를 본 당사자가 문제를 제기하는 것과 제3자까지 고발할 수 있게 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이라며 "그렇게 법을 만들어 놓고 고소·고발이 늘어난다고 걱정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라고 전했다.

    이어 "사건이 들어오면 하나하나 다 검토해야 한다"며 실무 부담도 지적했다. 법왜곡죄 고소·고발이 늘어남에 따른 사건 수 증가 자체가 곧바로 업무 부담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 업무 증가는 법관 개인뿐 아니라 사법부 전체에 상당한 압박으로 작용할 것"이라며 "대법관을 늘리거나 내부 지원책을 보강하는 정도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부담"이라고 부연했다.

    장 교수는 법관 개인에 대한 압박은 단순한 행정 부담에 그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재판을 맡은 법관이 판결 이후 자신이 고발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까지 의식하게 되면 재판 독립은 그만큼 위축될 수밖에 없다는 우려다.

    또한 "결국 여론재판으로 가는 것"이라며 "재판 과정 내내 고소·고발 가능성을 의식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소신 있는 판결을 하겠느냐"고 했다. 

    법관이 법과 양심보다 사후 부담을 먼저 계산하게 되는 순간 재판 독립은 이미 흔들리기 시작했다는 취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