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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24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잠시 생각에 잠긴 모습. ⓒ뉴시스
권력은 언제나 스스로를 정당화한다. 특히 압도적 의석을 손에 쥔 정치 세력일수록 자신들의 결정이 곧 민심이라고 착각하기 쉽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다수결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다수의 권한을 인정하면서도 소수의 견제와 비판을 보장하는 제도적 장치를 함께 존중할 때 비로소 정치가 완성된다.
더불어민주당이 국회 후반기 원 구성을 둘러싸고 다시금 힘의 논리를 앞세우고 있다. 협상보다 강행, 타협보다 독주를 선택했다. 6·3 선거에서 표심이 갈린 이유는 복합적이지만 적어도 그 결과를 '여당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백지수표로 해석할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선거는 특정 정당에 권력을 위임한 것이지, 견제와 균형이라는 의회제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를 정지시킨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민주당이 야당과의 협의 없이 상임위원장 자리를 일방적으로 독식하겠다고 압박하는 모습은 선거에서 표출된 다양한 민심을 의회 운영 단계에서 다시 한 번 무시하는 행태일 뿐이다. 국민은 국정 운영의 주도권을 부여했을 뿐 야당을 무력화하라고 명령한 적은 없다.
특히 국회 법제사법위원장 문제는 단순한 자리 나눠 먹기가 아니다. 법사위원장은 오랜 기간 제2당이 맡아온 국회의 대표적 관례다. 그 이유는 분명하다. 법사위는 각 상임위를 통과한 법안을 최종적으로 심사하는 관문이다. 입법 권력을 장악한 다수당에 대한 '최소한의 견제 장치'로 기능해 왔다. 국회가 일당 독주 체제로 흐르는 것을 막기 위한 제도적 안전판이었던 것이다.
민주당은 관례를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할 수 있다. 맞는 말이다. 관례는 헌법도 법률도 아니다. 하지만 민주주의에서 관례는 단순한 습관이 아니다. 오랜 정치적 경험에서 형성된 절제의 문화이며 권력 남용을 막기 위한 암묵적 규범이다. 힘이 있다고 해서 관례를 가볍게 무시하는 순간 정치는 제도의 정신보다 숫자의 논리에 종속된다.
더욱이 민주당은 이미 행정부와 입법부를 동시에 장악한 집권 세력이다. 여기에 법사위를 비롯한 모든 상임위원장 자리까지 독식하겠다면 그 책임도 전적으로 떠안아야 한다. 국정 성과를 비롯해 실정의 책임까지 오롯이 감수해야 한다. 야당의 발목잡기를 핑계로 삼을 수도 없고 국회 구조를 탓할 수도 없다. 모든 권한을 갖겠다면 모든 책임도 져야 하는 것이 민주정치의 기본 원칙이다.
그렇다면 민주당은 국민 앞에 한 가지 약속부터 해야 한다. 지금처럼 다수당이 모든 상임위를 가져가는 것이 옳다고 믿는다면 훗날 자신들이 야당이 됐을 때에도 동일한 원칙을 받아들이겠다고 선언해야 한다. 미래의 여당이 상임위원장을 전부 차지하더라도 이를 문제 삼지 않겠다는 '정치적 약속'이 있어야 최소한의 일관성이 성립한다.
하지만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정치권은 늘 자신이 여당일 때와 야당일 때 다른 말을 해왔다. 야당 시절에는 견제와 균형을 외치고 집권하면 효율과 신속성을 앞세운다. 민주당도 예외가 아니다. 그래서 지금의 원 구성 강행론은 원칙의 문제가 아니라 '힘의 문제'라는 비판을 받는 것이다.
국민은 6·3 선거를 통해 민주당에 적지 않은 권한을 부여했다. 그러나 동시에 무거운 책임도 함께 맡겼다. 권한만 행사하고 책임은 외면하는 정치는 오래가지 못한다. 역대 어느 정권도 영원한 지지를 누린 적은 없었다. 민심은 권력을 만들어 주기도 하지만 언제든 회수하기도 한다.
민주당이 진정으로 국민의 선택을 존중한다면 숫자의 우위보다 '의회의 품격'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다수의 힘으로 국회를 장악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러나 절제와 관용으로 국회를 운영하는 것은 훨씬 어려운 일이다.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것은 소수의 반대가 아니라 다수의 오만이라는 사실을 정치권은 잊지 말아야 한다. 민심을 등에 업었다고 믿는 순간이야말로 민심으로부터 가장 멀어질 수 있는 순간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러한 상황에서 정청래 민주당 대표가 "정권은 유한하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는 점이다. 지극히 당연한 말이다. 대한민국 정치사에서 영원한 권력은 없었다. 압도적 의석을 가졌던 정당도 높은 지지율을 구가하던 정권도 결국 민심의 평가를 받았다.
그렇다면 민주당은 스스로 내놓은 이 경고를 먼저 되새겨야 한다. 정권이 유한하다면 권력 행사에도 절제가 있어야 한다. 언젠가 야당이 될 수 있다는 전제 아래 제도를 운영해야 한다. 지금은 다수당이라는 이유로 법사위원장까지 독점하고 원 구성마저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면서 훗날 자신들이 야당이 됐을 때는 견제와 균형을 요구한다면 국민은 이를 원칙이 아닌 위선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국회 원 구성은 단순한 자리 배분이 아니라 그 정당이 권력을 대하는 태도를 보여주는 시험대다. 민주당이 지금처럼 비의회주의적 관행을 고수한다면 이는 단기적으로는 입법 효율을 가져다줄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견제받지 않는 권력에 대한 국민적 피로감과 반발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차기 총선은 멀지 않다. 유권자들은 오늘 국회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결국 투표로 평가한다. 민주당에 지금 필요한 것은 더 많은 권한이 아니라 더 큰 절제다. 정권은 유한하지만 그 권력을 어떻게 사용했는지에 대한 국민의 평가는 오래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