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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6자회담을 통해 북한 핵문제의 해결을 모색하기보다는 오히려 6자회담의 존속에 더 관심이 많으며 또한 6자회담을 향후 동북아 다자안보협력기제로 발전시키려는 의지가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동북아에서 다자안보협력기제가 형성되기에는 대단히 오랜 시간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미국과 중국 사이의 신뢰 형성이 우선되어야 한다. 따라서 중국은 6자회담을 통해 북한 핵문제의 해결에 기여함으로써 주변국들의 신뢰를 얻는 것이 더 효과적일 것이다." 이상은 얼마 전 닝푸퀘이(寧賦魁) 주한중국대사와의 간담회에서 필자가 닝푸퀘이 대사에게 질의한 내용이다.
일년이 넘도록 중단되었던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이 12월 18일 재개될 예정이다. 이번 6자회담은 지난 10월 9일 북한의 핵실험 이후 처음으로 열리는 회담이라는 점에서 관심이 모아지고 있으나 핵심 당사자인 미국과 북한 사이에 두 차례의 사전 협의에도 불구하고 상호간에 양보할 수 없는 입장이 팽팽하게 맞선 상태에서 열린다는 점에서 커다란 진전은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단적으로 말해 북한은 시간을 벌기 위해 미국은 명분을 벌기 위해 6자회담에 나오는 것이며 이번 회담의 성사에는 중국의 중재가 주효했다는 사실 이외에는 별다른 의미가 없다.
6자회담이 어렵게 재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커다란 진전이 없을 것이라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6자회담 재개에 대한 미국과 북한의 본질적인 입장 차이다. 현재 미국과 북한은 핵 폐기 가시화와 대북제재 해제라는 상호간에 양보할 수 없는 조건을 요구하고 있다. 6자회담이 재개되면 북한은 금융제재의 조기 해제와 안보리의 대북제재 철회 등을 강하게 요구하고 나올 것이며 이에 대해 미국이 북한의 6자회담 '초기 이행 조치'를 요구하면서 양자간에 갈등이 불거질 경우 6자회담은 또다시 장기간 공전될 수 있다.
둘째 '비핵화'에 대한 북한의 억지 주장이다. 북한은 말로는 '비핵화'를 주장하지만 실제로 이는 '비핵지대화'를 의미한다. 6자회담 참가국 중에서 북한을 제외한 5개국이 주장하는 '한반도 비핵화'는 북한의 핵보유를 불허하는 것인 반면 북한이 주장하는 '조선반도 비핵화'는 핵 보유국인 미국에 의한 핵 반입이나 사용을 금지하는 '비핵지대화'를 의미한다. 이는 바로 북한의 속셈이 '조선반도 비핵화'라는 명분 하에 북한의 핵에 앞서 미국의 핵을 논의하려 한다는 점을 말해 준다.
셋째 북한의 '핵보유국' 인정 요구이다. 북한은 2005년 2월 1일 핵무기 보유 선언에 이어 2006년 10월 9일 핵실험을 실시하는 등 국제사회로부터 핵보유국으로 인정받기 위한 노력을 부단히 전개해 왔다. 만약 북한이 핵보유국 지위를 확보하게 되면 "자신의 핵문제와 기존의 핵보유국인 8개국의 핵문제를 함께 다루어야 한다"는 억지 주장을 할 것이기 때문에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은 본래의 기능을 상실하고 북한의 요구대로 '포괄적인 핵군축회담'으로 성격이 바뀌는 것이 불가피해진다.
이상의 세 가지 문제는 6자회담의 장래는 물론 존재 자체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치는 핵심 사안으로 이에 대한 북한의 입장은 이미 여러 차례 표출되었다. 특히 북한이 10월 9일 핵실험 이후 '주한미군 핵 보유'와 '한국 내 핵무기 폐기'를 잇달아 주장하는 것은 북한의 핵실험을 정당화하고 6자회담을 군축회담으로 전환시키기 위한 포석으로 이해되기에 충분하다. 이는 북한의 핵실험이 이미 강행된 상황에서 열리는 6자회담을 통한 북한 핵문제의 해결은 고사하고 6자회담의 재개 자체가 무의미해졌다는 점을 말해 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6자회담이 재개된 원인은 북한의 시간 벌기, 미국의 명분 확보, 중국의 6자회담 존속이라는 입장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결과일 뿐이다. 북한의 경우 6자회담 재개가 지연될수록 강화될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를 피하고 중간선거에서 패배한 부시 행정부에 대해 협상력을 높이면서 미국의 다음 대선 결과를 기다리기 위한 시간 벌기의 성격이 강하다. 또한 6자회담을 통해 평화 분위기를 조성하여 내년 남한 대선에서 좌파세력의 정권 재창출에 유리한 환경을 만들려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 북한의 6자회담 '초기 이행 조치'에 대한 확답을 받지 않은 채 재개에 동의한 것은 "6자회담을 일단 재개하자"는 중국의 요구와 중간선거 이후 국내의 기류변화를 고려한 것이다. 또한 북한이 6자회담에서 핵 폐기보다는 지연 전술을 지속할 경우에 대비하여 전면적인 대북제재를 시행할 수 있는 대내외적인 명분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미국이 안보리 결의 1718호와 6자회담이 별개임을 주장하는 것은 그 이유이다.
중국의 경우 북한 핵문제의 해결보다도 더욱 중요한 것은 6자회담의 존속이다. 이를 위해 중국은 안보리 결의 채택에 적극 참여하는 한편 독자적인 채널을 이용한 대북 압력을 통해 북한의 6자회담 복귀를 강력히 주문했다. 그 결과 북한이 6자회담 재개에 동의함으로써 6자회담의 불씨가 살아났지만 중국은 북한 핵문제의 해결에는 관심이 없는 듯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제사회는 6자회담 재개를 통해 과연 무엇을 얻을 수 있는 것일까? 다만 사고뭉치 북한을 다시 6자회담으로 끌어들였다는 점 이외에는 별다른 의미를 찾을 수 없을 것 같다. 지난 3년 4개월 동안 다섯 차례나 6자회담을 개최했고 작년에는 북한의 핵 포기와 대북지원을 명시한 9·19공동성명까지 채택했지만 북한의 핵실험을 막지 못했다.
이번 6자회담은 북한의 핵실험 이후 처음으로 열리는 회담인 만큼 북한에 다시 시간을 벌어 주거나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받게 해 주는 자리가 되어서는 절대 안 된다는 것이 대원칙이다. 그러나 북한 핵문제의 해결보다는 단지 6자회담의 존속에 더 관심이 많은 중국과 "북한에 핵무기가 있더라도 한국의 군사력은 우월적 균형을 이루고 있다"는 북한 핵무기를 용인(容認)하려는 듯한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에 비추어 볼 때 이번에도 6자회담의 성공을 기대할 수 없을 것 같다.
"미국과 일본이 김정일을 계속 궁지에 몰아넣는다 해도 문제가 되는 것이 중국과 한국이다. 중국이 대북지원을 계속해 김정일 정권을 지속시키는 점이 북한의 장래를 생각하는데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라는 니시오카 쓰토무 일본 동경기독교대학 교수의 12월 8일 발언이 귀를 때린다. 특히 중국보다 훨씬 큰 변수는 친북정책을 취하고 있는 노무현 정권이라고 강조한 점이(2006. 12. 8, 프리존뉴스) 더욱 걱정스럽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