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대체 대한민국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어떻게 돌아가는지 헷갈린다. 이럴 때 한나라당은 국가적 이념을 분명히 제시해야 한다"(김정훈 의원. 3일 한나라당 주요당직자회의에서)

    북핵위기 속에서 '386간첩단'사건까지 터졌다. 북핵사태 이후 연일 '한미동맹' '국제공조'를 주장하며 안보를 강조하는 한나라당의 목소리는 간첩단 사건으로 더욱 커졌다. 당의 차기 유력 대선주자인 박근혜 전 대표와 이명박 전 서울특별시장,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도 한 목소리로 '안보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세 차기 대선주자의 목소리에서 차이점을 찾기 힘들만큼 빅3 모두 강성이지만 가장 적극적인 사람은 박 전 대표다. 북한 핵실험이 최근 주춤하는 박 전 대표의 지지율에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하지만 박 전 대표는 차기 대선주자 가운데 '안보문제'를 가장 강조해 온 인물이다. 

    이 전 시장과 손 전 지사가 이념문제에 한 발짝 물러서 있던 반면 박 전 대표는 '자유민주주의'라는 이념을 굵직한 현안마다 언급해왔다. 박 전 대표가 대표 재임 시절부터 가장 힘주어 말한 부분도 '국가정체성'이다. 국가정체성이 무너지면 나라의 운명도 끝이라는 게 박 전 대표의 평소 지론이기도 하다. 여권의 국가보안법 폐지 주장에 정치생명까지 걸었던 박 전 대표다. 때문에 최근 북핵사태에 이은 '386간첩단'사건은 박 전 대표가 목소리를 키울 기회라 할 수 있다.

    박 전 대표도 다른 무엇보다 '안보'문제에 중점을 두고 있다. 386간첩단 사건이 터지자 박 전 대표는 곧바로 자신의 미니홈피에 글을 올리고 "현 정권이 들어선 후 그동안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자주 일어났다. 간첩이 민주화 인사가 되고 간첩이 장군을 조사하고, 송두율·강정구 문제, 국가보안법 폐지 주장, 급기야 전시작전통제권, 북한 핵실험, 그리고 지금 고정간첩문제까지… 이 정권의 잘못된 국가관과 안보관에 대한 결과가 서서히 그리고 단계적으로 나타났다"고 비판했다.

    그는 "지금 일어나는 사건이 어쩌면 시작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나만의 생각이 아닐 것"이라며 "이제부터 시작이라면 앞으로 어떤 일이 얼마나 더 일어날지 큰 걱정"이라고 개탄했다. 2일 강연에선 북핵 사태와 관련, "조금이라도 국가와 민족에 도움이 된다면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할 수 있는 일은 다하겠다"며 '대북특사'시사 발언도 했다.

    당내에서 박 전 대표를 지원하는 그룹 측에서는 '386간첩단' 사건을 지지율 반전의 기회로 삼으려는 분위기다. 간첩단 사건으로 안보와 국가정체성, 이념을 강조해 온 박 전 대표를 부각시킬 수 있고 주춤거리는 지지율 상승도 꾀할 절호의 찬스라는 판단에서다. 2일 박 전 대표의 강연에 26명의 '친박(親朴)'의원들이 대거 참여해 박 전 대표의 본격적인 첫 대권행보에 힘을 실은 점도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 당의 한 핵심관계자도 "간첩단 사건이 박 전 대표에겐 기회가 될 것"이라고 했다.

    친박 의원의 지원사격도 본격화되는 모양새다. 3일 오전에 열린 주요당직자회의에서 김정훈 의원은 당 지도부에 '국가이념 문제'를 강조했다. 김 의원은 "대한민국에 국가정체성과 관련된 중대한 일이 계속 벌어지는데도 한나라당이 너무 조용하다"고 말했다. 그는 "어떤 사회나 가정도 조직이 갖는 이념적 기준이 있다. 대한민국의 이념적 기준은 분명 자유민주주의다"며 "그러나 헌법의 근본정신이 흔들리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고 주장했다.

    김 의원은 "정치권 핵심에서 간첩단 사건이 벌어지고 북핵실험 직후 여당 대표단이 방북해 북한 여성과 춤을 추고 일부 야당 대표는 김일성 생가를 참배하면서 미국과 일본을 비난하는 성명을 발표했다"며 "도대체 대한민국이 어디로 가고, 어떻게 돌아가는지 헷갈린다"고 지적한 뒤 "이럴 때 한나라당은 국가적인 이념기준을 분명히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의원은 이어 "간첩단 사건이 터졌는데 아무리 무죄추정의 원칙이 있다 해도 간첩혐의를 받는 쪽에서 국가정보원장이 허위수사를 한다면서 형사고소를 하고, 손해배상청구를 하고 일부 정치권에서는 이를 정치공작으로 몰아가려고 한다"며 "이는 명백히 간첩단 수사를 방해하려는 의도로 법치주의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라고 역설한 뒤 "당에서 진상조사단을 만들어 간첩단 사건 수사가 제대로 진행되도록 방향을 잡아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