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정동극장 대표이사에 서승만 임명문체부, 문화계 반대 여론에도 인사 단행대선 당시 '李 지지' 활동 ‥ 친명 정치 성향 문화예술계까지 번진 '불공정 낙하산 인사'"사사로운 인사가 나라 망쳐" 격언 명심해야
  • ▲ 개그맨 서승만이 국립정동극장 대표이사로 임명돼 논란이 일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선거대책위원회
    ▲ 개그맨 서승만이 국립정동극장 대표이사로 임명돼 논란이 일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선거대책위원회
    조선의 16대 국왕 인조(仁祖)는 폐모살제(廢母殺弟) 등으로 민심을 잃은 광해군(光海君)을 밀어내고 왕좌에 오른 인물이다. 반정(反正)으로 정권을 잡은 인조는 문신(文臣) 위주로 논공행상(論功行賞)을 펴 논란을 자초했다. 

    반정 당시 일등 공신이었던 이괄(李适)은 자신이 변방의 절도사로 밀려난 데 분을 품고 난을 일으켰다. 이로 인해 인조는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가운데 흙탕물을 뒤집어 쓰고 도성 밖으로 야반도주하는 치욕을 겪었다. 이 사태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국방력을 상실한 조선은 수년 뒤 후금(後金)에 국토를 유린당하는 정묘호란(丁卯胡亂)을 당하게 된다.

    쿠데타로 집권한 인조와는 경우가 다르나, 이재명 대통령도 전임 대통령의 실정(失政)을 기반으로 정권을 잡은 케이스다. 반윤(反尹) 여론에 힘입어 무너진 정권을 접수한 이 대통령은 취임 이후 마치 '퍼펙트 스톰'이 몰아치듯 전방위로 낙하산 인사를 강행하며 친명(親明) 인사를 각계 도처에 배치했다. 

    대장동 사건이나 대북 송금 사건 변호를 맡았던 수많은 변호인들이 청와대 민정수석실, 국가정보원, 법제처 등에 입성했고, 주UN대사, 금융감독위원장, 예금보험공사 사장, 국가권익위원장, 국정기획위원장, 한국지역난방공사장 등 민생·경제사회·외교를 아우르는 기관장 자리도 '그들'의 몫이 됐다.

    정치권에선 윤석열 정부가 실각한 데에는 비상계엄 선포라는 악수(惡手) 외에도 논공행상에 실패한 탓이 크다는 지적도 나온다. 당시 윤 정부는 정권 창출에 기여한 능력 있는 인사들을 인선에서 배제하고, 검증이 덜 된 외부 인사들을 중용해 구설에 올랐다. 제2, 제3의 이괄이 속출하면서 사분오열된 여권은 구심점을 잃고 시종 야당에 끌려다니는 신세가 됐다. 충성심이 사라진 이들이 정권의 위기를 방관한 건 어찌보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정치 9단'인 이 대통령도 이 점에 주목했을 터. 박근혜 정부 때부터 역대 대통령들의 흥망성쇠를 지켜본 이 대통령은 '보은(報恩) 인사가 만사'라는 결론을 내렸을지도 모른다. 

    '국민주권정부'를 표방하며 출범한 이 정부는 '통합'과 '실용'의 인사를 하겠다고 수차례 다짐했다. 그러나 주요 보직을 꿰찬 인사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정부의 인사 기조가 '전문성보다 충성도'라는 일각의 주장에 더 무게가 실린다. 

    정권 초반 폭풍처럼 몰아친 '낙하산 인사' 태풍이 이제 문화예술계로 넘어오는 분위기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 6일 공석이었던 예술의전당 사장, 국립오페라단 단장,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대표이사 자리에 각각 지휘자 장한나, 박혜진 단국대 교수, 유미정 단국대 교수를 임명했다. 이보다 앞선 지난 2월에는 배우 장동직이 소리소문도 없이 국립정동극장 이사장에 임명됐고, 지난해 말에는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장과 이사장 자리에 임진택 마당극 연출가와 강헌 대중음악 평론가가 각각 임명됐다. 

    당초 문화예술계에선 이 정부가 상대적으로 기초예술계를 홀대하고 있다는 성토가 나왔다. 현재까지 공석으로 남은 30곳 이상의 공공기관장 자리 상당수가 국공립 예술단체장이기 때문이다. 국립국악원, 서울예술단,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은 1년 이상 수장 없이 운영되고 있고, 한국문화예술위원회(아르코), 국립발레단, 국립현대무용단, 국립무용단, 국립창극단 등 기관장의 임기가 끝났거나 조만간 만료되는 곳도 수두룩하다. 그럼에도 후임 인선 소식은 좀처럼 들려오지 않고 있다. 'K컬처 300조 원 시대'를 만들어 세계 5대 문화강국이 되겠다는 큰 비전을 품었음에도, 문화계가 정부의 '급한 불'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정부가 예술단체장 인사를 서두르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정치권에선 지방선거를 앞두고 문화계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기관장 인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문제는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예술단체장 인사에서도 '전문성'보다 대통령과의 '친분'이 더 도드라진다는 점이다. 첼리스트 겸 지휘자 장한나는 이 대통령이 성남시장으로 재직하던 2011년, 성남아트센터 공연(앱솔루트 클래식 페스티벌)을 성공적으로 해낸 공으로 '명예 성남시민'이 됐다. 이 대통령이 성남시장일 때 가평홍보대사였던 배우 장동직은 20~21대 대통령 선거 당시 이재명 민주당 후보를 공개 지지하는 행보를 보였다. 평론가 강헌과 연출가 임진택은 이 대통령이 경기도지사로 일하던 시절 각각 경기문화재단 대표와 경기아트센터 이사장을 역임했다.

    '능력'보다 '누구의 사람인가'가 이 정부의 인사 기준이라는 '심증'은 10일 단행된 국립정동극장 대표이사 인사로 굳어지는 모양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이날 국립정동극장 대표이사에 서승만을 임명했다고 밝혔다. 서승만이 해당 기관장 하마평에 오르내린 건 2개월 전부터다. 직간접적으로 이러한 '설'을 접한 기초예술계 인사들 사이에선 "정부가 문화계를 만만하게 보는 듯하다" "문화계 자리에 연예계 인사를 앉히는 게 말이 되느냐"는 볼멘 소리가 불거졌다. 비슷한 시기 '구마적'으로 유명한 배우 이원종이 한국콘텐츠진흥원장 후보 물망에 올랐을 때도 마찬가지 반응이 나왔고, 결국 이원종은 고배를 마셨다. 이에 서승만에 대한 하마평도 곧 수면 아래로 가라앉을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본지 보도로 서승만의 내정설은 기정사실로 굳어졌고 이틀 후 임명이 확정됐다. 본지 보도 후 "말도 안 된다"는 문화계 인사들의 성토가 빗발쳤다. 관련된 항의 전화를 받았다는 부처 관계자도 여러 명이다. 10일 오전만 해도 보도자료가 나오지 않아 해당 인사가 철회된 게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왔으나, 문체부는 오후 2시경 서승만에게 과감히 임명장을 수여하는 '불통' 인사를 단행했다. 인사가 늦어지더라도 부디 '전문가'를 임명해 달라는 문화계의 소박한 바람이 물거품이 된 순간이었다.

    공적의 크고 작음을 따져 그에 알맞은 상을 주는 '논공행상'은 국가를 위시한 어느 조직에서나 매우 중요한 문제다. 앞서 예를 든 인조 정권처럼 논공행상을 소홀히 해 낭패를 본 경우도 허다하다. 

    하지만 논공행상의 '보상'이 공적인 직위를 가리킨다면 반드시 따라야 하는 전제조건이 있다. 해당 공직을 수행함에 있어 빈틈이 없는 '전문성'을 갖춘 인사여야 한다는 점이다. 그동안 권력의 실세와 가깝거나 정권 창출에 큰 공을 세웠다는 이유로 덜컥 공직을 맡았다가 그 조직을 망쳐버린 사례를 우리는 숱하게 목도해 왔다. 

    서승만은 기초예술 분야보다 방송활동으로 잔뼈가 굵은 사람이다. 게다가 정치 성향이 너무 강하다. 유튜브를 통해 이 대통령을 적극 지지해 온 그는 2022년 민주당에 입당했으며, 지난 4·10 총선에서는 민주당 비례 위성정당인 더불어민주연합 후보 24번으로 출마했다가 낙선한 바 있다. 2021년 9월에는 "대장동 개발은 해외에서도 칭찬했다. (대장동) 씹는 애들. 대선 끝나고 배 아파서 대장암이나 걸렸으면 좋겠다"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가 사과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이러한 정치 지향적 인사가 과연 정치적으로 균형 잡힌 예술공연을 무대에 올릴 수 있을지 의문이 드는 이유다.

    중국 춘추시대 노나라의 공자(孔子)는 "군자는 사람을 쓸 때 사사로운 감정을 따르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공적인 자리는 공적인 기준으로 채워야 한다는 원칙을 설파한 것이다. 또한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은 '국가론'에서 국가 운영의 핵심을 '적합한 자의 배치'로 봤다. 능력과 자질이 아닌 다른 기준이 개입될 때, 국가는 필연적으로 흔들린다는 경고였다.

    동양 고전에서도 비슷한 맥락의 교훈이 반복된다. '인사는 만사'라는 말은 단순한 수사가 아니다. 인사가 무너지면 조직도, 정책도, 신뢰도 함께 무너진다는 의미다.

    '인사권'은 권력의 중요한 도구다. 그러나 동시에 가장 무거운 책임이 따르는 영역이기도 하다. 국정 철학에 동조하는 인사를 중용하는 건 당연하다. 그렇다고 능력이 없는 인사들까지 한자리씩 챙겨 주는 건, 현 정권에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한 국민을 기만하고 우롱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공공의 자리를 '사적 신뢰'나 '보상'의 연장선으로 여기는 순간,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 

    지금 필요한 것은 새로운 구호가 아니다. 이미 수없이 반복된 원칙, '능력'과 '공정'이라는 기준을 실제로 지키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