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갉아먹는 '표현의 자유 옥죄기'"스타벅스 가자" 외쳤다고 미성년 학생에 중징계"무섭노"가 일베 표현? … 마녀사냥식 비판국민 생각에 '수갑' 채우는 나라 돼선 안 돼
  • ▲ 유튜브 채널 '안녕하세요원이입니다잘부탁드립니다' 방송 화면 캡처.
    ▲ 유튜브 채널 '안녕하세요원이입니다잘부탁드립니다' 방송 화면 캡처.
    "인류 모두가 같은 의견을 가지고 있고 단 한 사람만 다른 의견을 갖고 있더라도, 그 한 사람을 침묵시키는 것은 정당화될 수 없다."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이 저서 '자유론(On Liberty)'에서 남긴 이 문장은 오늘날 '사상의 자유시장(Marketplace of Ideas)' 이론의 철학적 출발점으로 평가받는다. 밀은 틀린 주장처럼 보이는 의견조차 진실을 발견하거나 기존의 진실을 검증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봤다. 다양한 의견이 자유롭게 경쟁하는 사회야말로 민주주의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표현의 자유는 단순히 '말할 권리'를 뜻하지 않는다. 언론의 자유와 권력 감시를 가능하게 하는 민주주의의 핵심 토대다. 헌법이 표현의 자유를 기본권으로 보장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표현의 자유가 위축되는 순간 민주주의 역시 함께 흔들릴 수밖에 없다. 

    그런데 최근 대한민국에서 자유로운 표현을 '해석'으로 억누르고, 해석이 다시 '낙인'과 '처벌'로 이어지는 기현상이 반복되고 있다.

    배재고 야구부 징계 논란은 우리 사회의 집단적 낙인 찍기가 가져오는 풍광을 적나라하게 펼쳐주고 있다. 

    청룡기 고교야구대회에서 배재고 학생들이 광주일고를 상대로 "스타벅스 가야지"라는 구호를 외쳤고, 일부에서는 이를 5·18 민주화운동을 조롱하는 표현으로 규정했다. 결국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는 배재고에 전국대회 6개월 출전 정지라는 중징계를 내렸다.

    5·18을 희화화하거나 비하하는 행위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미성년 학생들의 치기 어린 구호를 특정 정치적 의도로 단정한 뒤 선수들의 진로와 대학 입시까지 영향을 미칠 정도의 중징계를 내린 것이 과연 잘못의 정도에 걸맞은 처분이었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국민의힘 정점식 원내대표는 "교육과 지도는 필요하지만 아이들의 꿈을 짓밟을 권리까지 있는 것은 아니다"고 지적했고, 호남 출신인 양향자 최고위원 역시 "혐오적 표현은 잘못됐지만 벌이 지나치다"고 우려했다. 서민민생대책위원회와 자유대한호국단은 협회 관계자들을 고발하며 과도한 처분이라고 맞섰다.

    논란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번에는 경남 거제 출신 걸그룹 리센느의 리더 원이가 유튜브 콘텐츠에서 "무섭노"라고 말한 것이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식 표현이라는 황당한 논란으로 번진 것이다.

    일부 정치권 인사와 네티즌들은 문장 끝의 "~노"를 노무현 전 대통령 비하 표현과 연결하며 문제를 제기했다.

    그러나 이 주장은 국내 언어학계의 연구 성과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동아대학교 국어문화원 안태형 교수는 과거 방송 인터뷰에서 동남방언의 "~노"는 단순한 의문형 어미를 넘어 감탄, 독백, 혼잣말에서도 폭넓게 사용된다고 설명했다. "와 이렇게 졸리노", "참 신기하노"와 같은 표현이 대표적이다.

    국립국어원의 방언 조사 자료에서도 경남·경북 지역에서 "~노"가 의문뿐 아니라 화자의 심리 상태를 드러내는 '감탄형 종결어미'로 기능하는 사례가 다수 확인된다.

    방언학계에서도 비슷한 설명이 이어진다. 경상도 방언을 연구한 여러 학위논문과 한국방언학회 논문들 역시 "~노"가 단순 의문문에만 한정되지 않고 감탄적 용법으로도 폭넓게 쓰인다는 점을 공통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실제 경상도 지역에서는 "와 이렇게 덥노" "무섭노"처럼 감탄을 나타내는 용례가 흔하게 쓰이고 있다.

    결국 "무섭노"를 곧바로 일베 표현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언어학적 근거보다 정치적 해석이 앞선 판단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경북 안동 출신 방송인 김시덕 역시 "무섭노는 경상도에서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의문형 종결어미"라며 "언제부터 사투리를 쓰면 일베가 되었느냐"고 반문했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그는 "언어학자들이 동남방언에서 '~노'가 의문뿐 아니라 감탄과 독백에도 쓰인다고 설명하는데도 낙인찍기가 멈추지 않는다"며 여론조사 실시까지 예고했다. 경남 거제 출신 스물두 살 청년이 고향말을 사용했다는 이유만으로 정치적 의심을 받는 현실 자체가 비정상이라는 것이다.

    배재고 학생들의 응원 구호가 정치적 의미로 해석됐고, 리센느 원이의 고향 사투리는 졸지에 혐오 발언이 됐다.

    자유로운 표현을 '해석'이 가로막았고, 해명도 듣기 전에 '낙인'이 찍혀 버렸다. 그야말로 민주주의의 근간을 이루는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위축시키는 사례가 아닐 수 없다. 

    더 우려스러운 점은 정치권의 이중잣대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이 5·18 문제에는 극도로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면서도 같은 진영 인사들의 역사 인식 논란에는 침묵하거나 관대한 태도를 보여 왔다고 비판한다.

    실제로 최교진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과거 천안함 음모론을 공유하고 박정희 전 대통령 서거일을 "탕탕절"이라고 표현해 논란을 빚었다. 친여 성향 방송인 최욱 역시 "탱크로 밀어버려야 한다"는 발언으로 거센 비판을 받았다.

    국민의힘 이진숙 의원은 "탕탕절은 괜찮고, '탱크' 발언은 사과로 끝나는데, 고등학생들의 '스타벅스 가야지'는 6개월 출전 정지냐"며 "생각에 수갑을 채우는 나라가 돼서는 안 된다"고 비판했다.

    표현의 자유는 내가 좋아하는 말만 보호하기 위해 존재하는 권리가 아니다.

    오히려 불편하고, 거슬리고, 심지어 틀렸다고 생각하는 표현까지도 보호하는 것이 자유민주주의의 원칙이다. 존 스튜어트 밀이 말했듯 침묵을 강요하는 순간 사회는 진실을 검증할 기회를 잃는다.

    그런 의미에서 7일부터 시행되는 개정 정보통신망법에 대해서도 적지 않은 우려가 제기된다.

    더불어민주당이 지난해 12월 다수 의석으로 통과시킨 개정 정보통신망법은 허위조작정보 유통 시 최대 5배의 징벌적 손해배상을 부과하고, 반복될 경우 배상액을 최대 10억 원까지 확대하도록 규정했다.

    법은 '사실이나 의견 전파를 업으로 하는 자'를 주요 규제 대상으로 삼는다. 언론사와 직업 유튜버가 사실상 첫 번째 적용 대상이라는 의미다.

    언론사든 유튜버든 10억 원은 감당하기 어려운 금액이다. 설령 실제 적용 사례가 많지 않더라도, 언제든 거액의 배상 책임을 질 수 있다는 공포는 자기검열을 낳는다. 권력을 향한 비판은 점점 조심스러워질 것이고, 불편한 질문은 스스로 사라질 것이다.

    여기에 하루 이용자 100만 명 이상 플랫폼 사업자에게 허위정보 유통 방지 의무까지 부과하면서 네이버와 카카오 등은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콘텐츠 사전 차단을 더욱 강화할 가능성이 높다. 결국 권력이 불편해할 만한 콘텐츠를 플랫폼이 먼저 걸러내는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물론 허위정보는 사회적 해악이 될 수 있다. 그러나 허위정보를 막겠다는 명분이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는 수단으로 악용돼서는 안 된다.

    민주주의는 언제나 불편한 자유를 감수하는 체제다.

    사투리를 정치적으로 의심하고, 응원 구호를 사상 검증의 대상으로 삼고, 거액의 손해배상으로 비판을 위축시키는 사회는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라 두려움이 지배하는 사회에 더 가깝다.

    더불어민주당은 '가짜뉴스와의 전쟁'이라는 명분에 취하기 전에 먼저 민주주의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을 돌아봐야 한다.

    권력은 언제나 표현의 자유를 불편해 한다.

    그래서 민주주의는 권력이 아니라 시민의 자유를 먼저 보호하도록 설계돼 있다.

    그 원칙을 잊는 순간, 대한민국은 '자유를 지키는' 민주공화국이 아니라 '자유를 허가받아야 하는' 나라로 한 걸음 더 다가가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