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일보 10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홍정기 논설실장이 쓴 '한나라당의 한(恨)'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대통령에 당선된 당원은 당의 정강·정책을 충실히 국정에 반영하고, 당은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적극 뒷받침하며 그 결과에 대하여 대통령과 함께 국민에게 책임을 진다” - 한나라당의 당헌 제8조 ‘당과 대통령의 관계’다(‘대통령과 당의 관계’가 아니다).

    당원이 대통령에 당선되면 당선자와 여당은 운명공동체로 묶여 잘잘못 모두 역사의 일괄 평가를 받는다. 명문 당헌이 없다고 달라질 것 없다. 지난해 11월17일 한나라당의 당헌 전면개정 전말을 지켜본 열린우리당이 11월23일과 12월26일에 걸쳐 두번 다듬은 당헌엔 그 엇비슷한 규정도 없다(집권당 최악의 참패로 대한민국 선거사에 그늘진 기록을 남긴 5·31 이래 열린우리당은 노무현 대통령이 점점 미덥잖아지고 노 대통령도 열린우리당이 미쁘잖아진다지만 그런 당헌이 없어 그런 것은 물론 아니다. 2002년 12·19 대선 당시 노 대통령은 민주당원이었지 않으냐고 묻는다면 그것 역시 실도 부질도 다 없는 말장난이다).

    ‘당과 대통령의 관계’에 관한 당헌이 있고 없는 차이는 두 당의 공통된 ‘대통령의 당직 겸임 금지’ 당헌 때문에 더 도드라진다. 한나라당 당헌은 위 제8조 직전 제7조에서 ‘대통령에 당선된 당원은 그 임기동안에는 명예직 이외의 당직을 겸임할 수 없다’고 못을 박았다. 열린우리당 당헌 제140조는 전후단 두 문장으로 나눴다 - ‘당원이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경우, 그 임기동안에는 당직을 가질 수 없다. 단, 명예직의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대통령 선거와 관련한 한나라당의 별난 당헌은 그 말고도 더 있다. 제84조 2항 - 대선후보 경선에 출마하려면 상임고문 이외 모든 선출직 당직으로부터 선거일 1년6개월 전에 사퇴해야 한다는 규정이다. 이어 제85조 - 대선후보는 선거일 전 180일까지 선출한다고 선을 긋고 있다. 선출된 후보의 유고(有故)로 후보를 달리 정해야 할 비상상황이 아니라면 선거일 6개월 전에 후보를 확정해놓겠다는 것이다. 열린우리당 당헌 제102, 141조는 후보경선 선거관리위원회 구성을 중앙위원회의 권한으로 정하고, 당의장 또는 원내대표가 대선후보 경선에 출마할 때에는 후보등록개시일 3개월 이전에 그 직을 사퇴하라고 하고 있다. 한나라당에 비해 한결 느긋하다. 열린우리당은 또 당헌으로 대선후보 선출시한을 못박지도 않고, 그 시기도 당헌 아닌 당규 제9조의 1로 내려 중앙위 인준대상으로 정하고 있다.

    굳이 가르자면 열린우리당의 시선은 대선후보 경선에서 대선으로 시간의 흐름을 좇는데 비해 한나라당의 그것은 대선에서 대선후보 경선으로 시간을 역류시키는 느낌이다. 필자의 눈에 이 역류는 한나라당의 한(恨)으로 비친다 - 잃어버린 대통령, 이미 지나간 8년반과 앞으로 지켜봐야 할 1년반을 합한 10년의 한.

    그런…가, 글쎄.

    한나라당의 법통이야 역시 시간의 흐름을 거슬러 신한국당, 민자당 등에 가닿는다. 그러나 전신 아닌 당대의 한나라당 출범일, 다시 말해 현행 당헌의 제정일인 1997년 11월21일을 역사는 어떻게 기록하고 있는가. 임창열 당시 재정경제원 장관이 외환위기 극복을 위해 국제통화기금(IMF)에 급한 대로 구제금융 200억달러 지원을 공식 요청했다고 적고 있을 따름이다. 돌이켜 생각해도 한스러운 날이다.

    그 전후의 연표를 다 훑어도 그달 앞서 7일 신한국당을 탈당한 김영삼 대통령이 11월22일(21일이 아니다, 물론) 당면한 IMF환란과 관련해 “국정 최고책임자로서 참으로 송구스러울 뿐”이라면서 “경제적 난국을 이겨내기 위해 정부의 노력에 힘을 합쳐달라”고 호소했다는 사실을 나열할 정도에 그친다. 신한국당의 한나라당 신장개업에 관한 기록을 찾자면 박물관을 뒤져야 할 판이다. 결국 그해 7월21일 대선후보로 선출된 이회창의 화장이었다는 게 그해와 또 5년 후의 연패를 지켜본 역사의 서늘한 시선이다.

    11일 한나라당 전당대회를 앞두고 성명 가나다라 순으로 박근혜·손학규·이명박의 시선 세 줄기가 얽히고설킨다. 그들 중 누가 내년 2007년이 대통령 설한(雪恨)의 10년이라고 목소리 높이기 전에 ‘환란의 설한 10년’임을 먼저 부끄러워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