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료비·세금 부담 한계"…30년 지킨 칼국수집도 '폐업 각오'서울 칼국수 평균 1만 원 첫 돌파…소비자원 데이터도 '비상'비빔밥·김밥도 줄인상…사라진 '1만 원의 행복'"원가·공공요금 전방위 압박에 '물가 고착화'"
  • ▲ 17일 오전 서울 송파구의 한 칼국수 노포. 칼국수 가격이 1만 원을 넘기고 있다. ⓒ임찬웅 기자
    ▲ 17일 오전 서울 송파구의 한 칼국수 노포. 칼국수 가격이 1만 원을 넘기고 있다. ⓒ임찬웅 기자
    "아내랑 30년 동안 여기서 장사했는데 뭐 별 수 있나. 버티다 안 되면 문 닫아야지"

    17일 오전 서울 송파구 가락시장 인근의 한 칼국수 집. 점심 장사 준비에 한창이어야 할 노포 주인 80대 김모씨의 목소리는 무거웠다. 수십 년 동안 인근 직장인들의 점심을 책임져 온 이곳조차 최근 물가 폭탄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김씨는 "최근 몇 년 간 면이며 김치며 안 오른 재료가 없다"며 "여기에 공과금과 세금 부담까지 겹치니 더는 가격을 올릴 수도, 그렇다고 유지를 할 수도 없는 벼랑 끝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김씨는 "항상 문을 닫을 마음의 각오를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날 한국소비자원 가격정보종합포털 '참가격' 외식비 통계에 따르면 서울 지역 칼국수 평균 가격은 1만38원을 기록하며 처음으로 1만 원대를 돌파했다. 해당 메뉴는 올해 2월 평균 9962원이었으나 한 달 사이 0.7%가 올랐다.

    직장인의 대표 외식 메뉴 중 하나인 칼국수가 1만 원이라는 '심리적 마지노선'을 넘어서자 식당가의 한숨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송파구에서 또 다른 칼국수 집을 운영하는 60대 이모씨는 "면부터 조미료까지 안 오른 재료가 없다"며 "한번 오르면 내려갈 줄 모르니 부담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거기에 세금이며 인건비며 부담이 되어 몇 달 전 메뉴 가격을 올릴 수밖에 없었다"며 "칼국수 가격이 1만 원이 넘어가니 손님들도 심리적 부담을 느끼는지 이전보다 점심시간 손님이 줄었다"고 설명했다.
  • ▲ 17일 오전 서울 송파구의 한 칼국수 식당 전경. ⓒ임찬웅 기자
    ▲ 17일 오전 서울 송파구의 한 칼국수 식당 전경. ⓒ임찬웅 기자
    ◆"9000원도 부담"…상인은 울고 직장인은 떠났다

    치솟은 칼국수 가격에 직장인들도 상당한 부담을 느끼고 있다. 송파구에서 만난 직장인 20대 최모씨는 "1만 원에 육박하는 칼국수를 보면 점심식사가 부담된다"며 "요즘은 동료들과 식당에 가는 대신 도시락을 싸 오거나 가끔 편의점을 이용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30대 직장인 박모씨는 "예전에는 7000~8000원에 먹을 수 있던 칼국수가 어느새 1만 원대로 올라섰다"며 "식후 커피값까지 생각하면 1만 원 한장으로 점심과 커피를 해결하는 것은 이제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대를 형성해 직장인들이 몰렸던 시청역 인근 등 직장 밀집 지역도 상황은 비슷하다. 이 일대 칼국수 가격이 대부분 9000원대를 유지하며 가성비를 찾아 모여들던 발길도 눈에 띄게 뜸해진 모습이다.

    시청역 인근에서 근무하는 30대 직장인 차모씨는 "직장 건물 지하에 칼국수집이 있는데 가격대가 9000원이라 매일 먹기엔 부담스럽다"며 "1만 원 지폐 한장을 내고 나면 남은 돈이 없어 자연스럽게 근처 한식 뷔페나 저가 커피 전문점 등으로 향하게 된다"고 말했다.

    시청역 인근에서 근무하는 또 다른 30대 직장인 김모씨는 "칼국수마저 1만 원에 가까워지니 이제는 식당을 고를 때 가격표부터 보게 된다"며 "동료들 사이에서도 점심식사 후 저가 브랜드 커피를 찾아 멀리까지 걸어가는 것이 일상이 됐다"고 덧붙였다.
  • ▲ 한국소비자원 가격정보종합포털 '참가격'에 공시된 올해 3월 기준 외식비 통계. ⓒ한국소비자원 가격정보종합포털 '참가격' 캡쳐
    ▲ 한국소비자원 가격정보종합포털 '참가격'에 공시된 올해 3월 기준 외식비 통계. ⓒ한국소비자원 가격정보종합포털 '참가격' 캡쳐
    ◆"내려갈 요인 없어…고물가·경기침체 겹친 '악순환의 늪'"

    칼국수뿐만 아니라 비빔밥과 냉면, 김밥 등 대표적인 직장인 점심 메뉴도 이미 1만 원 선을 위협하는 상태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 지역 비빔밥 평균 가격은 1만1615원을 기록했다. 냉면 역시 1만2538원으로 1만 원을 넘어선 지 오래다.

    서민들의 '마지막 보루'로 여겨졌던 김밥 가격의 상승세도 가파르다. 서울 지역 김밥 한 줄의 평균 가격은 3323원이지만 속재료가 추가된 프리미엄 김밥 등은 이미 한 줄에 5000원에 육박하는 곳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이러한 전방위적 물가 상승에 대해 전문가들은 고물가 기조 속에서 원자재 가격과 운영 비용이 동시다발적으로 상승한 결과라고 분석한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이날 뉴데일리와의 통화에서 "외식비 상승은 식재료와 인건비, 임대료 등 전반적인 비용이 모두 오르고 있기 때문이라 특정 요인 하나를 꼽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1만 원이 넘었다는 것은 소비자들에게 심리적으로 매우 큰 부담"이라고 말했다. 이어 "선택지가 넓은 일반인과 달리 직장인은 인근 식당을 이용할 수밖에 없어 부담을 감수하거나 더 저렴한 선택지를 찾게 되는 구조"라고 덧붙였다.

    대외적 악재로 인한 고물가 고착화가 서민층의 타격을 가중시킨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영애 인천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원자재 가격 상승과 중동 전쟁 등 여파로 인한 연료비 인상 등 악재가 겹치며 물가가 내려갈 요인이 전혀 없는 상황"이라며 "통계적 지표보다 소비자들이 느끼는 체감 경기는 훨씬 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소비자들이 줄일 수 있는 항목을 이미 다 줄인 상황에서 매일 지출되는 식비를 더 줄이려 노력하다 보니 체감하는 팍팍함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며 "특히 식비 비중이 큰 저소득층과 학생, 서민들의 체감이 더 커질 것 같아 우려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