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정재판부 회부 0% 본안 심리 문턱 높아사실관계 다툼 '단순 불복' 분류, 심사 제외확정 판결 후 30일 기한에 줄줄이 각하고액 수임료 선행 구조, '매몰 비용' 가중법조계 "입법 미비 속 사법 포퓰리즘"
  • ▲ 헌법재판소. ⓒ뉴데일리DB
    ▲ 헌법재판소. ⓒ뉴데일리DB
    헌법재판소가 개정 헌법재판소법 시행 이후 접수된 재판소원 153건 가운데 사전심사를 마친 26건을 전건 각하하며 본안 심리의 문턱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국민 권리 구제를 명분으로 도입된 제도가 구제 기능 없이 형식적 절차에 머물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시행 초기 인용률 '0%'에 그치며 국민의 부담만 가중된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본안 심리가 개시되기도 전에 고액의 수임료부터 지불해야 하는 구조 속에서 권리 구제 가능성은 낮다는 것이다. 국민의 '매몰 비용'만이 사법 시스템 내에서 양산될 수 있다는 우려 또한 이어진다.

    법조계에서는 이러한 '전건 각하' 사태가 제도 도입 당시부터 예견된 결과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유의미한 권리 구제 통로는 마련되지 못한 채 '접수 창구'만 늘려놓은 입법의 한계가 드러났다는 것이다. 이에 일각에서는 실질적 구제 없이 절차적 비용만 소모하게 되는 '사법 포퓰리즘'의 전형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 ▲ 김상환 헌법재판소장. ⓒ서성진 기자
    ▲ 김상환 헌법재판소장. ⓒ서성진 기자
    ◆ 사실관계 다툼은 '단순 불복' … 본안 심리 '0건'

    25일 법조계에 따르면 지정재판부 심사를 마친 26건의 사건은 예외 없이 본안 심리 문턱을 넘지 못했다. 헌재는 대부분의 사안을 사실관계 인정이나 증거 평가에 대한 다툼인 '단순 불복'으로 규정해 심리 대상에서 제외했다.

    각하 사유는 ▲청구 사유 미비가 17건으로 가장 많았고 ▲청구 기간 도과 5건 ▲청구 부적법 3건 ▲보충성 위반 2건 순이었다. 

    헌재는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청구 사유 미비'에 대해 "재판 결과에 대한 단순한 불복에 불과해 헌법상 보장된 기본권 침해가 명백하다는 점이 소명되지 않았다"면서 "사실관계 인정이나 증거 평가에 대한 다툼은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재판부의 사실관계 오인이나 무리한 증거 채택은 국민이 체감하는 가장 직접적인 기본권 침해다. 다만 헌재 기준에 따르면 이는 본안 심리 대상조차 되지 못한다.

    제도 도입 당시 더불어민주당 백승아 원내대변인이 "법원의 확정판결이라도 기본권을 침해하면 판단을 받을 수 있는 장치"라고 강조하고 헌재 역시 "충실한 권리 보호 절차로 기능할 것"이라고 밝힌 것과는 대조적인 결과다.
  • ▲ 헌법재판소. ⓒ뉴데일리DB
    ▲ 헌법재판소. ⓒ뉴데일리DB
    ◆ 짧은 청구 시한에 보충성까지 … 가중되는 '매몰 비용'

    헌재는 재판소원 청구 기간인 '판결 확정일로부터 30일'을 도과한 5건의 사안을 모두 각하했다. 해당 청구 기간은 일반적인 헌법소원 청구 기간인 기본권 침해를 안 날로부터 '90일'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헌재는 제도 시행 이전 확정 판결에 대해 재판소원을 제기한 청구인의 "개정 전 헌재소법이 재판소원을 허용하지 않아 청구하지 못했던 것이므로 '정당한 사유'가 인정돼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정당한 사유가 인정된다고 보기 어렵다"며 각하했다.

    헌재소법 제69조 제1항은 '정당한 사유'가 있을 경우 예외적으로 기간을 보전해주도록 규정한다. 앞서 헌재는 '청구인이 객관적으로 장애를 겪은 경우', '공권력의 행사 사실을 뒤늦게 알 수밖에 없었던 특수한 사정이 인정된 경우' 등의 사례에서 청구인의 방어권을 우선해 왔다.

    수십 년간 금지됐던 재판소원이 처음 허용된 상황에서 이번 각하 결정은 지나치게 보수적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제도 시행 초기 발생할 혼란이나 대리인 선임에 소요되는 물리적 시간 등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점에서다.

    아울러 헌재는 상고심은 물론 즉시항고 및 재항고 절차를 거치지 않을 경우 '보충성 요건' 위반으로 각하했다. 헌재는 소액사건처럼 상고가 사실상 제한된 경우에도 대법원의 최종 판결을 거치지 않았다면 부적법하다고 판단했다. 청구인은 "소액사건심판법상 상고 이유에 해당하지 않아 상고를 포기했다"며 절차적 한계를 호소했으나 헌재는 각하 결정했다.

    헌재의 엄격한 보충성 요건은 대리인 선임이 필수적인 '변호사 강제주의'와 맞물려 청구인의 부담을 가중시키는 요인이 된다. 현행법상 재판소원은 반드시 변호사를 대리인으로 선임해야 한다. 청구인이 헌재 문턱을 밟기 위해서는 3심 절차를 모두 거친 후 추가 비용을 지불하게 된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지정재판부의 본안 심리 회부율이 사실상 0%인 현실에서 헌재가 절차적 완벽성만을 요구하는 태도가 서민들에게 무의미한 추가 수임료 지출을 강제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국민에게는 사법 시스템 내의 '매몰 비용'만을 양산하고 있다는 목소리다.
  • ▲ 헌법재판소. ⓒ뉴데일리DB
    ▲ 헌법재판소. ⓒ뉴데일리DB
    ◆ "권리 구제 장치"라더니 … "비용만 남는 4심제" 비판

    법조계와 학계에서는 이번 ‘전건 각하’ 결과를 두고 재판소원 제도가 실질적 권리 구제 수단으로 기능하기 어렵다는 평가가 나온다. 제도 도입 당시 내세웠던 ‘국민 권리 보호’라는 명분과 달리, 현실에서는 절차만 늘린 채 비용 부담만 가중시키고 있다는 지적이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재판소원이 공포와 동시에 시행되면서 요건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채 급하게 청구된 사건들이 상당수"라면서도 "향후 사건이 대거 유입될 경우 헌재로서는 엄격한 사전심사를 할 수밖에 없어 실질적인 권리 구제 통로로 기능할지는 장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장 교수는 특히 "재판소원 도입으로 사건이 폭주할 경우 재판 지연이 심화될 수 있다"며 "독일·스페인처럼 사건 처리를 위한 제도적 보완 없이 전면 도입이 이뤄진 점은 입법의 미비"라고 강조했다.

    이헌 법무법인 홍익 변호사 역시 "전건 각하는 어느 정도 예견된 결과"라며 "업무 부담 가중에 헌재는 엄격하게 심사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어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고민없이 입법한 결과"라며 "앞으로도 각하되는 사안이 다수"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재판소원이 사실상 '4심제'로 기능할 수 있다면서 최건 법무법인 건양 변호사는 "대법원 판결을 다시 다투는 구조 자체가 4심제로 비춰질 수 있어 헌재도 극도로 제한적으로 운영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이 경우 권리 구제 가능성은 더욱 낮아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특히 고액 수임료가 선행되는 구조 속에서 실질적 구제 없이 각하가 반복될 경우 국민 부담만 커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최 변호사는 "마지막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재판소원을 청구했지만 대부분 각하되는 상황"이라며 "결국 비용만 더 들고 '희망고문'에 그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법조계에서는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제도를 서둘러 도입한 결과라는 비판도 적지 않다. 최 변호사는 "정치적 필요에 따라 급하게 도입되면서 실질적인 보완 장치 없이 시행됐다"며 "국민에게 추가적인 절차와 비용 부담만 지우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