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파구 장미아파트·대전 안전공업·명동 캡슐호텔서 연이은 화재스프링클러 의무화 이전에 지어진 건물들…화재 피해 키워배관 삽입 비용·구조적 한계 등 현실적 문제…전문가 "제도적 지원 필요"
  • ▲ 24일 오전, 전날 오후 화재가 발생한 서울 송파구 장미아파트 22동 전경. ⓒ임찬웅 기자
    ▲ 24일 오전, 전날 오후 화재가 발생한 서울 송파구 장미아파트 22동 전경. ⓒ임찬웅 기자
    서울 명동 캡슐호텔과 대전 공장, 서울 송파구의 아파트까지 노후 건물들에서 화재가 잇따르고 있다.

    이 화재들은 서로 다른 지역과 용도의 건물에서 발생했지만 공통된 구조적 문제를 드러냈다. 모두 스프링클러 설치 의무 대상에서 벗어나 있던 사각지대의 건물이었다는 점이다. 화재 초기 진압을 좌우하는 스프링클러가 없는 상황에서 불길은 빠르게 번졌고 그 결과 인명 피해와 재산 피해가 확대됐다. 잇따른 화재는 단순한 관리 부실이 아니라 법과 현실 사이의 간극이 만들어낸 결과라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세금 감면 등을 통해 스프링클러 설치를 유도하거나, 구조적 문제로 설치가 어렵다면 첨단 경보 설비를 철저히 구축하게 하는 등 대안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지난 23일 오후 9시께 서울 송파구 장미아파트에서 불이 났다. 소방당국은 인력 106명과 장비 28대를 투입해 약 1시간 만인 전날 오후 10시 14분께 불을 완전히 진압했다. 인명피해는 발생하지 않았지만 불이 난 세대와 위층 세대가 소실되면서 약 2100만 원 상당의 재산 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파악됐다. 주민 75명이 긴급 대피하는 소동도 벌어졌다.   

  • ▲ 24일 오전 서울 송파구 장미아파트 22동 12층 화재 세대 복도 창문 너머로 불에 탄 내부 모습. ⓒ임찬웅 기자
    ▲ 24일 오전 서울 송파구 장미아파트 22동 12층 화재 세대 복도 창문 너머로 불에 탄 내부 모습. ⓒ임찬웅 기자
    ◆스프링클러 의무화 '도입 이전' 건물들, 화재 피해 취약

    화재가 발생한 장미아파트는 1979년 준공된 14층짜리 노후 아파트로 스프링클러가 설치돼 있지 않다. 소방시설 설치 및 관리에 관한 법률(소방시설법)에 따르면 아파트를 포함한 건축물의 스프링클러 설치 의무화 규정은 1992년 도입돼 16층 이상 아파트에 적용됐고 2005년 11층 이상으로 확대됐고, 2022년부터는 6층 이상으로 다시 강화됐다.

    장미아파트는 '제도 도입 이전'의 건물로 스프링클러 설치가 의무되지 않았다. 소방시설법 제13조에 따라 화재안전기준이 변경돼 기준이 강화되더라도 기존 건축물에는 변경 전 기준이 적용되도록 규정돼 있기 때문이다. 송파소방서 관계자는 "(아파트가) 지어진 지 오래돼 건축 당시 스프링클러 설치가 의무화된 건물이 아니었다"며 "화재 당시에도 스프링클러 자체가 없어 작동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지난 20일 화재로 74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대전 대덕구 안전공업 공장에도 스프링클러가 설치돼 있지 않았던 것으로 파악됐다. 2021년 개정된 소방시설법에 따르면 4층 이상이면서 모든 층의 바닥면적이 500㎡ 이상인 공장은 스프링클러를 설치해야 하지만 이 역시 제도 도입 이전에 건축된 공장의 경우 대부분 스프링클러가 설치돼 있지 않아 화재에 취약하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다만 안전공업 공장은 물과 닿으면 폭발하는 나트륨을 다뤄 스프링클러 설치 의무화 대상은 아니다. 공장 시설의 스프링클러 설치는 아파트처럼 단순 층수 기준이 아니라 건물 규모, 층수, 무창층 여부, 특수가연물 취급 여부 등 복합 기준에 따라 결정된다. 대전 대덕소방서는 "공장 3층 옥내 주차장에만 스프링클러가 설치돼 있었다"면서 "이 공장은 위험물 허가 대상으로 옥내 소화전 설치 대상인 부지로 파악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스프링클러 의무 설치 대상은 아니며 주차장만 설치 대상"이라고 설명했다.
  • ▲ 경찰이 24일 오후 2시 50분부터 대전 대덕구 안전공업 공장 화재 현장에 대한 합동감식을 시작하며 현장 잔해를 살피고 있다. ⓒ뉴시스
    ▲ 경찰이 24일 오후 2시 50분부터 대전 대덕구 안전공업 공장 화재 현장에 대한 합동감식을 시작하며 현장 잔해를 살피고 있다. ⓒ뉴시스
    지난 14일 불이 난 서울 중구의 캡슐호텔 개정된 법률에 따라 스프링클러를 설치해야 하는 조건을 갖추고 있지만 마찬가지로 1995년 사용 승인이 난 건물이기 때문에 바뀐 법이 적용되지 않았다. 해당 캡슐호텔에서 발생한 화재로 3명이 중상을, 7명이 경상을 입었다. 부상자 중 8명이 외국인으로 확인됐다.

    소방시설법은 2018년부터 6층 이상, 2022년부터는 층수와 관계없이 면적 600㎡ 이상을 사용하는 숙박시설에서 스프링클러 설치를 의무화하고 있다. 그러나 소방청에 따르면 지난해 8월 기준 전국 숙박시설 3만1271곳 중 스프링클러를 설치한 곳은 4500여곳에 불과하다.

  • ▲ 지난 14일 발생한 서울 소공동 호텔 화재 현장. ⓒ뉴시스
    ▲ 지난 14일 발생한 서울 소공동 호텔 화재 현장. ⓒ뉴시스
    ◆"비용 부담에 설치 어려워…제도적 지원 필요"

    노후 건물에 스프링클러를 설치하려면 천장을 뜯고 배관을 새로 매설해야 하는 대규모 공사가 필요하다. 아파트의 경우 세대 내부까지 공사가 이뤄져야 해 입주민 동의를 얻기 어렵고 상가나 숙박시설은 영업 중단에 따른 손실이 발생한다. 공장은 생산 라인을 멈춰야 하는 문제까지 겹친다.

    비용 역시 만만치 않다. 건물 규모에 따라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까지 들어가는 경우가 많아 개인이나 영세 사업자가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라는 평가다. 이 때문에 법적 의무가 없는 상황에서는 자발적 설치가 사실상 기대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결국 ‘의무 부재’와 ‘비용 부담’이 맞물리면서 노후 건물은 구조적으로 방치되는 상황이다. 법은 앞으로 나아갔지만 기존 건물은 과거에 머물러 있는 ‘시간차 리스크’가 누적되고 있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인 노후 건물에 세금감면 등을 통해 설치를 유도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비용 부담과 건물의 구조적 한계 등으로 스프링클러 설치가 어려울 경우 첨단 화재경보 설비 구축과 신속한 대피 체계 마련 등으로 대응 역량을 보완해야한다고도 조언했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스프링클러는 결국 개인이 설치해야 하는 것이라 설치 비용 등 현실적인 문제가 존재한다"며 "정부에서 스프링클러 설치 시 세금 감면이나 소방 점검 완화 등을 통해 노후 건물에 대한 설치를 유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채진 목원대 소방안전학부 교수는 "스프링클러가 없는 건물에 이를 보강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려운 것이 사실"이라며 "배관 삽입 등 리모델링 수준의 대규모 공사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채 교수는 "노후화 건물에 최첨단의 화재 경보 설비를 구축하고 신속하게 대피할 수 있는 대안적인 대응 체계를 만들어 긴급 상황에 대해 대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