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안보와 비축유 한계 직면통과통항권은 국제관습법상 관리에너지안보 지킨 '탱커전쟁' 상기'스페인식 명분' 피하고 실리 꾀해야
  • ▲ 해상 기뢰는 간단한 무기이지만 이란이 세계 경제에 큰 타격을 줄 수 있는 강력한 무기라고 월 스트리트 저널(WSJ)이 12일(현지시각) 보도했다. ⓒ트레이드윈즈뉴스닷컴/뉴시스
    ▲ 해상 기뢰는 간단한 무기이지만 이란이 세계 경제에 큰 타격을 줄 수 있는 강력한 무기라고 월 스트리트 저널(WSJ)이 12일(현지시각) 보도했다. ⓒ트레이드윈즈뉴스닷컴/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이 사실상 봉쇄 중인 호르무즈 해협 내 군함 파견을 공개적으로 요구하면서 한국의 군사안보·경제안보·에너지안보가 중대한 시험대에 올랐다. '항행의 자유'를 명분으로 한국을 포함한 7개 원유 수입국에 가해진 압박은 국내 원유·석유제품 비축량이 소비 기준 60여 일분에 불과한 현실과 맞물려 이재명 정부에 외교적 선택을 강요하고있다.

    17일 외교가에 따르면 미국이 이란의 핵무기 개발을 명분으로 사실상 개전한 이 전쟁의 당위성 논쟁은 북한의 핵 위협을 미국의 핵우산에 의존하는 한국의 지정학적 현실 앞에서 실효성 있는 논의가 되기 어렵다. 이란이 위반하고 있는 국제법의 연원으로 인정받는 국제관습법상 통과통항권(Transit passage), 즉 '항행의 자유'를 어떻게 실효적으로 회복할 것이고 한국은 그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미국과 이란 모두 유엔해양법협약(UNCLOS)을 서명만 하고 비준하지 않았지만 호르무즈 해협은 유엔해양법협약상 통과통항권을 보장해야 하는 국제해협의 범주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국제사법재판소(ICJ)는 1949년 4월 9일 판결한 '코르푸 해협 사건'(Corfu Channel Incident)에서 "국제항행에 사용되는 해협이 되기 위한 결정적인 기준은 공해의 두 부분을 연결하는 지리적인 조건과 그 해협이 국제적 항해에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이라면서 평시에는 군함조차 국제항행을 위해 이용되는 해협에서 무해통항(Innocent passage)을 막을 수 없다고 판시했다.

    호르무즈 해협의 법적 지위를 둘러싼 핵심 쟁점은 국제법상 통과통항권과 무해통항권 적용 여부로 귀결된다. 미국과 한국을 포함한 국제사회는 호르무즈 해협이 공해와 공해를 연결하는 국제 요충지로서 군함의 잠항과 항공기 상공 비행을 포함한 통과통항권이 국제관습법으로 보장된다는 입장이다. 반면 이란은 UNCLOS 비준 미비를 근거로 연안국의 평화와 안전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만 허용되는 무해통항권만을 주장하며 해상 통제를 강화하고 있다.

    그러나 이란의 주장은 국제법적 정통성을 결여한 자의적 해석이라는 비판이 지배적이다. 특히 ICJ의 해당 판결은 국제 해협에서 군함에 대한 통항의 자유를 국제관습법으로 확립하며 연안국의 일방적인 봉쇄 시도를 법적으로 무력화해 왔다.

    당시 ICJ는 국제 항행에 이용되는 해협에서 연안국이 평시에 군함의 통항을 금지할 수 없다고 판시했고 이는 유엔 해양법상 '통과통항권' 제도를 탄생시킨 법리적 모태가 됐다. 결국 호르무즈 해협은 조약 가입 여부와 무관하게 모든 국가에 개방돼야 하는 국제해협이다. 이란의 봉쇄 위협이나 선별적 통항 제한은 반세기가 넘는 국제관습법상 원칙을 정면으로 위반하는 불법 행위로 간주된다.

    특정국 선박을 선별적으로 나포·위협하는 행위는 보편적 항행의 자유를 규정한 통과통항권에 대한 정면 도전이다. 이는 국제사회의 공동 대응과 파병의 법적 당위성을 뒷받침하는 핵심 근거가 된다. 1980년대 이란·이라크 전쟁 당시 발생한 이른바 '유조선 전쟁'(Tanker War)은 국제 해역에서의 민간 선박 보호를 위한 무력 사용의 정당성을 입증한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국제법상 자국 선박과 자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제한적 무력 사용은 국가의 고유한 자위권 행사로 폭넓게 인정된다.

    1987년 미 해군은 해당 전쟁에서 '어니스트 윌 작전'(Operation Earnest Will)을 통해 호르무즈 해협의 항행 안전을 성공적으로 확보했다. 당시 미국은 쿠웨이트 유조선을 자국 국적으로 변경하는 법적 절차를 거쳐 보호 명분을 강화했다. 영국·프랑스·이탈리아 등 우방국들과의 다국적 협력을 통한 대대적인 기뢰 제거 작전으로 국제 에너지 수송로의 마비를 막아냈다. 이는 국제 사회의 '항행의 자유'가 위협받을 때 주권 국가의 군사적 조치가 국제 질서 유지와 경제 안보 수호라는 차원에서 정당한 법적 근거를 가짐을 시사한다.

    이번 파병 논의에서 법적으로 가장 민감한 지점은 한국군의 작전이 미국 주도 군사작전의 일부로 편입되는가의 여부다. 이 구분은 단순한 운용상의 차이가 아니라 법적 성격 자체를 바꾼다.

    국제법 전문가인 심상민 아산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뉴데일리에 "미국이 이란에 대해 개시한 군사행동의 성격이 문제다. 미국이 핵무기 개발 가능성을 이유로 타국의 영토를 무력으로 공격하는 것은 자위권의 법리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자위권의 요건인 긴박한 위험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의 예방 타격(Preventive strike)이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러나 호르무즈 해협을 통항하는 선박을 공격하는 등 항행의 안전을 위협하는 이란의 행위를 저지하기 위해 한국이 독자적으로, 또는 미국 등 다른 국가와 함께 호르무즈 해협 내 항행의 자유 보장을 위해 유조선 호위 등 군사작전을 펼친다면 정당성과 합법성이 동시에 인정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물론 우리 군이 한국 유조선만을 호위하는 경우와 제3국 선박까지 보호하는 연합작전에 참여하는 경우는 원용되는 국제법 논리가 달라진다. 자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는 국가의 고유한 권리로서 비교적 적극적인 행동이 허용되지만 항행의 자유라는 공공재를 보호하기 위해 제3국 선박까지 보호하는 경우에는 집단자위권의 논리가 개입하게 된다.

    집단자위권이 성립하려면 제3국 선박이나 선원에 대한 공격이 해당 피해국에 대한 무력 공격으로 간주될 수 있어야 한다. 나아가 피해국의 명시적인 원조 요청이 필수이며, 이를 한국에 대한 공격으로 동일시할 수 있어야 한다. 비록 집단자위권의 법적 성립 요건에는 해당하지 않지만 국내에서 충분한 정치적 지지를 확보하는 것은 작전 지속성의 관건이 된다.

    이처럼 미국의 대이란 군사적 조치가 국제법상 자위권의 범위를 일탈했다는 법리적 비판이 학계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으나 지정학적 특수성을 지닌 한국이 이를 공개적으로 천명하는 것은 국익 차원에서 상당한 위험을 수반한다. 동맹국인 미국의 대외 정책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입장을 표명했다가 미국 행정부로부터 강력한 통상 압박과 무역 보복 위협에 직면한 스페인의 사례는 명분에 치우친 외교적 발언이 초래할 수 있는 실질적 비용을 극명히 보여준다.

    스페인 정부는 '대서양 동맹'의 상징인 로타 해군기지와 모론 공군기지에 대한 미국의 사용 요청을 받고 "우리는 협정에 없거나 유엔 헌장에 부합하지 않는 어떤 일에도 우리 기지를 빌려주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3일(현지시각) "우리는 스페인과의 모든 무역을 중단할 것"이라며 "우리는 스페인과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배석한 베선트 장관도 스페인과 모든 거래를 끊으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지시에 미 무역대표부(USTR)와 상무부에 스페인에 대한 제재 검토를 지시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지정학적 리스크가 상존하는 한국에 있어 동맹의 대외 전략에 대한 공개적 반대가 단순한 견해 차이를 넘어 국가 안보와 경제 전반을 뒤흔드는 전략적 패착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이 가운데 현재 호르무즈 해협에서의 군사적 위협은 기뢰 부설보다 이란혁명수비대(IRGC)의 직접 공격에 있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란 측이 중국·인도 국적 선박은 통과시키면서 서방 국적 선박에는 다른 태도를 보이는 정황은 기뢰가 해협 전역에 무차별 부설된 상황이 아님을 시사한다. 이란은 기뢰보다는 드론이나 미사일 등 선택적 공격 수단을 활용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으며 이는 결국 국가 간 협의의 여지가 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지난 13일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 보도에 따르면 프랑스와 이탈리아 등 일부 유럽 국가들이 유럽 선박의 호르무즈 해협 운항 보장을 위해 이란과의 협상 채널 가동을 모색한 것으로 알려졌다.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당시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종식하고 항행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고 지난 8일 소셜미디어를 통해 밝혔다. 이와 관련해 한 군사 전문가는 "군사적 수단에 앞서 외교적 수단을 먼저 가동하는 것이 순서에 맞는 접근이라는 판단이 유럽에서도 작동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