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바이유 폭등→기름값 2000원 시대쓰레기봉투·주사기까지 품귀 사태"공식 요청 없다"며 골든타임 포기다국적 화상회의체 참여로 겨우 첫발패트리엇·사드 차출로 IAMD 균열안보 공백, 파병 막을 근거 아냐원잠·관세 조사 면제 받아낼 카드종전 시 동맹 방기 사후청구서 전락혈맹 외면 시 '전략적 유연성' 가속
  • ▲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26일 청와대에서 열린 2차 비상경제점검회의를 주재하며
    ▲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26일 청와대에서 열린 2차 비상경제점검회의를 주재하며 "IEA가 이번 위기를 1970년대 두 차례 오일쇼크와 러우 전쟁 충격을 합친 것만큼 심각하다고 평가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날 회의에서 파병 결단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뉴시스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약 한 달째에 접어든 27일 한국 경제 전반에 '에너지발(發) 퍼펙트 스톰'이 현실화하고 있다. 거시경제 지표의 하방 압력이 가중되는 가운데 소비자 물가와 식탁 물가가 일제히 폭등하며 민생 경제에 복합 충격이 날아들고 있다.

    국익의 생명선이 끊긴 지 한 달이 다 돼 가지만,이재명 정부는 '파병 카드'를 손에 쥔 채 결단을 미루는 '전략적 모호성'에 머물러 있다. 국익 수호를 위한 골든타임이 소진되는 국제 정치의 냉혹한 현실에서 실기(失期)한 파병 카드는 더는 외교적 지렛대 역할을 할 수 없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한국이 주저하는 사이 전장 상황은 시시각각 급변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23일(현지시각) 이란에 '전쟁 종결을 위한 15개 항'을 제시하며 에너지 인프라 공격을 닷새 간 유예했다. '닷새 기한' 내 성과가 나오지 않으면 아부무사 등 주요 지역과 이란 해군 주력 기지인 케슘섬을 대대적으로 공격하며 이란 해군 전력을 집중적으로 타격할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26일(현지시간)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이란 정부의 요청에 따라 발전소 파괴의 기간을 미국 동부시간 기준 4월 6일 오후 8시로 열흘 중지한다는 것을 알린다"고 밝히며 공격 유예 기한을 열흘 추가 연장했다.

    개전 6주 차인 4월 6일은 트럼프 행정부가 애초 설정한 전쟁 기간 '4~6주'의 종료 시기와 맞닿아 있다. 만약 '4월 종전'이 타결되고 나면 파병 카드는 레버리지가 아닌 '동맹의 방기 책임'에 대한 사후 청구서로 다가올 수 있다.
  • ▲ 이란 전쟁 여파로 국제 유가가 급등하면서 소비 심리가 위축됐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이달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107로 전월보다 5.1포인트 떨어졌다. 2024년 12월 이후 최대 낙폭이다. 다만 지수는 여전히 장기 평균선(100)을 웃돌고 있다. ⓒ연합뉴스
    ▲ 이란 전쟁 여파로 국제 유가가 급등하면서 소비 심리가 위축됐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이달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107로 전월보다 5.1포인트 떨어졌다. 2024년 12월 이후 최대 낙폭이다. 다만 지수는 여전히 장기 평균선(100)을 웃돌고 있다. ⓒ연합뉴스
    ◆유가 폭등에 실물 경제 주춤 … 1년 3개월 만에 소비자심리지수 최저

    이재명 정부가 한국 유조선 호위를 위한 파병을 주저하고 있는 동안 실물 경제의 충격이 이미 수치로 확인되고 있다.

    국제 유가 기준인 두바이유는 지난 23일 기준 배럴당 168.75달러로,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당시 고점 113달러를 크게 상회했다.

    한국에너지경제연구원(KEEI)은 봉쇄가 2개월 이상 지속되면 두바이유가 배럴당 179달러까지, 오는 6월 말 사태가 종결될 땐 배럴당 최고 192달러까지 오를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놨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두바이유 기준 연평균 국제 유가가 100달러에 진입하면 소비자물가상승률이 1.1%포인트 상승하고 경제 성장률은 0.9%포인트 하락한다.

    정부는 이란 전쟁 발발 후 치솟는 기름값을 잡고자 지난 13일 1997년 유가 자유화 이후 29년 만에 처음으로 '석유 최고가격제'를 시행했다.

    하지만 지난 26일 오피넷 기준 전국 주유소 휘발유 평균 가격은 리터당 1819.1원으로 15일 만에 반등했고 서울은 1847.6원을 기록했다.

    소비자들이 27일부터 주유소에서 맞닥뜨리게 될 최종 소비자 가격은 이보다 더 높은 2000원 대가 될 전망이다. 두바이유 기준 배럴당 120달러대 수준이던 국제 유가가 130달러대로 높아짐에 따라 27일 0시부터 적용된 2차 최고 가격이 보통 휘발유 1934원, 자동차용 및 선박용 경유는 1923원, 실내 등유는 1530원 등 모든 유종이 1차보다 210원씩 올랐기 때문이다.

    석유산업의 기초·핵심 원료인 나프타 수급에도 차질이 생기면서 종량제 쓰레기봉투·음식 배달 용기·의료용 일회용 주사기 등 당장 대체가 불가능한 생필품의 품귀 현상도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국내 석유화학 업계의 원자재 재고는 길어야 2~3주 분량에 불과한 것으로 파악된다. 한국은행이 25일 발표한 3월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107.0으로 전월 대비 5.1포인트 하락했는데 이는 2024년 12월 비상계엄 사태 이후 1년 3개월 만에 가장 큰 하락 폭이다.
  • ▲ 홍익표 정무수석이 지난 25일 청와대에서 비상경제상황실 구성 관련 브리핑을 하는 모습. ⓒ뉴시스
    ▲ 홍익표 정무수석이 지난 25일 청와대에서 비상경제상황실 구성 관련 브리핑을 하는 모습. ⓒ뉴시스
    ◆"공식 요청 없다"며 발 빼는 정부 … '골든타임' 놓치는 외교 지렛대

    이 모든 충격이 현재 진행형임을 누구보다 잘 아는 이재명 정부도 민생 대응에는 적극적으로 나섰으나 정작 그 충격의 근원을 끊을 파병 결단만큼은 열흘 넘게 같은 자리를 맴돌고 있다.

    홍익표 청와대 정무수석은 지난 24일 CBS 라디오에 출연해 "에너지 수급 상황이 어려워졌고 물가가 다 영향을 받는다"면서도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SNS로 요청했을 뿐 미국 정부로부터 공식적인 요청은 없었으므로 우리가 먼저 관련된 입장을 내놓을 이유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이어 "필요하다면 정치권의 초당적인 지지와 의견을 구할 때가 반드시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면서도 원자력추진잠수함(핵추진잠수함) 조기 건조와 한미 원자력협정 조기 개정을 위한 카드로 파병을 고려해 달라고 호소하는 야당 의원들을 향해서는 "많은 장병의 생명을 담보로 해야 하는 선택이라는 점을 좀 고려해서 말씀해 주면 좋겠다"고 했다.

    '장병의 생명'을 내세우는 홍 수석의 논리는 에너지 안보 붕괴로 인한 전 국민적 생존권 위협을 상대적으로 경시하는 듯한 인상을 줄 우려가 있다.

    또한 공식 서한이나 요청의 형식을 따르지는 않았지만 한미 간 물밑에서 협의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공식 요청이 없었으니 입장을 내놓을 필요가 없다'는 답변이 국민과 동맹 모두를 향해 무엇을 말하는지는 불분명하다.

    안규백 국방부 장관은 지난 24일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파병 문제에 대해 정부 입장에 변화가 있느냐'는 김병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질의에 "아직 미국 측으로부터 어떠한 레터(편지)를 공식적으로 받은 바 없지만 물밑에서 여러 상황에 대해 긴밀히 협력과 협의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조현 외교부 장관도 같은 날 국회에서 "요청이라고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고 그런 상황"이라고 모호하게 답했다.
  • ▲ 지난 10일 경북 성주군 주한미군 기지에 발사대가 하늘을 향하고 있는 모습. ⓒ뉴시스
    ▲ 지난 10일 경북 성주군 주한미군 기지에 발사대가 하늘을 향하고 있는 모습. ⓒ뉴시스
    ◆중동으로 빠져나가는 주한미군 방공망 … 안보 공백의 현실화

    정부가 형식 논리에 매달리는 사이 안보 공백의 현실은 이미 한반도까지 들이닥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란 전쟁 발발 이후 이미 주한미군의 패트리엇(PAC-3)과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등 방공무기 체계의 일부를 중동으로 차출했다.

    각각 고도 15∼40㎞의 하층 방어망과 고도 40∼150㎞의 상층 방어망을 전담하는 패트리엇과 사드 체계의 동시 이동은 한반도 통합 공중·미사일 방어 태세(IAMD)에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만약 전쟁이 지상전으로까지 확대되면 에이태큼스(ATACMS) 등 주한미군이 보유한 지상무기와 병력이 차출될 가능성도 있다.

    특히 미국이 '전략적 유연성' 확대와 '동맹 현대화'를 핵심 기조로 내걸고 해외 주둔 미군의 재배치를 추진하고 있는 만큼 한반도의 지정학적 현실은 미중 전략 경쟁과 결부돼 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미국은 인도태평양사령부(인태사령부) 전력 상당수, 특히 주한미군이 특정 지역에 고정 배치돼 비효율을 초래하고 있다면서 해외 주둔 미군 병력과 자산을 임무·지역에 구애받지 않고 필요에 따라 재배치하는 '전략적 유연성'을 대폭 확대하겠다는 방침이다.

    보도에 따르면 주한미군 운용에 깊게 관여하는 미 국방부(전쟁부) 최고위 관계자는 지난 22일 "인태사령부에 배정된 전력 중 상당수가 그냥 '주차(park)'돼 있어 문제"라는 문제의식을 드러냈다.

    그러면서 "한국은 북한에 맞서 재래식 방어에 대한 1차 책임을 점점 더 크게 맡고 있다"며 "주한미군은 제한적인 지원만 제공하는 형태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부가 파병 카드를 손에 쥔 채 결단을 미루는 동안 한반도 방위 공백을 메울 협상 레버리지는 저절로 소진되고 있다.

    파병 반대론의 두 핵심 논거도 현실이 이미 앞질러 가고 있다. 군함을 보내지 않아도 호르무즈에 묶인 한국 선박 26척은 이란의 사정권 안에 놓여 있다. '파병하면 표적이 된다'는 주장이 성립하려면 '파병하지 않으면 안전하다'는 전제가 먼저 성립해야 하는데 그 전제는 지금 이 순간 해협에 발이 묶인 26척 앞에서 이미 유효하지 않다.

    이에 대해 군 소식통은 "이란의 드론 공격 능력은 해상 이동 표적을 효과적으로 타격하기에 한계가 있다"며 "적대 상황에서의 호송 작전을 수행한 경험은 장기적으로 군사적 자산이 된다"고 강조했다.

    물론 미국이 이란 전쟁에 지상군을 직접 투입하지 않는 현 단계에서 지상군이 대다수인 주한미군 병력의 대규모 차출 가능성은 제한적이다.

    그러나 주한미군의 핵심 방공·타격 자산의 역외 전개는 이미 현실이 된 상황에서 전문가들은 한반도 안보 공백 우려는 파병을 막을 근거가 아니라 협상 조건의 핵심 의제로 전환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군사 전문가인 양욱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예를 들어 이지스 구축함을 호르무즈로 보낸다면 한반도 대북 태세에 일정 부분 공백이 생길 수밖에 없다"며 "미국이 이를 어떻게 메워줄 것인지 사전에 명확히 합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다만 26일 오후(현지시간) 파비앵 망동 프랑스 합참의장 주관으로 전 세계 35개국 군 수장이 참여한 화상회의에 진영승 합참의장도 참석했다. 하지만 프랑스 국방부는 이날 보도자료에서 이 회의가 "역내 진행 중인 군사 작전과는 무관하다"며 "순수하게 방어적인 성격"이라고 못 박았다. "전투가 중단된 후 호르무즈 해협에서의 항해 재개를 조직하는 걸 목표로 한다"는 것이 공식 설명이다. 

    결국 이 회의체는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대규모 교전이 끝난 뒤 상황이 안정되면 필요한 조처를 하기 위한 사전 대비 차원일 것으로 보이며 파병 결단과는 거리가 먼 '초기적 논의' 단계일 가능성이 크다. 한국 파병 카드의 전략적 가치가 소진되기 전에 실질적 결단으로 이어질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 ▲ 지난 25일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중동 호르무즈 해협은 좁고 얕아 선박이 이란 해안에 근접해 항해해야 하는 탓에 드론·이동식 미사일·모기 함대·해상 기뢰 등 복합 위협에 그대로 노출된다. 봉쇄 해제를 위해 군함을 대거 투입할 경우 군사 자원이 분산돼 작전 부담이 커질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뉴시스
    ▲ 지난 25일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중동 호르무즈 해협은 좁고 얕아 선박이 이란 해안에 근접해 항해해야 하는 탓에 드론·이동식 미사일·모기 함대·해상 기뢰 등 복합 위협에 그대로 노출된다. 봉쇄 해제를 위해 군함을 대거 투입할 경우 군사 자원이 분산돼 작전 부담이 커질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뉴시스
    ◆자폭 드론보트 등 비대칭 위협 증대 … '복합 호송전력' 투입 시급

    파병이 현실화된다면 전력 구성이 관건이지만 우리 해군이 보유한 소해함은 12척에 불과하고 소해함의 크기 자체가 작아 원양 작전에 한계가 있다. 따라서 이라크전 당시 서희부대·제마부대를 미 해병 1원정군 체계 안에서 운용했던 선례처럼 다국적 연합작전 틀 안에서 자국 유조선을 호위하는 등 역할을 분담하는 방식이 현실적이라는 평이 나온다.

    이에 군 관계자는 "이란이 다국적군 소속 한국 함정을 공격할 경우 유엔헌장 제51조에 근거한 개별 자위권으로 즉각 대응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에서 원거리에서 조종 가능한 소형 무인선(드론 보트)을 폭발물을 싣고 낚싯배로 위장해 무더기로 투입하는 '벌떼 작전'을 벌여 왔다. 특히 호르무즈 해협의 지리적 구조를 고려하면 폭발물을 실은 자살 공격형 무인 수상선, 즉 '자폭 드론보트'가 더 골치 아픈 위협으로 꼽힌다.

    이와 관련해 드론 기술 기업 드라간플라이 최고경영자(CEO) 캐머런 첼은 지난 13일 폭스뉴스에 "(미군이) 전파 방해나 추적하는 게 가능하기는 하지만 이런 배가 50척이나 있다면 해안선을 따라서 폭발물을 가득 실은 20피트(약 6m) 크기의 목조 어선을 찾아내기는 어려운 일"이라고 설명했다.

    양 연구위원은 "기뢰보다는 자폭 드론보트가 더욱 큰 위협이다. 일반 상선으로는 자폭 드론보트를 제거할 수 없다"며 "자폭 드론 보트는 원격 통신으로 조정되므로 재밍까지 동원해야 하며 자폭 드론보트의 원점인 이란 해군 기지를 무력화할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이처럼 이란은 대함미사일·드론·기뢰를 결합한 비대칭 전력을 운용하고 있어 다층 방어체계가 필수적이며 청해부대를 통해 원해 작전 능력과 호송 임무 경험을 축적한 충무공이순신급 구축함이 파견 전력의 중심이 돼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한 군사 전문가는 "현실적으로 충무공 이순신급 구축함 2척에 헬기 4대(함당 최대 2대)를 배치하는 방안이 적합하다"며 "여유 전력이 없으면 대구급·충남급 신형 호위함이라도 동원해야 한다. 물론 함대 방공까지 다 되는 군함을 보내주면 좋겠지만 헬기 호위 전력을 우선 강화하는 것이 현 상황에 맞다"고 설명했다.

    예비역 육군 준장인 주은식 한국전략문제연구소장은 "함대 방공 측면에서는 SM-2, 해궁(K-SAAM), RAM, CIWS를 결합한 다층 요격체계가 요구된다"며 "특히 호르무즈의 가장 치명적 위협으로 기뢰가 꼽히는 만큼 소해함과 기뢰처리기(MDV), 소나체계를 포함한 기뢰대응 전력의 병행 투입이 필수적"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단일 플랫폼이 아닌 구축함·소해전력·전자전 능력을 통합한 '복합 호송전력'을 구성해야 제한된 전력으로 최대의 억제력과 작전 효과를 달성할 수 있다"고 제언했다.
  • ▲ 2005년 6월 10일 노무현 당시 대통령이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마친 뒤 악수를 하는 모습. ⓒ노무현 사료관
    ▲ 2005년 6월 10일 노무현 당시 대통령이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마친 뒤 악수를 하는 모습. ⓒ노무현 사료관
    ◆포퓰리즘에 갇힌 안보 …  노무현의 '국익 중심 실용주의' 되새길 때 

    파병을 협상 레버리지로 활용할 여지는 분명히 있다. 정치권에서는 파병 카드를 활용해 원잠(핵잠) 조기 건조 승인과 한미 원자력협정 조기 개정의 정치적 동력을 살리거나 무역법 301조 관세 조사 면제를 받아내는 데 활용할 수 있다는 제언이 나온다. 

    이처럼 중동발 비대칭 위협이 해상로를 위협하고 주한미군의 방공망마저 차출되는 엄중한 상황이지만 정부의 시계는 오히려 거꾸로 가고 있다.

    그 단적인 사례가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주도하는 9·19 남북군사합의 일부 복원 추진이다. 이재명 정부는 비행금지구역 재설정 등 9·19 남북군사합의 일부 복원을 북한과의 협상도 없이 선제적, 일방적으로 추진하며 전략적 모순을 초래하고 있다. 이 조항이 복원되면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무인기는 물론 군 정찰기 등 감시장비의 운용이 제한된다.

    미국이 주한미군 전략자산의 역외 전개 가능성을 시사하고 호르무즈 파병으로 해군 전력 일부까지 빠져나갈 수 있는 시점에 대북 감시정찰 능력을 스스로 줄이는 방향으로 안보 정책을 전환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갤럽 조사에서 파병 찬성은 30%, 반대는 55%였고, 야당인 국민의힘 지지층은 56%가 파병에 찬성하고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지지층의 68%가 반대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민생 경제가 무너지고, 주한미군 방공망이 빠져나가고, 협상 레버리지가 소진되는 시점에 외교·안보 결단을 지지층 여론의 함수로 풀겠다는 것은 전략이 아니라 포퓰리즘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국민 70% 이상이 반대한 이라크 파병을 국익 판단으로 결행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호르무즈에서 같은 결단을 내릴 수 있는가라는 질문 앞에서 지금 청와대가 내놓는 답은 여전히 '검토 중'이다.

    정부의 이러한 관망은 단순한 실기를 넘어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이 한국의 국익과 무관한 방향으로 가속화되는 '안보 자해'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특히 종전 협상이 본격화하기 전 선제적 결단이 없다면 한국은 전후 질서 재편 과정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다.

    익명을 요구한 외교·안보 당국의 한 고위 관계자는 현 상황을 "필요할 때만 '자유'라는 보편적 가치를 내세우고 정작 동맹국이 필요할 때 관망하는 명백한 이율배반"이라고 성토했다.

    이어 "일면식도 없던 우리를 위해 지구 반대편에서 피를 흘린 동맹국의 희생 덕분에 오늘의 대한민국이 존재한다"며 "우리가 필요할 때만 '보편적 가치'를 강조하고 정작 동맹이 위기에 처했을 때 관망하는 국가를 트럼프 행정부가 신뢰할 리 만무하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전쟁 종료 후 펼쳐질 국제사회의 '논공행상'에서 한국이 배제되거나 무시당할 가능성을 각오해야 한다"며 "트럼프가 이를 빌미로 유엔사령관의 지휘 거점을 일본으로 빼버리거나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일방적으로 확대해도 우리로선 할 말이 없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정부가 추진하는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등 핵심 현안에서 미국의 협조를 기대하기 어려워질 것이라는 현장의 뼈아픈 경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