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현상처럼 벌어지는 '연말 대출 절벽'은행 영업전략 아니라 규제 회피 행동이 만든 시장왜곡충분히 예상 가능한 위기인데도 '방치'…실수요자들 삶 외면당국, 숫자만 맞으면 정책 성공 자평…반성·제도 개선 의지 안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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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챗GPT
    "주담대 신청을 위해 '오픈런'을 하고 있지만 두 시간도 지나지 않아 한도가 닫혀서 시도하는 것 자체가 어렵습니다."

    연말만 되면 반복되는 '대출 절벽'이 올해도 어김없이 돌아왔다. 시중은행들이 잇달아 주택담보대출 접수를 중단하자 대출이 절실한 실수요자들은 새벽부터 인터넷은행 앱을 켜고 ‘오픈런’을 해야 하는 비정상적 풍경이 다시 펼쳐지고 있다.

    이 현상은 결코 시장의 자연스러운 계절적 흐름이 아니다. 금융당국이 수년째 고수해 온 '연간 총량관리'라는 행정 편의적 규제가 만든 구조적 왜곡의 결과다.

    은행권이 11~12월마다 대출 접수를 중단하는 것은 영업전략이나 리스크 관리 차원도 아니다

    금융당국이 연말 증가율 목표치를 초과할 경우 감독 리스크가 커지도록 구조를 설계했기 때문이다. 은행들 입장에선 ‘숫자 맞추기’를 우선할 수밖에 없다.

    결국 대출이 필요한 실수요자들은 시중은행 문턱을 넘지 못해 인터넷은행으로 몰리고, 인터넷은행으로 몰린 수요가 단 몇 시간 만에 소진되며 ‘대출 오픈런’이라는 기형적 시장 풍경이 반복된다.

    그러나 금융당국은 늘 가계부채 급증을 막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였고, 그 과정에서 실수요자 피해가 발생하는 것은 은행들이 무리하게 대출을 늘려온 ‘탐욕의 결과’라는 식의 진단을 내놓는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프레임으로 설명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매년 같은 혼란이 벌어지고 있다면 그 원인은 더 이상 은행이 아니라 정책 설계자인 금융당국 자신이라는 뜻이다.

    연말 대출 절벽을 초래한 1차적 원인은 당국의 행정 편의적 규제이며, 피해는 고스란히 실수요자에게 떠넘겨졌다.

    올해 역시 하반기 가계대출 증가 목표치를 기존 7조2000원에서 절반 수준인 3조6000억원으로 반토막내며 급격하게 은행권을 압박했다. ‘연말 총량관리’라는 명분 아래 정책 부담은 실수요자에게 전가됐다.

    더 큰 문제는 금융당국의 인식이다. 연간 가계대출 증가율이 목표치에 가까워지면 금융당국은 정책 성공이라 자평한다.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실수요자가 자금 마련에 실패했는지, 얼마나 많은 불확실성과 좌절을 감당해야 했는지 등 정책 평가 항목 어디에도 반영되지 않는다. 

    총량관리라는 큰 틀 자체가 잘못됐다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시대 변화와 금융 환경 변화에도 불구하고, 과거 방식 그대로 연 단위 숫자 관리에만 집착하는 관행이 문제라는 것이다. 

    매년 같은 장면이 반복된다면, 그것은 결코 ‘계절적 현상’으로만 볼 수 없다. 그건 명백하게 문제를 알고도 고치지 않아 발생한 구조적 실패다.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하고, 무엇보다 이제는 연간 총량관리 관행의 전면적 재검토와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