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프린지페스티벌 폐막작으로 초청…지난 24~25일 전석 매진특정 시대와 국가 넘는 본연의 이야기로 승부…전략적 접근 "K-연극의 세계화"
  • ▲ 연극 '십이야' 중국 베이징 공연.ⓒ국립극단
    ▲ 연극 '십이야' 중국 베이징 공연.ⓒ국립극단
    국립극단이 9년 만에 K-연극으로 중국 관객을 만났다. 

    연극 '십이야'가 지난 24~25일 중국 베이징 중간극장에서 막을 올렸다. 이틀 동안 진행된 2회 공연은 모두 전석 매진됐으며, 774명의 현지 관객이 관람했다.

    '십이야'는 2025년 '베이징국제청년연극제(北京国际青年戏剧节)'의 폐막작으로 초청됐다. 2008년 시작된 베이징국제청년연극제는 아시아 연극계의 창작 동력 공급과 세계적인 수준의 우수 연극을 소개하기 위해 진행해 온 유서 깊은 공연예술 축제다.

    베이징국제청년연극제에서는 지난해까지 중국 현지 연출가 225명의 430편의 작품이 무대에 올랐고, 전 세계 21개국 129편의 해외 작품이 장르와 국경을 초월해 예술적 영감을 나눴다. 18회째를 맞은 올해는 중국 베이징을 주 개최 도시로, 한국·노르웨이·독일·러시아·이탈리아·폴란드 등 6개 국가가 함께 했으며 중국 12편, 해외 6편이 상연됐다. 

    국립극단과 대전예술의전당이 공동제작해 지난해 초연한 '십이야'는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동명 고전 희곡을 연출가 임도완이 각색·연출한 작품이다. '십이야'는 한국을 대표하는 창작극을 개발해 세계 연극사에 기록될 작품을 탄생시키고자 하는 목표로 기획됐다. 

    실제로 '십이야'는 프로덕션 단계부터 해외 진출을 염두에 두고 작품의 얼개를 구성했다. 셰익스피어가 극작한 5대 희극 중 하나로 원작의 배경을 조선시대 농머리로 옮겨왔다. 봉산탈춤 등 한국무용이 적용된 유려한 움직임, 신명 나는 판소리와 랩 믹싱이 돋보인다.
  • ▲ 연극 '십이야' 베이징 공연 입장을 기다리고 있는 중국 관객들.ⓒ국립극단
    ▲ 연극 '십이야' 베이징 공연 입장을 기다리고 있는 중국 관객들.ⓒ국립극단
    안무와 음악 외에도 무대, 의상 등에 한국 전통의 미학을 아낌없이 가미하고, 한국의 팔도 사투리로 뱉어지는 셰익스피어의 명문들은 '십이야'의 놓칠 수 없는 백미다. 서양의 고전에 동양의 미감을 입히면서 이질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 부분들에는 소위 힙(Hip)하다고 일컬어지는 현대적 감각을 더해 세대와 문화의 간극을 메웠다.

    영국의 대문호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원작으로 택한 것도 해외 진출을 위한 전략적 선택이다. '십이야'는 사랑, 오해, 변장이라는 보편적 서사 구조로 시대와 국적을 초월한 인간의 감정이 이야기의 핵심에 자리잡고 있는 작품이다. "똑똑한 바보는 멍청한 위정자보다 백배 낫다"라는 극 중 대사를 말미암아 희곡은 국경을 넘어 인류 사회를 거울처럼 비추며 시대와 문화를 관통하는 풍자 언어도 품고 있다. 

    국립극단은 2016년 베이징 국가화극원 대극장에서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을 공연한 이후, 9년 만에 '십이야'로 다시 중국을 찾았.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은 중국 공연 당시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THAAD) 사태로 한-중 관계에 긴장감이 높아졌던 시기였음에도 불구하고, 공연 이틀간 1300여 명의 관객이 기립 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십이야' 중국 공연은 상연 시작 전부터 포토월에서 기념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극장을 가득 채운 관객들은 중국어로 표기된 자막을 빠르게 읽어내며 극의 흐름과 배우의 감정선을 놓치지 않고 반응했다.

    동시 자막으로 대사의 뜻과 극의 서사를 이해해야 하는 관객들을 위해 의도적으로 이모티콘을 넣거나 극적 흐름에 따라 폰트 크기에 변주를 주는 등 무대 위의 유쾌함을 자막으로 전달했다. 일부 장면에서는 때로 자막이 나오기 전부터 관객들이 웃음을 터트리기도 했다. 웃음과 박수가 러닝타임 125분 동안 끊이지 않는 공연이었다.

    배우들의 신체 연기가 돋보이는 희극이 적중했다. 극 중 광대로 분하는 북쇠 역의 배우(박경주)가 랩이 섞인 판소리와 탈춤을 변형한 아크로바틱한 움직임을 선보이거나 하인을 연기하는 마름 역의 배우(성원)가 과한 몸동작으로 동선을 이어갈 때 탄성이 터졌다.

    희극의 말장난을 중국어로 바꾸고 애드리브를 더해 호응을 이끌어냈다.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공연인 만큼 쟈가둥 역의 이경민 배우가 한국 공연에서는 "요즘 유행이잖아. 출세하려면 쏼라(영어)를 해야 해"라고 뱉었던 대사를 "출세하려면 명나라 말을 공부해야 해"로 바꾸고, 이어 중국어 애드리브를 더할 때 관객 반응이 고조됐다.
  • ▲ 연극 '십이야' 베이징 커튼콜을 촬영하는 중국 관객들.ⓒ국립극단
    ▲ 연극 '십이야' 베이징 커튼콜을 촬영하는 중국 관객들.ⓒ국립극단
    향단 역을 맡은 배우(정다연)가 상대에게 "워 아이 니(사랑해)"를 말하는 장면 등 극 중 배우들이 반복하는 유행어와 같은 대사를 중국어로 바꿔 말할 때나, 객석에 말을 거는 등 관객과 호흡을 함께하는 장면마다 객석에서는 폭소와 환호가 터져 나왔다.

    막이 내린 후 박수와 환성이 이어졌다. 마지막 장면에서 공연 종료를 관객에게 전하는 악사(채석진)가 다섯 번이나 "공연이 끝났습니다"라는 대사를 관객에게 던지고 자막 역시 퇴장을 안내했지만, 관객 대부분이 객석에 남아 사진을 찍거나 박수갈채를 이어갔다.

    임도완 연출은 "관객이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공연에 집중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한국과 중국의 웃음 코드가 잘 맞아 2회만 공연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쉬울 정도"라고 소감을 밝혔다. '마름' 역의 성원 배우는 "예술을 함께 하는데 언어의 벽은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연극이라는 위대한 무기가 잘 보여준 것 같다. 중국 관객들이 전해준 따뜻한 인류애를 안고 돌아간다"고 말했다.

    베이징국제청년연극제를 주관하는 베이징청년희극공작자협회 런위안(任远) 비서장은 "'십이야'는 배우의 신체 움직임이 돋보이고 동양적 요소가 짙게 더해진 연극으로 동일 아시아 문화권에 있는 중국 관객들의 충분한 공감과 이해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한국에서도 이미 큰 성공을 거둔 공연이자 높은 완성도로 호평을 받은 작품인 점도 '십이야'를 초청작으로 선정하는 데에 중요한 결정 사유가 됐다"고 설명했다.

    '십이야' 중국 공연은 국립극단이 주도하는 K-연극의 해외 진출과 국제 문화 교류의 출발점이다. 국립극단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한국 연극의 세계화에 본격적인 시동을 건다. 한국의 영화·드라마·음악·공연이 해외로 뻗어나가고 있지만, 연극은 희곡의 예술이라는 점에서 언어의 장벽을 넘기 힘들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국립극단은 언어의 차이를 문화적 맥락에서 대체할 수 있는 사회·역사적 유사성을 가진 아시아권부터 전략적인 진출 방안을 고민한다. 아시아 연극의 대표주자로 국립극단과 한국 연극이 자리 잡아 공연예술의 원전인 유럽과 북미 진출까지 단계적으로 국가권의 범위를 넓힌다는 계획이다.

    박정희 국립극단 예술감독은 "특정 국가와 문화를 넘어 연극이 인류가 함께 살아낸 시대와 인간 본연의 이야기를 한다면 언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한국의 연극과 창작자들은 이미 뛰어난 예술적 자질과 우수한 실력 지니고 있다. 변화에 빠른 적응력과 예술적 성장을 이루고자 하는 진보적인 태도도 한국 연극 프로덕션이 가진 장점이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