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은 "지체 없이 철거하라" … 실제 정해진 기한은 없어후보는 사라지고 …구청만 현수막 걷는다과태료? 현실에선 '무용지물'철거 비용도, 처리 비용도 '세금'
  • ▲ 제21대 대통령 선거가 끝난 4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네거리에서 종로구청 관계자들이 선거 현수막을 철거하고 있다. 2025.06.04. ⓒ뉴시스
    ▲ 제21대 대통령 선거가 끝난 4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네거리에서 종로구청 관계자들이 선거 현수막을 철거하고 있다. 2025.06.04. ⓒ뉴시스
    제21대 대통령 선거가 마무리된 가운데 전국 곳곳에 방치된 선거 현수막의 처리 문제가 다시금 지자체의 부담으로 돌아오고 있다. 공직선거법상 철거 책임은 후보자에게 명확히 부여되어 있지만 현실에서는 다수의 현수막이 제때 정리되지 않아 지방자치단체가 인력과 예산을 동원해 수거와 폐기를 도맡고 있다.

    ◆철거 책임 명시돼도 '언제까지'는 없다

    현행 공직선거법 제276조는 선거운동을 위해 선전물이나 시설물을 설치한 자는 선거일 후 "지체 없이" 철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를 위반할 경우 제261조 제7항에 따라 2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될 수 있다.

    선거관리위원회의 과거 공문에서도 선거를 마친 뒤 현수막 철거 사항 등을 정당 관계자에게 안내한 바 있다. 다만 현행법이 철거 시한을 '지체 없이'라고 표현하고 있어 그 모호성이 법적 강제력을 약화시키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선관위는 철거 기간에 대해서는 후보자와 현수막 업체가 협의를 통해서 해결해야 한다면서도 지나치게 늦어질 경우에는 해당 정당에 이를 안내한다는 입장이다. 

    선관위 관계자는 "현수막은 업체를 통해서 후보자 측에서 게재한 것이라 제거나 철거도 그 후보자 측에서 진행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철거가 많이 늦어지게 될 경우에 대해서는 "말씀은 드릴 것이지만, 시기가 지난다고 하면 해당법에 따라서 제한을 받을 것"이라고 답했다.
  • ▲ 제21대 대통령 선거가 끝났음에도 5일 오전 서울 마포구 마포역 버스정류장(공덕역 방면)에 선거 현수막이 여전히 걸려있다. 5일 오후에는 철거된 상태다. 2025.06.05. ⓒ김상진 기자
    ▲ 제21대 대통령 선거가 끝났음에도 5일 오전 서울 마포구 마포역 버스정류장(공덕역 방면)에 선거 현수막이 여전히 걸려있다. 5일 오후에는 철거된 상태다. 2025.06.05. ⓒ김상진 기자
    ◆후보자는 뒤로 빠지고, 구청만 뛰어다닌다

    선거가 끝난 뒤에도 거리 곳곳에는 여전히 현수막이 남아 있는 경우가 있다. 게시 주체인 후보자나 정당이 철거를 이행하지 않자 각 지방자치단체가 직접 철거에 나서고 있는 실정이다.

    한 정당 관계자는 "각급 정당이 철거하는 것이 원칙이겠지만 일반적으로 각 지자체에서 선거 후 일괄 정리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답했다.

    이에 서울 한 구청 관계자는 "원칙적으로는 게시 주체가 철거하는 것이 맞지만 빠른 정리를 위해 구청에서도 직접 수거한다"고 했다. 현수막을 설치한 주체가 직접 철거하는 것이 법적·행정적 원칙이지만 후보자 측이 철거를 놓치거나 지연하는 경우가 많아 구청이 선제적으로 나서서 처리한다는 설명이다.

    또 다른 구청 관계자는 "선거일 다음 날부터 상당수 공무원이 수거 작업에 투입된다"며 "현수막 철거의 의무는 설치한 주최에 있기 때문에 방치한다고 해서 구청이 불법을 저지르는 것은 아니지만 현수막을 놔두면 지저분해지고 주민들이 불편을 겪기 때문에 나서는 편"이라고 답했다. 이어 "각 지자체마다 담당자의 판단에 따라서 정비 속도가 달라진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고도 덧붙였다.

    현장에서는 현수막 철거가 상당한 노동 강도를 요구하는 작업이라고 호소했다. 서울 한 구청의 경우 평소 하루 30~40개의 불법 현수막을 철거하지만 선거 직후에는 하루 112개 이상을 수거했다고 전하기도 했다.
  • ▲ 제21대 대통령 선거가 끝나고 5일 오전 서울 마포구 공덕오거리에 각 정당 후보의 선거 현수막이 철거되고 감사 인사를 담은 현수막이 새로 붙었다. 2025.06.05. ⓒ김상진 기자
    ▲ 제21대 대통령 선거가 끝나고 5일 오전 서울 마포구 공덕오거리에 각 정당 후보의 선거 현수막이 철거되고 감사 인사를 담은 현수막이 새로 붙었다. 2025.06.05. ⓒ김상진 기자
    ◆과태료는 안 물리고, 치우는 데는 세금 쓴다

    공직선거법상 철거 불이행 시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는 근거는 있지만 실제로 후보자에게 과태료를 부과한 사례는 거의 없다.

    구청 관계자들은 후보자에게 과태료를 물린 적은 거의 없다고 입을 모았다. 철거 명령 등 절차가 복잡하고 그 사이에 주민 민원이 폭주하면 결국 구청이 선제적으로 철거에 나설 수 밖에 없다는 이유다.

    이러한 구조는 곧 세금 낭비로 이어진다. 각 자치구는 현수막 철거에 필요한 인력과 장비를 투입할 뿐 아니라 수거된 현수막을 소각 또는 매립하는 데 드는 폐기물 처리 비용도 부담하고 있다.

    환경부에 따르면,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가 동시에 치러졌을 당시 폐현수막 발생량은 2668톤에 달했으며, 2024년 22대 총선에서는 1235톤이 발생했다.

    그러나 이 가운데 재활용률은 각각 25%, 30%에 불과해 대부분이 일반 폐기물로 처리됐다. 특히 가로 3m, 세로 3.3m 크기의 현수막 한 장을 소각할 때 약 4kg의 이산화탄소가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환경 부담도 상당하다.

    이처럼 법은 철거 주체를 명확히 규정하고 있지만 현실의 행정력은 그 책임을 강제하지 못하는 상태다. 과태료 조항 역시 실효성이 없고 철거 명문화되지 않았다. 반복되는 행정 낭비와 예산 부담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제도의 미비가 개선되야 한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