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군포로 추징금소송 기각…"경문협, 저작권 징수권한 無"원고 측 "北-경문협 09년 합의서 무시한 채증법칙 위반"재판부 "北, 소송대상 아냐"…전문가 "'주권면제' 없어 대상"
  • 시민단체 '물망초'가 14일 오후 서울동부지법 앞에서 국군포로들이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을 상대로 제기한 추심금 소송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정상윤 기자
    ▲ 시민단체 '물망초'가 14일 오후 서울동부지법 앞에서 국군포로들이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을 상대로 제기한 추심금 소송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정상윤 기자
    북한 강제노역 피해자들인 국군포로들, 그중에서도 '참전 유공자'들은 지난 70년간 남북 정부로부터 외면받아왔다. 반면,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구제는 박정희 정부의 '대일민간청구권보상에관한법률'(청구권신고법), 노무현 정부의 '한일회담 문서공개 후속 대책 관련 민관공동위원회', 윤석열 정부의 '제3자 변제안'을 통해 현재 진행형이다.

    일제 강제징용과 국군포로의 강제노역은 불법행위가 발생했고 배상책임의 주체가 존재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다만 일본은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에 따라 외환보유고의 4분의 1(▲무상 3억 달러 ▲장기 저리 정부차관 2억 달러 ▲상업차관 3억 달러 이상)을 한국 정부에 지급하며 청구권 문제를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제2조 제1항)하는 데 합의했다.

    1983년부터 2017년까지 총 53회에 걸쳐 이어진 '일왕'과 총리의 공식사과도 있었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2023년 5월 한일 정상회담 직후 공동기자회견에서 역대 내각의 입장을 전체적으로 계승하고 있다고 재확인하며 "저도 당시 혹독한 환경 속에서 일하게 된 많은 분이 힘들고 슬픈 경험을 하신 데 대해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북한은 1998년 6월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대변인을 통해 "단 한 명의 포로도 없다"고 국군포로의 존재를 부인했다. 국군포로들은 북한으로부터 불법행위에 대한 사과도 배상도 받지 못했다. 그러던 2020년 7월 북한의 국군포로 배상의무를 인정한 판결이 내려졌다. 그러나 1심 재판부와 항소심 재판부는 국내법의 집행을 좌절시켰다.

    통일부는 지난 16일 "정부는 사법부의 판결을 존중한다는 입장이며, 현재 재판이 진행 중에 있으므로 이를 지켜볼 것"이라며 "소송 진행 과정에서 재판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 필요한 협조를 해 나갈 것이다. 통일부는 재판 과정에서 충분한 논의가 이뤄질 수 있도록 법령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자료를 (2023년 8월) 법원에 제출했다"고 밝혔다.

    ◆항소심 재판부, 국군포로 추징금 청구소송 기각

    한국전쟁(6·25)에 참전했다가 북한군에 포로로 잡혀 약 50년간 강제노역 끝에 탈북한 국군포로들에 대한 손해배상금 지급이 법원에 의해 또다시 무산됐다. 서울동부지법 민사항소2-3부(오덕식·조규설·신신호 부장판사)는 지난 14일 국군포로 고 한재복 씨와 노사홍 씨가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경문협)'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액 8500여 만 원을 지급하라며 낸 추징금 소송 항소심에서 1심과 같이 원고들의 청구를 기각했다.

    '경문협'이 북한과 체결한 2009년 합의서에 따르면 저작물 사용료를 북한을 대리해 '접수'할 권한을 북한으로부터 위임받았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는 경문협이 손해배상금을 지급할 '제3채무자'의 지위가 없다고 봤다. 국군포로 측 소송대리인들은 증거로 제출한 2009년 합의서를 고려하지 않은 결정이라며 상고 의사를 밝혔다.
  • 2022년 10월 26일 박민식 당시 국가보훈부 장관이 귀환 국군포로 참전유공자 위문을 위해 남양주를 찾아 참전유공자를 위문하고 있다. ⓒ국가보훈처 제공, 뉴시스 사진
    ▲ 2022년 10월 26일 박민식 당시 국가보훈부 장관이 귀환 국군포로 참전유공자 위문을 위해 남양주를 찾아 참전유공자를 위문하고 있다. ⓒ국가보훈처 제공, 뉴시스 사진
    ◆ 항소심 재판부 "경문협, 北 저작료 징수권한 없다" vs 원고 측 "'09년 합의서'를 보라"

    이 사건의 핵심쟁점은 경문협이 북한 저작물 사용료를 남측 방송국 등 이용자로부터 받아 북한 내각 산하 기구인 '저작권사무국'에 지급하기로 합의했는지 여부다.

    국군포로 소송대리인인 엄태섭 변호사(법무법인 오킴스)가 통일부로부터 받은 사실조회 회신 결과에 따르면 북한의 민족화해협의회와 저작권사무국은 2009년 경문협 산하 남북저작권센터에 '저작권 사용료 접수 권한'을 부여하는 '09년 합의서'를 체결했다.

    이 합의서에는 "경문협은 조선중앙방송위원회와 조선영화수출입사를 대신해 저작물의 사용을 허락하는 계약을 체결하고 사용료를 접수할 권한을 가진다"는 내용이 적시됐다고 한다. 경문협에 포괄적 사전협상 권리를 부여한 '05년 합의서'의 내용을 09년 합의서를 통해 수정한 것이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는 "이 사건 합의에서 피고가 저작물사용료를 방송국 등 이용자로부터 받아 저작권사무국 내지 북한에 지급하기로 합의했다고 볼 수 없고, 달리 피고가 그 이용자로부터 저작물사용료를 받아 북한에 지급하기로 합의했다고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경문협이 북한으로부터 포괄적 사전협상을 할 수 있는 권한만을 부여받았을 뿐, 저작물사용료의 수령 등에 관한 권한을 부여받았다고 볼 수 없는 '대리 중개인'에 불과하므로 사건의 피압류채권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판결이다.

    원고인 국군포로 측은 항소심 재판부가 09년 합의서로 인해 변경된 내용을 고려하지 않은 채 05년 합의서만을 가지고 사실관계를 확정한 것은 '채증법칙' 위반이라며 상고 의사를 밝혔다. 채증법칙은 증거를 채택·결정함에 있어 법관이 지켜야 할 논리적이고 경험칙에 합당하게 사실관계를 확정하는 것이다.

    엄 변호사는 뉴데일리와 통화에서 "항소심 과정에서 통일부에 대한 사실조회회신을 통해 북한(저작권사무국)과 경문협이 2005년도 이후에 체결한 (변경) 합의서들(06년 합의서, 09년 합의서) 모두 항소심 재판부에 제출(갑 제30호중의 3 내지 5)했다"며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는 북한과 경문협이 2005년 12월 31일 자로 체결한 05년 합의서를 근거로만 제시했다"고 지적했다.
  • 북한은 김정은이 지난 14일 새로 개발한 지상대해상 미사일 시험발사를 지도했다고 15일 밝혔다. 조선중앙통신은 김 위원장이
    ▲ 북한은 김정은이 지난 14일 새로 개발한 지상대해상 미사일 시험발사를 지도했다고 15일 밝혔다. 조선중앙통신은 김 위원장이 "2월 14일 오전 해군에 장비하게 되는 신형 지상대해상 미사일 '바다수리-6'형 검수 사격 시험을 지도했다"고 보도했다.ⓒ북한 조선중앙통신 홈페이지 캡처, 연합뉴스 사진
    ◆ 1심 재판부 "北, 소송대상이 될 수 없다" vs 전문가 "'주권면제' 해당 안 돼 소송대상"

    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김영아 판사는 2020년 7월 "피고들(북한과 김정은)은 한 씨와 노 씨에게 2100만 원 을 각각 지급하라"며 원고 승소 판결을 냈다. 북한의 국군포로 배상 의무를 인정한 국내 첫 판결이었다. 그로부터 약 한 달 뒤인 8월 북한의 저작권료를 법원에 공탁 중인 경문협에 압류추심 명령이 내려졌다.

    하지만 경문협은 "채권자(탈북 국군포로)가 경문협이 보관한 금원이 북한의 소유라는 막연한 추측으로 압류 및 추심명령을 신청했다"며 집행을 거부했다. 북한은 민사소송법상의 당사자 능력이 인정되지 않고, "채권의 권리자는 조선중앙방송위원회·조선영화수출입사·조선작가동맹 중앙위원회 등 3개의 법인과 17명의 개인 등 저작물의 저작자"이므로 '피압류채권'이 부존재한다고 주장했다.

    원고는 2020년 12월 추심금 청구소송을 제기했지만 1심 재판부는 2022년 1월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 "북한은 피압류채권을 가지는 주체가 아니다. 북한을 우리와 같은 대등한 개별 독립국가로도 볼 수 없으며 비법인 사단으로 인정할 증거도 부족하다"며 경문협의 손을 들어줬다.

    "북한의 저작물은 우리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으며 모두 저작권법상 권리를 행사할 수 있고 (권리 주체는) 개인도 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재판부의 판단과 달리, 북한은 거래의 주체로서 민법상 당사자 능력을 행사하고 있다. 국제법 전문가들은 북한이 헌법상 국가는 아니므로 주권면제 대상이 아니며 소송의 대상이 된다고 본다.

    주일대사와 외교부 1·2차관 등을 역임한 신각수 법무법인 세종 고문(국제법 박사)은 통화에서 "우리 국내법이 인정한 북한의 지위는 지방에 있는 반란단체와 비슷하다"며 "따라서 국가에만 인정되는 '주권면제'가 인정되지 않는 북한은 소송 대상이 된다. 경문협이 북한을 대리하는 단체라는 것만 입증되면 경문협이 징수한 저작물 사용료로 북한이 국군포로들에게 진 채무를 변제하라는 판결을 인정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판결에서 불법행위에 의한 손해배상이 인정되면 이에 따라서 배상책임이 발생하고 책임을 이행할 의무가 생긴다"며 "북한은 포로를 귀환시켜야 하는데 그 의사에 반해 강제노역을 시켰으니 불법행위가 발생했고 배상책임이 생긴다. 배상책임의 주체는 북한인데, (국내에 있는 북한의 유일한 재산인) 북한의 저작권을 경문협이 위임받은 것이 맞다면 경문협이 배상하는 것이 맞다"고 덧붙였다.

    앞서 남북 양자는 전쟁으로 인한 희생자 감소 및 보호를 위해 1948년 8월 체결된 국제조약인 '제네바 협약'의 일부인, '포로에 대한 인도적 대우에 관한 협약'(제3협약)을 지키겠다고 선언했다. 문제는 북한이 국군포로들을 귀환시켜야 할 의무를 위반하고 이들을 강제로 인민군에 편입시켜 억류한 채 강제노역을 시켰다.

    유엔군사령부 보고서는 한국군 실종자를 8만1318명으로 파악했지만, 세 차례에 걸친 전쟁포로 상호교환에도 최종적으로 우리 측에 인도된 인원은 8343명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