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아들을 '김일성의 작은 군대'로 키우려 했던 북한'전쟁 고아' 1만명, 폴란드·체코 등 동유럽으로 보내현지서 김일성 찬가 부르고, 군대식 제식 훈련 받아'유럽물 먹은 전쟁 고아' 취급… 북한으로 강제 송환
  • ▲ 북한 평양에 세워진 김일성·김정일 동상. ⓒ조선중앙통신 / 연합뉴스
    ▲ 북한 평양에 세워진 김일성·김정일 동상. ⓒ조선중앙통신 / 연합뉴스
    7월 27일은 6.25전쟁의 정전협정 69주년을 맞이하는 날이다. 3년 1개월 동안 금수강산을 피로 물들인 전쟁은 수많은 고아들을 낳았다. 소련은 소위 '사회주의 연대'를 강화하기 위하여, 북한의 전쟁고아들을 동유럽에 맡겼다. 5000~10,000명에 이르는 아이들이 헝가리, 루마니아, 체코, 폴란드, 불가리아로 보내졌다.

    김덕영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김일성의 아이들'은 망각의 강물에 휩쓸려가던 진실을 건져서 살아있는 역사로 복원한, 북한 출신 전쟁고아들의 기록이다. 10여개의 국제영화제에서 본선에 올랐고 로마영화제에서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한 명작이기도 하다. 한강에서 바늘 찾는 식의 작업을, 사재(私財)를 털어 넣는 15년의 세월을 쏟아 부어 수행한 노고에 갈채를 보내며, 문재인 정권기에 개봉을 하며 겪었을 어려움에 위로를 표한다.

    북한은 동유럽의 고아들을 '김일성의 작은 군대'로 키우고자 했다. 아이들은 김일성 찬가를 부르고 군대식 제식 훈련을 했다. 교사들 중에는 정보요원이 섞여 있었고, 친구들끼리 서로 감시해야 했다.

    그러나 공산주의에 물든 동유럽이어도, 그곳에는 유럽문명의 근간을 이루는 '개인'과 '자유'가 있었다. 그리고 어떤 장벽으로도 막을 수 없는 인간애(人間愛)가 있었다. 북한의 아이들은 자유를 배웠고, 우정을 나누었다. 불가리아의 페트로브 콜레브는 "깃털이 달린 작은 물건을 발로 차는 경기"를 하며 북한친구들과 놀았다. 1950년대에 제기차기를 유럽에 수출했으니, 한류(韓流)의 원조인 셈이다. 따뜻하게 품어주었던 유럽인들을, 북한 아이들은 "아빠, 엄마"라는 한국어로 불렀다.

    감시를 피해가며 자유를 체험했던 아이들은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린다. 1956년의 헝가리 민주화 투쟁에 북한의 전쟁고아들이 참여했다. 폴란드에서는 북한 학생들이 오스트리아 망명을 시도했다. 북한에서도 소용돌이가 일고 있었다. 김일성은 1인 독재를 비판한 흐루시초프에 저항하여 소련의 영향력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김덕영 감독의 저서 <논픽션: 김일성의 아이들>을 인용하면, 그들은 북한에게 "유럽물을 먹은 전쟁고아"요, "외국 문물과 사상에 물든 반혁명적 존재"가 되어 버렸다.

    결국 김일성은 1959년에, 어엿한 청소년으로 자라난 고아들을 강제 귀환시킨다. 돌아가지 않으려고 탈출했다가 붙잡힌 소년은 집단 구타를 당하여 불구자가 되었다. 루마니아 소녀를 두고 갈 수 없어서 탈출에 성공한 어린 남자는 집시처럼 떠돌이가 되었다. 남북한을 통틀어 거의 유일하게 동유럽의 문화와 언어를 익힌 소중한 인재 집단이었지만, 돌아간 인원들은 광산과 채석장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잊을 수 없는 사람들에게, 고아들은 "고향에 계신 엄마, 아빠에게"로 시작되는 편지를 썼다. 하지만 자신들의 실상이 노출되는 편지를, 수령체제는 참을 수 없었다. 1962년에 모든 서신왕래가 중단된다. 폴란드에서 살았던 아이들은 마지막 편지까지, 마지막 줄을 똑같이 썼다. "아버지, 어머니, 저희를 폴란드로 데려가 주세요."

    우정을 뿌리친 체제는 사랑도 갈라놓았다. 폴란드의 북한 남자 윤, 여자 리수옥은 연애하다가 이별 당했다. 고통스러운 과정을 견뎌서 결혼까지 했던 동독의 레타나 홍, 폴란드의 오가렉 최, 루마니아의 제오르제타 미르초유를 비롯한 10여명의 여인들은 이산가족이 되었다. 한 폴란드 여인은 자살을 시도했다. 미르초유는 30여 년간 한국어–루마니아어 사전을 만들었고 60년째 남편을 기다리고 있다.    

    그들은 김일성이 일으킨 전쟁으로 고아가 되었다. 소련의 지휘를 받던 김일성에 의해 머나먼 타국으로 보내졌다. 그리고 소련의 영향력으로부터 벗어나려던 김일성의 정책으로 귀환 당했다. 동유럽에서는 김일성 찬가를 부르며 집단생활을 했고, 북한에서는 김일성에 의해 어딘지로 모르는 곳으로 흩어졌다. 최대 1만 명이라고 추산되지만, 김일성의 결정에 의해서, 단 한 명의 기록도 남아있지 않다. 영화와 책의 제목 그대로, '김일성의 아이들'이다.

    소위 '색깔론'의 피해자라고 주장한 이 나라의 대통령들이, 북한과 김씨 일가에 대해서는 분명한 색깔을 드러낸 바 있다. 김대중은 김정일을 "견식있는 지도자"라고 불렀다. 노무현은 자신이 북한의 대변인 노릇을 했다고 자처했다. 북한으로부터 "삶은 소대가리"라는 욕설을 들으면서도 문재인은 변치 않는 일편단심(一片丹心)을 지켰다.

    그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네 자식들이 '김일성의 아이들'처럼 된다면, 그래도 북한의 편을 들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