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범, 대기업에 '작은 이익' 운운 "달러 내놓으라" 압박금감원장은 증권사들의 해외주식 마케팅 사실상 중단 요구정부의 反시장 정책 역풍 … 野 "정부가 조폭인가" 기업들은 정부 정책 따랐다가 위기 봉착 때 닥칠 공포 걱정 외환 위기 당시 기업들 '공중 분해' 트라우마 여전
  • ▲ 지난달 18일 국회에서 열린 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김용범(오른쪽) 대통령실 정책실장이 김은혜 국민의힘 의원의 질의에 답하는 도중 언쟁을 이어가자 우상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이 제지하고 있다. /연합뉴스
    ▲ 지난달 18일 국회에서 열린 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김용범(오른쪽) 대통령실 정책실장이 김은혜 국민의힘 의원의 질의에 답하는 도중 언쟁을 이어가자 우상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이 제지하고 있다. /연합뉴스

    원달러 환율이 달러당 1500원을 육박하자, 정부가 급기야 기업과 금융사들의 팔을 비트는 '관치'가 노골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증권사들에게 미국 주식 매입을 유인하는 마케팅을 중단하도록 요구하는가 하면, 대통령 정책실장까지 나서 기업들에게 곳간에 쌓여 있는 달러를 내놓으라고 요구하고 나섰다. 

    정부는 성장률과 주가지수가 올라간다면서 이재명 정부의 정책 효과를 내세우고 있지만, 외환 시장에서 벌어지는 현상은 국제통화기금(IMF) 체제 당시의 위기 상황에 대처하는 정부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 국민 전체에 '금 모으기'를 했던 모습이 기업과 금융사의 달러를 요구하는 상황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하지만 정작 기업들 사이에서는 IMF 체제 당시의 트라우마가 정부의 요구에 선뜻 응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고 있다. 정부의 요구에 호응했다가 달러 위기가 심해져 외화 부분에서부터 자금난이 벌어질 경우 정부가 얼굴을 바꾸어 계열사 매각과 오너의 사재 등을 요구했던 환란 당시의 고강도 기업 구조조정 상황으로 돌변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20일 뉴역 차액선물환(NDF) 외환 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국민연금까지 외환 시장 안정 조치에 동원했음에도 불구하고, 1475원~1480원 사이에서 고공행진을 이어갔다. 정부의 각종 정책이 사실상 약발을 발휘하지 못하고, 한국 정부에 대한 외국인들의 불신을 씻어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 연속되자 구윤철 경제 부총리가 아닌,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이 직접 최전선에 나서는 '이례적인' 모습이 연출되고 있다. 

    김 실장은 지난 18일 삼성과 SK 등 7대 수출 기업 최고재무책임자(CFO) 등을 불러 "작은 이익을 보려 하지 말아 달라"고 압박했다. '작은 이익'은 정체된 표현처럼 보이지만, 기업들에게는 곳간에 있는 달러를 풀지 않으면 다른 측면에서 불이익이 가해질 수 있음을 암시하는 매우 강력한 압박이다. 

    대기업들로선 제조업 뿐만 아니라 금융 계열사들을 갖고 있고, 정부에 밉보일 경우 산업자원부와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등으로부터 비공식적인 제재와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 심지어 필요하면 국세청이 언제든 기업들의 탈세 혐의를 잡고 들이닥칠 수 있다는 공포감을 갖고 있다. 경제 부총리가 아닌, 경제 부처를 모두 조율하는 대통령실의 정책실장이 직접 등판했다는 사실은 이런 측면에서 기업들에게 최고 강도의 압박이라 할 수 있다. 

    공교롭게도 '압박 작전'에는 이재명 대통령과 가까운 '실세' 이찬진 금융감독원장도 동원됐다. 금융위원장이 아닌, 금융감독원장이 직접 증권사들을 향해 "투자자 보호를 뒷전으로 하고 있다"고 경고하고 나선 것이다. 금감원은 주요 증권사 최고경영자(CEO)를 별도로 소집해 해외 증권 영업 실태를 점검하기도 했다. 

    하지만 기업이나 금융회사 사이에서는 정부의 입장을 이해못할 바는 아니지만, 무조건 따랐다가 기업의 명운이 흔들리는 위기 상황에 처할 수 있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당장 대기업들은 이미 내년 원달러 평균 환율을 내부 책정한 뒤, 이에 맞춰 각종 경영 계획을 세워 높았다. 자금 담당자들은 이에 맞춰 환 헤지 계약을 체결하고 해외 투자 계획 스케줄을 맞춰 놓았다. 이런 상황에서 달러 곳간을 풀 경우 연간 단위의 사업 계획이 통째로 흔들릴 수 있다. 

    4대그룹의 한 고위 인사는 특히 과거 위기 상황에서 벌어졌던 정부의 대(對) 기업 압박 조치를 상기시키기도 했다. 

    외환 위기 직후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4대그룹을 향해 이른바 '빅딜'이라는 이름으로, 계열사들을 반강제적으로 내놓도록 했다. 현재 SK하이닉스는 과거 LG그룹의 구본무 회장이 김대중 전 대통령과의 회동 이후 눈물을 흘리며 현대그룹에 내놓았던 계열사였다. LG그룹은 이후 반도체 사업에 다시 진입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120개가 넘는 워크아웃(기업구조개선작업) 기업들은 금감위 아래에 설치된 기업구조조정위원회의 요구에 따라 오너들에 사재를 통째로 내놓고, 계열사 매각 속에서 그룹이 사실상 공중분해되고 말았다. 

    기업들로서는 정부가 '작은 이익'에 연연하지 말라고 하는 말에 따랐다가, '작은 이익이 아닌 회사 존립 위기'에 처할 수 있다는 공포감을 갖고 있는 셈이다. 이들에게는 "기업에 알토란 같은 달러 자산을 내놓으라니 정부가 무슨 조폭이냐"(송언석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말이 더 다가오는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