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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무드(Talmud)에 나오는 유명한 우화다. 어느 날 한 랍비가 하인에게 비싸도 좋으니 시장에 가서 가장 맛있는 것을 사오라고 했다. 이에 하인은 '혀'를 사왔다.
다음날 랍비는 같은 하인에게 이번엔 맛은 상관없으니 가장 싼 걸 사오라고 했다. 그랬더니 하인은 또 '혀'를 사왔다.
이유를 물어보니, 하인은 "혀는 사용하기에 따라 가장 귀한 것이 될 수 있고, 가장 천한 것이 될 수도 있다"고 답했다.
이 현명한 하인의 말처럼, 사람의 부드러운 입술 속에 숨겨진 혀는 세 치 남짓한 크기에 불과하나, 엄청난 위력을 갖고 있다. 이 작은 혀가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기도 하고, 불행을 가져오기도 한다.
세 치 혀에 의해 우리 삶의 방향이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말은 마음의 소리(言爲心聲)다. 사람의 속내가 얼굴 표정에서도 엿보이지만 직접적으로 표출되는 건 결국 말이다.
최근 이재명 대통령이 업무보고에서 각 기관장들에게 했던 '말'이 화제가 되고 있다. 야당 3선 의원 출신인 이학재 인천공항공사 사장에게 '세관 업무'인 "100달러짜리를 책갈피로 끼워 해외 밀반출이 가능하냐"고 질문을 던진 이 대통령은 "세관하고 같이한다"는 답변이 끝나기가 무섭게 "말이 참 기십니다. 가능하냐, 안 하냐를 묻는데 자꾸 옆으로 샙니다"라고 쏘아 붙였다.
그러면서 답변 자료를 보려는 이 사장에게 "써준 것만 읽지 마시라" "지금 다른 데 가서 노시냐"고 빈정댔다.
또한 입찰 공고도 안 나온 '이집트 공항'과 관련된 질문을 하면서 "임기가 3년씩이나 됐는데 업무 파악을 정확하게 하고 있지 않은 느낌"이라고 질책하기도 했다.
이후 이 사장이 SNS 등을 통해 당시 상황을 해명하는 입장을 밝히자, 이 대통령은 "업무보고는 정치적 논쟁의 자리가 아닌데, 왜 그런 것을 악용하느냐. 이런 사람은 어떤 공직도 맡아선 안 된다"며 "권한은 누리면서 책임은 지지 않으려는 것은 그야말로 도둑놈 심보"라고 비난했다.
이 대통령은 "특정 개인의 문제라고 하기는 어렵고, 하나의 풍토 문제"라고 설명했지만, 사실상 이 사장을 겨냥한 경고성 메시지란 해석이 짙다.
이 대통령이 동북아역사재단 업무보고에서 했던 말도 화제가 됐다. 이 대통령은 박지향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에게 '환빠(환단고기 추종자)'와 '환단고기'에 대해 알고 있는지를 물으며 "동북아역사재단은 고대 역사 연구를 안 하느냐"고 추궁했다.
이에 박 이사장이 "소위 재야 사학자들보다는 전문 연구자들의 이론이 주장이 훨씬 더 설득력 있다"고 답하자, 이 대통령은 "증거가 없는 건 역사가 아니다? 사료가 물리적 증거를 말하는 건지, 역사적 문헌에 있는 걸 증거라고 하는 건지는 논쟁거리"라고 말했다.
대통령이 기관장을 문책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이번 업무보고는 생중계로 진행돼 전 국민이 실시간으로 시청했다. 답변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말을 자르고 "말이 길다" "써준 것만 읽지 말라"고 기관장들에게 면박을 주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공직사회에 불필요한 긴장감을 조성할 수 있고, '공개 망신'으로 자존심이 긁힌 이들의 반발심만 키울 소지가 다분하다.
모든 리더는 비난과 비판의 유혹에 직면한다. 일단 눈에 보이는 흠집을 지적하고 질타하면 가시적인 성과는 거둘 수 있다. 실제로 생중계된 업무보고를 보며 '넷플릭스보다 더 재미있다' '통쾌하다'는 온라인 반응도 나왔다. 일단 가려운 부분을 긁고 도려내면 시원해 보일 순 있다. 하지만 함부로 건드리면 상처가 더 벌어지고 곪아 터지는 부작용이 따라오기 마련이다.
에이브러햄 링컨은 한때 사람들을 비난하기 좋아했다. 젊은 시절 종종 주변 사람들을 비판했던 그는 특정인을 조롱하는 편지나 시를 써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길가에 놓아두기도 했다.
1842년 가을 링컨은 제임스 쉴즈라는 아일랜드 출신의 정치인을 조롱하는 글을 '스피링필드 저널'에 기고했다. 이 일로 화가 난 쉴즈는 링컨에게 결투를 신청했고, 싸움을 못 하는 링컨은 졸지에 목숨 건 결투를 해야하는 위기에 처했다. 다행히 제3자의 중재로 위기를 모면한 링컨은 다시는 남을 조롱하는 글을 쓰지 않았다고 한다.
링컨은 남북전쟁 당시 참패를 거듭하던 미드 장군에게 "장군이 효율적으로 부대를 통솔할 수 있을지에 대해 자신이 없다"는 질책성 편지를 썼다. 그러나 링컨은 이 편지를 부치지 않고 평생 자신의 서랍 속에 넣어 뒀다. 이 편지는 링컨 사후에 발견됐다.
미 대통령 경선 당시 링컨을 "털빠진 원숭이"라고 놀리던 스탠턴이라는 인물이 있었다. 그는 대통령 후보 경합을 벌이면서도 미국 전역을 돌며 링컨에 대한 독설을 서슴지 않았다. 나중에 대통령에 당선된 링컨은 주위의 만류에도 "그만한 적임자가 없다"며 스탠턴을 국방장관으로 임명했다.
훗날 국방장관을 역임하며 남북전쟁을 승리로 이끈 스탠턴은 링컨이 암살당했을 때 가장 먼저 달려와 눈물을 흘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다시 이 대통령의 이야기로 돌아와 보자. 야당 중진 의원 출신으로 차기 인천시장 출마설이 도는 이학재 인천공항공사 사장이 눈엣가시처럼 보일 수 있다. 대통령이 야당 대표 시절, 윤석열 정부가 임명한 박지향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의 '파면'을 요구했던 것도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물론 행정부 수반이기 이전에 정치인으로서 이들에 대한 대통령의 감정은 충분히 이해한다. 그러나 전 국민이 보는 앞에서 대통령이 공직자들을 대놓고 면박하고 자질을 운운하는 건 전혀 다른 문제다. 일종의 '갑질'로 비칠 소지가 있는 데다, 특정인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 전 정부 인사들에게 '알아서 처신하라'는 시그널로 읽힐 우려도 있다.
임기가 보장된 전 정부 인사들을 차별하거나 배제하는 듯한 태도는 민주주의 원칙에 어긋난다는 원론적인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다. 이런 식으로는 '협치'는커녕, 여야가 더욱 극심한 '정쟁국면'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 '정쟁보다 민생'이라는 대통령의 국정철학이 흔들리는 것은 물론, 대통령의 '호통'만 들리는 생중계가 계속될 경우 되레 '국민 갈등'만 부추길 가능성이 농후하다.
세 치 혀는 마치 칼처럼 신중히 휘둘러야 한다. 열광하는 지지층에 취해 멋대로 휘두르다 주변까지 헤치는 흉기가 될 수 있다.
말은 그 사람의 '품격'을 나타낸다. 누군가를 베고 찌르는 칼이 아니라, 누군가의 상처를 보듬고 힘을 주는 '품격 있는 말'이 우리 사회와 가정을 윤택하게 한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단 하나, 품격 있는 언어로 공직자, 그리고 국민과 소통하는 참다운 지도자의 모습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