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자 비판' 함부로 하다 '소송 폭탄' 맞는다?'언론 재갈법' 국회 통과에 우려 쏟아져
  • ▲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23일 부산 동구 해양수산부 청사에서 열린 해수부 업무보고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23일 부산 동구 해양수산부 청사에서 열린 해수부 업무보고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입법·사법·행정부에 이어 ‘제4부 권력'으로 불리는 '언론'마저 정부가 쥐락펴락할 수 있는 초유의 '입틀막법'이 국회 문턱을 넘었다. 

    지난 24일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정보통신망법 개정안(허위조작정보 근절법)'은 고의로 허위조작정보를 유통한 언론과 유튜버 등에 손해액의 최대 5배까지 징벌적 손해배상 책임을 지우는 것이 핵심이다.

    이 법에 따르면 기업인은 물론, 정치인과 고위 공직자도 언론 등에 거액의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게 됐다. 손해배상 소송 대상은 추후 대통령령으로 정한다. 

    주무 부처인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방미통위)가 불법·허위조작정보로 판결된 정보를 2회 이상 유통한 언론 등에 최대 10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하거나, '증명이 어려운 손해'에 대해 5000만 원까지 배상액 지급이 가능하도록 하는 내용도 신설됐다.

    또 방미통위가 인터넷 기사까지 '허위조작정보 유통'의 심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게 됨에 따라, 무소불위의 '검열기구'로 거듭날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앞서 이재명 대통령이 폐지 검토를 지시했던 '사실 적시 명예훼손죄'는 존치됐고, '허위사실 명예훼손 친고죄'는 '반의사불벌'로 복원돼 제3자도 고발할 수 있게 됐다.

    '공공복리 등 공공의 이익을 위한 정보'는 징벌적 손배 대상에서 제외됐지만, 처벌 기준인 허위조작정보의 개념이 모호해 악용될 소지가 다분하다는 게 정치·법조계의 중론이다.

    이 법이 시행될 경우 정치인이나 대기업 임원 등의 '권력자'도 배상 청구가 가능해 언론에 대한 '전략적 봉쇄 소송(SLAPP)'이 남발할 것이라는 전망과 함께, 권력 비위 등에 대한 합리적 의심 제기가 어려워져 여론을 형성하고 권력을 견제하는 언론 기능이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사실상 권력을 손에 쥔 이들이 언론을 상대로 허위조작정보 여부를 판별해 심판까지 다 하겠다는 것. 앞으론 정치인이 자신에게 불리한 기사를 허위조작정보라고 우기며 언론사를 상대로 천문학적인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내도 막을 방도가 없어진다. 소송에 휘말린 언론사의 '펜대'가 무뎌지는 건 당연지사. 

    국회를 장악한 민주당이 정권에 비판적인 언론과 유튜브를 통제하기 위해 개정안 통과를 주도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과도한 '입틀막'으로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제약하는 개정안의 '위헌성'이 심각한 수준인 데다, 정권에 '전가의 보도'를 쥐어준 이 법안이 언젠가는 정치권 전체의 발목을 잡는 '자충수'가 될 수 있기에 국민의힘뿐만 아니라 진보당·참여연대 등 좌파 진영에서도 비판의 소리가 쏟아지고 있다. 

    특히 한국기자협회·한국신문협회·전국언론노동조합·언론개혁시민연대·공정언론국민연대·미디어미래비전포럼·미디어연대·자유언론국민연합 등 '좌우 진영'을 막론한 언론계 전 단체가 강도 높은 성명으로 '개악법(改惡法)'을 통과시킨 여당을 맹비난하는 모습이다.

    긍정적인 면보다 부정적인 면이 훨씬 큰 이 법안에 대해 이 대통령이 '재의요구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전방위에서 높아지고 있는 상황. 대통령이 입법 거부권으로 '언론 재갈법'에 제동을 걸어야 할 '차고 넘치는' 이유들을 정리해 봤다.
  • ▲ 최수진 국민의힘 의원이 3일 국회에서 열린 제430회국회(임시회) 제2차 본회의에서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대안)에 대한 반대 무제한토론(필리버스터)을 하고 있다.  ⓒ이종현 기자
    ▲ 최수진 국민의힘 의원이 3일 국회에서 열린 제430회국회(임시회) 제2차 본회의에서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대안)에 대한 반대 무제한토론(필리버스터)을 하고 있다. ⓒ이종현 기자
    #추상적 '허위조작정보' 개념 … 헌법상 '명확성 원칙' 위배

    민주당이 국회에서 강행 처리한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은 '허위조작정보'를 유통한 언론사 등에 민사적 책임을 강하게 물리는 것을 골자로 한다. 

    개정안은 인종·성별·장애·사회적 신분 등을 이유로 폭력이나 차별을 선동하거나 증오심을 심각하게 조장하는 정보는 '불법정보'로 규정하고, 일부 또는 전부가 허위이거나 사실로 오인되도록 변형된 정보는 '허위조작정보'라고 정의내렸다. 이러한 정보를 타인에게 손해를 가할 의도로 유통하면 손해배상 청구가 가능하도록 했다.

    문제는 규제 범위가 지나치게 넓고, '손해를 가할 의도' 등 개념 자체가 추상적이고 모호하다는 데 있다. 기사 중 일부만 허위여도 문제제기를 할 수 있고, 언론에서 흔히 쓰이는 풍자적 표현까지 불법정보로 간주할 수 있는지 등 논란의 여지가 많다. 

    이인호 중앙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지난 23일 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이 법은 허위정보를 규제하는 법이 아니라, 비판적 언론과 정치적 표현을 위축시키는 언론통제법에 가깝다"며 "표현의 자유를 본질적으로 침해하고, 국가에 '진실 판단권'을 부여하는 위험한 발상"이라고 경고했다.

    이 교수는 "기존 정보통신망법도 불법정보를 열거하고 있지만, 이번 개정안은 '비방 목적의 명예훼손 정보'를 '법익을 침해하는 정보'로 바꾸고, 여기에 '증오 선동 정보'라는 새로운 유형을 추가했다"며 "어떤 법익을 어떻게 침해하면 불법인지 전혀 예측할 수 없다"고 말했다.

    앞서 민주당이 북한 사이트를 자유롭게 열람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정통망법 개정안을 발의한 것도 이번 개정안과 비교해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지적도 있다. 

    개정 취지는 정보 불균형을 해소하고 북한에 대한 이해도 제고하겠다는 것이나, 체제 선전과 대남 선동을 목적으로 운영되는 '노동신문'에 차별을 선동하거나 증오심을 조장하는 '불법·조작정보'가 난무하고 있다는 점에서 국내 언론만 '입틀막'하겠다는 여당의 행보가 모순적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 ▲ 국회 본회의 장면.  ⓒ이종현 기자
    ▲ 국회 본회의 장면. ⓒ이종현 기자
    #징벌적 손해배상 청구에 과징금까지 … '이중 제재' '과잉금지 위배' 논란

    이 법안은 허위조작정보 유통에 따른 손해배상액을 피해액의 최대 5배까지 높였다. 또 허위조작정보로 확정된 정보를 두 번 이상 유통한 경우 최대 10억 원까지 과징금을 부과하도록 했다.

    그러나 기존 민법과 형법, 그리고 언론중재법에서도 언론 보도로 피해가 발생했을 때 손해배상 청구 소송과 정정보도 등으로 구제하도록 하고 있다.

    이와 관련, 법원행정처는 해당 법안에 대해 "현재도 언론은 허위보도에 대해 형사처벌, 손해배상, 정정보도 의무 등 제재를 받는다"며 "과잉금지원칙에 위배되는지 추가 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낸 바 있다.

    한국인터넷신문협회는 "손해액 증명 없이 최대 5000만 원의 법정손해액을 인정하는 것 자체가 과도한 제재"라며 "특히 소형 언론사와 개인 게재자에게 치명적인 부담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일반 손해배상 원칙과 비례성을 벗어난 징벌적 제재는 언론과 표현 활동 전반을 심각하게 위축시킬 것"이라며 "형사처벌, 과징금, 손해배상을 중복 부과하는 것은 이중·삼중 제재로서 비례성 원칙에 정면으로 배치된다"고 비판했다.

    진중권 동양대 교수는 23일 시사저널TV '시사끝짱'에 출연해 "피해액의 5배를 물리겠다는 건데, 미국을 예로 들지만 미국은 형사처벌이 없다"며 "한국은 형사처벌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민사로 다시 징벌적 손해배상을 물리면 이중 처벌이 되고, 헌법상 비례성 원칙이 깨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반론 보도 청구 기간을 기존 '보도 후 6개월 이내'에서 '2년 이내'로 늘린 데 대해서도 "언론사가 정상적인 업무를 하기 어려워진다"며 "사실상 과거 군사정권 시절의 '보도 지침'과 유사한 효과를 낳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2010년 '미네르바 사건' 당시 헌재가 단순 허위사실까지 처벌하는 건 헌법의 과잉금지원칙에도 위배된다는 의견을 낸 것을 언급하며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은 이미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판단을 받은 내용과 겹친다. 위헌 판정을 받은 조항을 다시 집어넣었다가 위헌 논란이 불거지면 빼고, 또다시 넣는 식으로 법안을 오락가락 다루다 보니 누더기가 됐다"고 질타했다.
  • ▲ 최민희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이종현 기자
    ▲ 최민희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이종현 기자
    #정치인 등 '권력자'도 손해배상 청구 가능 … 정치권·기업 악용 가능성 높아

    미디어오늘에 따르면 최민희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이 2021년 언론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 논의 당시 고위공직자 등 권력자는 손해배상 청구 대상에서 빼는 것이 맞다는 취지의 입장을 밝혔던 것으로 나타났다. 

    정작 최 위원장이 발의했던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에는 그러한 내용이 담기지 않아, 권력자가 보도 위축 목적으로 법안을 악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는 게 보도의 골자.

    보도에 따르면 최 위원장은 원외 시절인 2021년 8월 12일 페이스북에 "민주당이 징벌적 손해배상 보도 대상에서 고위공직자 즉 현직 국회의원 등을 뺀 것은 잘한 일"이라며 "국회의원 비리보도 방패막이법이란 불필요한 논란은 원천 차단함이 옳다. 대선을 앞두고 쓸데없는 정파적 논쟁을 배제하는 효과도 있다"고 썼다.

    이어 언론보도로 피해를 입은 중소기업 대표를 언급하며 "징벌적 손배제는 그분들에 대한 최소한의 양심적 응답이었다. 언론사 징벌적 손배제는 언론권력과의 야합이 애초 불가능한 약자들부터 적용하는 것이 낫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최 위원장은 지난 10월 발의한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에서 권력자도 언론에 대해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도록 명시했다. 

    최 위원장은 권력자의 징벌적 손해배상 청구에 대한 입장이 2021년 때와 달라진 것인지를 묻는 미디어오늘의 질의에 "법안을 좀 꼼꼼히 무심하게 읽어 보시길 바란다"며 "노종면 의원의 필리버스터를 참고해 달라"고 말했다. 

    노 의원은 지난 24일 새벽 필리버스터에서 "(민주당이) 권력 좀 있다고 이런 법 만들어서 언론 옥죌 생각이 있었으면 아무도 요구하지 않았던 이른바 '안티 슬랩'(전략적 봉쇄소송 방지) 조항을 스스로 넣었겠나"라며 "민주당이 그런 식(보도 위축 목적)으로 언론과 유튜브를 대하면 '입막음 소송'으로 판정받아서 더 곤란한 지경에 처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기자협회 등 언론 현업 5단체는 "권력자들에 한해 징벌적 손해배상 청구권 자체를 제한할 것을 요구했지만, 유감스럽게도 이는 수용되지 않았다"며 "허위조작정보를 법으로 규제하는 이상 표현의 자유는 훼손될 것이고, 징벌적 손배가 도입된 이상 권력자들의 소송 남발로 인한 언론 자유 위축은 막을 수 없다는 우려가 가시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권이 마음먹기에 따라 방미통위 과징금이나, 방미심위의 심의 기능을 이용한 악용 가능성도 우려된다"며 "법 개정으로 인한 언론·표현의 자유 위축 우려를 잠재울 책임은 누구보다 정부여당에 있다. 이 법이 규율하고자 하는 대상은 극히 일부의 ‘허위조작정보’임을 다시금 명확히 하고, 언론·표현의 자유에 대한 훼손 여지를 없앨 수 있도록 법안 내용을 세심히 검토할 것"을 촉구했다.
  • ▲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 ⓒ이종현 기자
    ▲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 ⓒ이종현 기자
    #李, '폐지 검토' 지시했는데 … '사실 적시 명예훼손죄' 존치 

    이 개정안에는 이 대통령도 폐지에 동의했던 기존 정보통신망법상 '사실 적시 명예훼손죄'가 그대로 유지됐다.

    개정안 70조(벌칙)는 "사람을 비방할 목적으로 정보통신망을 통해 공공연하게 사실을 드러내 다른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이 대통령은 지난달 국무회의에서 정성호 법무부 장관에게 "혐오표현 처벌과 관련한 형법을 개정할 필요가 있어 보이는데, 만약 개정하게 되면 사실 적시 명예훼손 제도도 동시에 폐지하는 것을 검토하라"고 분명히 지시했다.

    당·청 간에 엇박자가 난 것일까? 앞서 사실 적시 명예훼손죄에 대해 "비리나 범죄를 저지른 자를 보호해주는 법이 될 수 있다"고 비판했던 민주당 의원들이 불과 석 달 뒤 해당 처벌 조항을 존치하는 납득하기 어려운 결정을 내렸다.

    줄곧 '사실 적시 명예훼손죄' 폐지를 주장해 온 박주민 민주당 의원은 지난 24일 페이스북을 통해 "저는 오늘 정보통신망법 개정안 표결에서 다시 기권했다"며 "제가 대표 발의한 법안의 핵심인 '사실 적시 명예훼손죄 완전 폐지'와 '친고죄 변경'이 이번에는 담기지 못했다"고 밝혔다.

    박 의원은 "오랜 시간 소신을 갖고 추진해 온 과제이고, 어제 다른 법안(의 표결)에 대해 기권을 한 바 있어 고심 끝에 내린 결정이었다"면서 "저희 당은 형법상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폐지와 속도를 맞춰 정보통신망법 개정도 재추진할 것이고, 저 또한 즉시 재발의하겠다"고 공언했다.

    이어 "오늘의 통과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며 "사실 적시 명예훼손죄가 폐지되는 날까지 제가 시작한 일, 제가 반드시 매듭짓겠다"고 말했다.

    이훈기 민주당 의원은 "기본법인 형법에선 여전히 존치돼 있는 점 등을 고려해 (이번에는) 현행대로 유지하도록 했다"며 "(궁극적으로는) 사실 적시 명예훼손죄를 폐지하자는 게 민주당 입장"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