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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규형 칼럼] 한국 클래식의 미래 임윤찬… 그리고 반 클라이번

세계적 권위 美 콩쿨‥ 역대 최연소 우승한 임윤찬'냉전시대' 차이콥스키 콩쿨 우승한 반 클라이번 연상

강규형(서울시향 이사장, 명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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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22-07-02 14:42 수정 2022-07-02 14:42

▲ 크리스티나 오르티즈(좌)와 반 클라이번. ⓒ뉴데일리DB

임윤찬이 권위있는 반 클라이번 피아노 콩쿠르에서 우승했다. 18살의 역대 최연소 우승으로, 1969년에 브라질 크리스티나 오르티즈(Christina Ortiz 19살)가 세운 기록을 깼다.

그런데 의외로 이 콩쿠르 이름의 주인공인 반 클라이번(Van Cliburn)에 대해선 아는 사람이 많지않다. 그는 1958년 니키타 흐루쇼프(흐루시초프 Khrushchev) 서기장 시절, 소련이 자신들의 위상을 세계에 뽐내기 위해 창설한 제1회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압도적 우승을 차지하며 세계적 스타가 됐다. 더구나 그는 미국의 새파란 청년이었다. 내심 자국 아티스트의 우승을 바라는 소련 당국은 당황했다. 흐루쇼프는 심사위원들에게 "진정 그가 최고인가?"라는 질문을 던졌고. 심사위원들은 "네 서기장 각하.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반 클라이번은 금발의 잘 생긴 외모에 엄청난 재능과 명징한 연주로 혜성처럼 나타났다. 냉전시대였음에도 소련의 음악애호가들은 그와 사랑에 빠졌고 팬덤(Fandom)현상은 계속됐다. 그가 나이가 들어서 러시아를 방문해도, 그의 팬들은 계속 모여서 그를 환대할 정도로 충성도가 컸다. 당연히 그는 미국을 비롯한 서방세계의 영웅으로 등극했다. 카퍼레이드가 벌어지기도 했다. 서로 으르렁거리던 냉전 시절에도 양측에서 다 사랑받았던 희귀한 존재로서 반 클라이번을 통해 냉전 시대가 살짝 평화롭게 됐다는 농담도 나타났다.

필자는 서구의 한 유명 음악학자가 고(故) 클라이번(1934-2013)에 대해 이렇게 평한 것을 읽은 적이 있다. "전생에 음악을 통달하고 다시 태어난 것에 분명하다. 그렇지 않고는 이 어린 나이에 이렇게 피아노 연주를 잘 할 수 없었다." 그의 젊은 시절 LP레코딩은 아직도 매우 고가에 거래된다.그의 전성 시절 연주를 들으면 거의 접신(接神) 경지에 이른 듯하다. 특히 라흐마니노프, 차이콥스키 등은 아직도 전설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그런데 그는 기이하게도 마력을 금방 잃었고, 짧은 전성기를 마감하고 이른 은퇴를 했다. 루이지아나에서 태어나서 텍사스에서 자란 그는 미국에서도 중앙무대와는 거리가 있는 지방출신이었다. 소년등과(少年登科)는 패가망신이라는 격언이 있는데, 클라이번은 어린 나이에 감당 못 할 인기와 관심, 그리고 돈이 넘치니 갑자기 천재성과 예술혼을 상실한 듯했다. 그래서 아주 젊은 나이에 조기 은퇴했다가 재기를 두어 번 시도했는데 성공적이지 못해서 아예 은퇴했었다. 임윤찬도 경계해야 할 대목이다.

클라이번은 전성기를 지난 1970년대 말 세종문화회관에서 내한 공연을 했는데, 은퇴했다가 다시 복귀했을 때라 사람들의 큰 관심 없이 공연은 지나갔다. 이제는 반 클라이번이 서울 공연을 했다는 것을 기억하는 사람도 드물다.

그의 위업을 기리는 콩쿠르는 1962년부터 그의 고향인 미국 텍사스주 포트워스에서 4년마다 열린다. 2009년에 손열음이 준우승을 차지한 것이 한국인으로선 최고 순위였는데, 2017년과 2022년에 선우예권과 임윤찬이 연속 우승했다.

한국에 연속우승을 주기 힘들 것이란 예상을 깨고, 임윤찬은 올해 압도적 우승을 차지했다. 그의 경연 동영상을 보면 마치 반 클라이번이 환생한 듯한 기분까지 든다. 원래 작년에 열려야 할 콩쿠르가 코비드때문에 1년 후인 올해 열려서, 임윤찬은 만 18세라는 최저 나이 기준을 가까스로 맞춰서 올해 출진하고 우승하는 행운도 따랐다. 임윤찬의 반 클라이번 콩쿠르 우승 소식은 최하영의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첼로 부분 우승에 이어 날아온 낭보였다.

원래 내성적 성격의 임윤찬은 연주할 때는 못 말리는 끼를 발산했다. 피아노 협주곡을 치면서 흥에 겨워 자기도 지휘 모션을 할 정도였다. 그의 결선 곡인 라흐마니노프 3번은 치기 어렵기로 유명한 곡인데도, 익숙하게 그리고 또렷하게 쳐냈다. 지휘는 세계 여성 지휘계 선두 그룹에 속한 마린 알솝(Marin Alsop)이었는데, 연주자를 잘 살려주는 반주를 해줬다. 그는 볼티모어 심포니 상임 등으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알솝도 임윤찬의 연주에는 깜짝 놀란 듯하다.

준결승 곡인 리스트의 ‘초절기교 연습곡’은 숨이 벅찰 정도다. 클라이번이 들었더라도 놀랐을 것이다. 레슨비를 쏟아부은 경우가 아닌, 소도시의 일반 피아노학원에서 7살부터 다니다가 재능이 드러나 영재교육프로그램에서 키워진 순수 국내파라는 게 더 기특하다.

무시무시한 실력에 스타성까지 갖췄기에 당분간 임윤찬 열풍이 불 듯하다. 그는 오는 8월에 ‘롯데콘서트홀 여름 음악 축제 클래식 레볼루션 2022’에서 이미 멘델스존 ‘피아노 협주곡 1번’을 연주할 예정이었다. 이 연주회는 그의 우승 소식이 알려지면서 순식간에 매진됐다. 지도교수인 손민수는 결혼식을 하고는 밀려드는 인터뷰 요청 때문에 신혼여행을 연기했다 한다.

임윤찬 최연소 우승 덕분에 한동안 잊고 지냈던 이전 최연소 우승자였던 크리스티나 오르티즈도 기억에 소환됐다. 제2의 아르게리치라고 까지 평가받다가 그 위치까지는 가지 못했지만, 여성이 많이 없던 시절 젊은 여성 피아니스트로서 각광을 받으면 많은 실황연주와 레코딩을 한 족적을 남겼던 피아니스트다. 여성이 ‘감히’ 라흐마니노프 협주곡 2번, 3번에 도전하는 게 금기시됐던 시절 연주뿐 아니라 메이저 레이블에서 그 곡들을 당당히 멋지게 레코딩했던 여류 피아니스트는 ‘피아노 여제’ 마르타 아르게리치(아르헨티나)와 오르티즈(브라질) 둘밖에 없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임윤찬을 포함해서 이런 선구자들 덕에 클래식 음악은 계속 발전돼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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