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간 국민저항전선’, 판지시르·파르완·바글란에 거점 구축…당황한 탈레반, 진압병력 출동소련군·탈레반과의 22년 전투에서 진 적 없는 ‘판지시르의 사자’, 아프간 국민들 향수 자극
  • ▲ 지난 18일 잘랄라바드에서 한 남성이 아프간 국기를 손에 들고 반탈레반 시위에서 행진하고 있다. 현재 아프간에서 이런 행동은 목숨을 건 것이나 마찬가지다. ⓒ뉴시스 AP.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지난 18일 잘랄라바드에서 한 남성이 아프간 국기를 손에 들고 반탈레반 시위에서 행진하고 있다. 현재 아프간에서 이런 행동은 목숨을 건 것이나 마찬가지다. ⓒ뉴시스 AP.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반탈레반 저항군이 아프간 패망 후 처음으로 탈레반을 격퇴했다. 또한 과거 북부동맹의 전설적 지도자 아흐마드 샤 마수드의 아들이 반탈레반 저항군을 모으고 있어 국제사회가 주목하고 있다.

    외신들 “바글란주 일대서 탈레반 축출…북부 3개주에 저항군 거점 마련”

    월스트리트저널(WSJ)과 미국의 소리(VOA) 방송은 21일(이하 현지시간) 아프간 정부군 잔존세력과 민병대로 구성된 반탈레반 저항군이 북부 바글란주에서 탈레반을 공격, 15개 구 가운데 3개를 탈환했다고 전했다. 탈레반 조직원은 15명이 사망하고 15명이 부상을 입었다. 아프간 패망 이후 반탈레반 저항군이 탈레반을 축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매체들은 전했다.

    뉴욕타임스(NYT)는 “바글란주 동쪽 판지시르주에서 ‘아프간 국민저항전선(NRFA·반탈레반 저항군의 공식 명칭)’이 병력을 모으고 있으며, 암룰라 살레 제1부통령을 중심으로 야신 지아 전 아프간 정부군 참모총장 등 정부군 7000여 명이 집결했다”고 전했다.

    AFP통신은 “아프간 패망 이후 판지시르 지역에는 수천 명의 반탈레반 세력이 집결했다”며 “반탈레반 투쟁을 선언한 아흐마드 샤 마수드의 아들 휘하에만 9000명이 모였다”고 전했다. 과거 북부동맹의 유력 군벌로 제1부통령을 지냈던 압둘 라시드 도스툼도 휘하 세력을 이끌고 반탈레반 저항군에 가담할 것으로 알려졌다.

    외신 보도를 종합하면, 현재 잔존 정부군과 과거 북부동맹으로 구성된 반탈레반 저항군은 판지시르·파르완·바글란 등 3개주에 거점을 마련했다. 특히 샤 마수드의 아들과 암룰라 살레 제1부통령의 고향인 판지시르 지역에는 반탈레반 세력이 계속 집결 중이라고 한다.

    반탈레반 저항군의 중심이 된 아흐마드 마수드 “아프간의 자유를 위해 싸울 것”

    외신들은 반탈레반 저항군 가운데 아흐마드 마수드에 관심이 많다. 그의 생각은 최근 미국과 프랑스 언론을 통해 드러났다. 올해 32살인 마수드는 프랑스 언론에 보낸 성명을 통해 “제 아버지는 제게 유산을 남겼다. 그 유산은 아프간의 자유를 위해 싸우는 것”이라며 “그 싸움은 이제 돌이킬 수 없는 나의 것이다. 내 동료들과 나는 피를 흘릴 준비가 돼 있다”면서 탈레반과의 결사항전을 다짐했다. 이어 “우리는 노예 상태를 거부하는 모든 자유 아프간 국민들에게 우리 땅의 마지막 자유지역인 판지시르 요새에 합류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마수드는 이어 “프랑스는 전투에 졌지만 전쟁은 지지 않았다”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드골 장군의 말을 인용하며 “20년 전 소련·탈레반에 맞서 자유를 위해 싸우던 우리를 도와준 프랑스, 유럽, 미국에 바란다”며 “자유여, 다시 한 번 우리를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눈여겨 볼 대목은 아프간 국민들의 반응이다. 암룰라 살레 제1부통령과 야신 지아 전 아프간군 참모총장을 비롯해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부친을 떠올리듯 마수드에게 큰 기대를 걸고 있다.
  • ▲ 부친 아흐마드 샤 마수드(왼쪽 영정사진)의 추모행사를 주재하는 아흐마드 마수드. ⓒ뉴시스 AP.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부친 아흐마드 샤 마수드(왼쪽 영정사진)의 추모행사를 주재하는 아흐마드 마수드. ⓒ뉴시스 AP.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아프간의 국가 영웅, 판지시르의 사자 ‘아흐마드 샤 마수드’

    마수드의 부친 아흐마드 샤 마수드는 2001년 9월 9일 벨기에 방송기자를 사칭한 알카에다 조직원에게 암살당했다. 그 전까지 샤 마수드는 22년 간 소련군·탈레반과의 싸움에서 진 적이 없다고 알려진, 북부동맹의 전설적 지도자였다. 그의 별명은 ‘판지시르의 사자’였다. 판지시르가 ‘다섯 사자’라는 뜻을 가졌다는 점을 생각하면 ‘라이언 킹’이라는 의미였다.

    타지크족 출신인 샤 마수드는 1979년 소련이 아프간을 점령하자 고향인 판지시르에서 무자헤딘을 결성해 반소련 투쟁에 나섰다. 판지시르는 소련군의 주요 보급로였다. 소련군은 샤 마수드의 게릴라 활동으로 보급에 차질을 빚자 그를 없애기 위해 9차례에 걸쳐 대규모 공세를 펼쳤다. 폭격기와 대규모 특수부대(스페츠나츠) 병력까지 동원했다. 하지만 샤 마수드는 소련군의 공세를 모두 물리쳤다. 특히 소련군은 1982년의 5차·6차 공세 때 3만명의 병력과 200여 대의 헬기를 동원했다. 그러나 샤 마수드의 반격으로 3000명의 병력을 잃었다고 한다. 게다가 괴뢰정권 소속 아프간군 1000명이 샤 마수드에게 투항, 무자헤딘이 돼버렸다.

    소련군은 결국 1989년 물러났다. 그러나 괴뢰정권은 남았다. 샤 마수드는 무자헤딘의 다른 군벌들과 연합해 1992년 4월 괴뢰정권을 무너뜨렸다. 이후 그는 군벌들 간의 권력투쟁에 휘말리지 않으려 정치판에서 거리를 뒀다. 하지만 1996년 탈레반이 아프간을 점령했을 때 샤 마수드는 정부 주요요인과 민간인들을 데리고 카불을 탈출했다. 그리고 ‘아프간 구국 이슬람 통일전선’, 일명 ‘북부동맹’을 만든다.

    샤 마수드는 이후 탈레반과의 전투에서 연전연승했다. 2001년이 되자 탈레반은 샤 마수드가 이끄는 북부동맹에 밀려 카불에서 축출되기 직전이었다. 궁지에 몰린 탈레반은 알카에다의 오사마 빈라덴에게 부탁해 샤 마수드를 암살했다. 아프간 국민들은 그의 사망에 크게 슬퍼했다고 한다. 그가 숨진 9월 9일은 이후 아프간의 국가기념일로 정해졌다.

    아프간 국민은 소련군·탈레반과의 싸움에서 진 적이 없다는 점보다도 마수드의 정책과 철학에 큰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스스로 이슬람 근본주의자라고 밝힌 그는 종교적 테러 금지, 전시 민간인 수탈 및 피해 금지, 전쟁포로 학대금지, 이교도에 대한 잔혹행위 금지 등을 강조했고, 휘하 무자헤딘이 철저히 지키도록 했다. 또한 국가발전을 위해 교육, 산업화, 남녀평등, 인권증진 등이 필요하다고 믿고 국제사회와의 교류·협력에도 큰 관심을 보였다. 아프간 국민들은 이런 지도자를 살해한 알카에다와 탈레반을 아직도 싫어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저항군 승리에 당황한 탈레반, 진압병력 보냈지만….

    한편 저항군이 아프간 북부 3개주에 거점을 확보하자 탈레반은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고 AFP통신과 스푸트니크통신 등이 전했다. 통신들에 따르면, 탈레반은 현재 판지시르 지역에 수백여 명의 진압군을 투입했다. 탈레반은 트위터에 “판지시르에 도착한 이슬람 전사들이 공격 명령을 기다리는 중”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탈레반이 저항군을 이길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판지시르를 비롯한 카불 북쪽 지역은 타지크족과 우즈벡족 등의 거점 지역인 반면 탈레반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또한 저항군 대부분이 샤 마수드를 추억하며 그의 아들을 중심으로 뭉치고 있다는 점도 탈레반에게는 불리한 점이다. 아흐마드 마수드는 영국 육군사관학교 지휘관 과정, 영국 킹스칼리지 런던에서 군사학 학사, 런던 시티대학교에서 국제관계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그가 부친의 군사적 역량을 이어 받았는지는 미지수지만 국제사회의 여론이나 관계를 중시한다는 점은 향후 저항군 ‘아프간 국민저항전선(NRFA)’이 얼마나 성장하느냐에는 상당한 영향을 줄 것으로 보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