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째 멈춘 대통령실 '레드팀' 특감검찰 폐지 기조에 내부통제 실종공수처·경찰은 제도적 한계 직면李, 후보·100일에도 특감 임명 강조野 추천 감찰관은 게이트키퍼 예방책
  • ▲ 김현지 제1부속실장이 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자료를 살펴보고 있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 김현지 제1부속실장이 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자료를 살펴보고 있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넵 형님, 제가 훈식이 형이랑 현지 누나에게 추천할게요."

    대통령실 핵심 라인의 사적 인맥이 공적 절차를 우회한다는 비판이 거세지면서 9년째 방치된 특별감찰관(특감) 임명이 정국의 핵으로 떠올랐다. 지난 2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포착된 김남국 대통령실 국민디지털소통비서관의 '인사 청탁' 메시지는 대통령실 내 사적 관계망이 과도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우려를 증폭시켰다.

    여의도 정가에서 회자되던 '만사현통'(모든 일은 김현지 제1부속실장을 통해야 한다)은 단순한 풍자를 넘어 '게이트키퍼 권력화'의 위험 징후로 읽힌다. 윗선의 의중을 먼저 헤아려 움직이는 일본식 '손타쿠'(忖度)를 연상시킨 이번 논란은, 용산의 레드팀 기능이 멈춰 선 상황에서 특감 공백이 '이재명표 거버넌스'의 신뢰를 좌우할 첫 시험대임을 확인시켰다.

    ◆사실상 견제 장치 부재가 반복된 구조적 문제

    6일 정치권에 따르면, 대통령 배우자와 4촌 이내 친인척, 수석비서관급 이상을 감찰하는 특감 자리는 9년째 공석이다. 특감법은 2014년 박근혜 정부 당시 '세월호 참사', '정윤회 문건', '문고리 3인방 논란' 등으로 청와대(대통령실 전신)에 대한 불신이 커지면서 여야 합의로 통과됐다.

    그러나 이석수 초대 특감은 우병우 민정수석에 대한 감찰 내용을 유출했다는 의혹으로 수사 대상이 되자 2016년 사표를 냈다. 이후 제도는 사실상 기능 정지 상태로 들어갔다. 실제 권한을 행사하면 정권과 충돌한다는 트라우마 속에 문재인·윤석열 정부에서도 특감은 부활하지 않았다.

    그 대가는 혹독했다. 문재인 정부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신설 등을 명분으로 특감 임명을 미뤘다. 민주당은 공수처와 특감의 기능이 중복된다는 논리를 폈지만, 그사이 조국 사태,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라임·옵티머스 사태 등 권력형 비리 의혹이 잇따랐다. 위기 때마다 '특감 공백'에 대한 지적이 뼈아프게 제기됐다.

    윤석열 정부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북한인권재단 이사를 야당이 추천해주면 특감도 추천하겠다"며 특검을 더불어민주당이 2016년부터 미뤄온 재단 출범 문제와 정치적으로 연계하는 전술을 폈다.

    당시 대통령실은 검찰·경찰의 독립성이 확보되면 '살아있는 권력' 수사도 가능하므로 특감이 검·경 수사로 대체 가능하다고 주장했지만, 김건희 여사 관련 각종 의혹을 제어하지 못했다. 결국 국정 지지율 하락과 내부 통제력 상실로 이어졌고, 지난해 12·3 비상계엄 선포에 따른 탄핵이라는 파국으로 막을 내렸다.

    ◆'즉시 특감 임명' 촉구하던 李 대통령의 침묵

    대선 후보 시절부터 특감의 중요성을 강조해 온 이재명 대통령도 전임자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 대통령은 야당 대표 시절인 2023년 1월 11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윤석열 당시 대통령은 향해 "대통령실이 슬그머니 공직 감사팀을 신설한다고 하는데, 정작 특감 임명은 아직 감감무소식"이라며 "즉시 특감을 임명해 대통령 본인과 주변부터 엄히 관리하고 단속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취임 30일을 맞은 지난 7월 3일 기자간담회에서도 "권력은 견제하는 것이 맞다. 권력을 가진 본인의 안위를 위해서라도 견제를 받는 게 좋다"며 "그래서 저는 특감 임명을 (대통령실에) 지시해 놨다"고 말했다.

    이어 "불편하긴 하겠지만 저를 포함해 제 가족들, 가까운 사람들이 불행을 당하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이야 한 달 밖에 안 됐으니 비리를 하려고 해도 할 시간도 없었을 텐데 앞으로 혹여라도 그럴 가능성을 미리 예방하고 봉쇄하는 것이 모두를 위해서 좋겠다 싶었다"고 강조했다.

    ◆'검찰청 폐지' 외치는 李 정부, '내부 감시자'는 생존 필수 조건

    이 대통령이 언급한 '불행 예방책'인 특감 임명은 정부의 '검찰청 폐지 및 수사·기소권 완전 분리' 기조 속에서 역설적으로 그 필요성을 극대화한다. 과거 정권에서 대통령 측근 비리를 파헤쳤던 검찰의 사정 기능이 축소되는 상황에서 이를 대체할 견제 장치가 전무하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가 특감의 대안으로 제시한 공수처와 경찰 모두 구조적 한계가 뚜렷하다. 공수처는 정원 147명의 소규모 조직으로 정보 수집 역량이 제한적이며, 수장을 대통령이 임명하는 만큼 정치적 독립성 논란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경찰도 행정안전부의 지휘를 받는 행정부 소속 기관으로, 인사권자인 대통령의 최측근을 내사 단계에서부터 과감하게 파헤치는 데 근본적 제약이 따른다. 결국 사건이 터진 뒤에야 움직이는 공수처·경찰과 달리 대통령실 내부에서 상시적으로 측근들의 동향을 감시하고 '사전 경고'를 보낼 수 있는 기관은 특감뿐이다.

    ◆야당 추천권 보장해 '정치적 중립성' 확보해야

    특감법은 국회가 3명의 후보를 추천하면 대통령이 1명을 지명하도록 규정한다. 전문가들은 여당이 아닌 야당이 추천한 인사를 임명해야 특감의 독립성과 실효성을 담보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미국은 1978년 제정된 '감찰관법'(Inspector General Act)에 따라 각 부처에 독립적인 감찰관(IG)을 두고 있다. 이들은 대통령이 해임하려 하면 의회에 사유를 통보해야 할 만큼 강력한 신분 보장을 받으며, 행정부 비위를 의회에 '직보'한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1기 재임 당시 자신에게 불리한 조사를 하던 감찰관들을 해고하며 무력화를 시도했지만, 제도가 붕괴하지 않은 이유다.

    이에 대해 익명을 요청한 한 정치학 교수는 "한국은 의원내각제 국가들처럼 의회의 상시 견제가 작동하기 어려운 구조지만, 분단 현실을 고려하면 내각제로 전환하기도 어렵다"며 "그렇다면 대통령 권력이 집중되는 현 체제에서 별도의 강력한 감시 장치를 두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제2의 훈식 형', '제2의 현지 누나'를 막을 방법은 사람을 교체하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을 복원하는 것"이라며 "이 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 약속한 특감 임명을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된다. 감시받지 않는 권력은 필연적으로 부패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