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년째 현역' 박석흥 기자, '대한민국 폄훼 세력'과 싸운 100년 역사 전쟁 심층 해부
  • 3.1운동 후 100년, 한국 역사는 국내외 파동과 혼란의 되풀이, 그리고 이를 극복하는 격동의 연속이었다. 

    원조로 지탱했던 '최빈국' 대한민국은 6.25전쟁, 좌우 이념 대립, 빈부 갈등, 국가 기본질서를 흔드는 분열과 반란의 정치 모순을 안고서도 기어이 산업화를 성취해 세계 10대 무역 대국 대열에 합류했다.

    이처럼 경제는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으나 정치와 국민의 역사의식은 여전히 후진성을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

    ■ 대한민국 역사를 '적폐'로 폄훼하는 부정적 인식 팽배

    국권 상실기에 박은식·정인보·신채호 등 민족주의 사학자들은 일제와 투쟁할 저항민족주의를 고취했고, 김철준·홍이섭 등 해방 후 1세대 국사학자들은 일제 식민주의 사관(史觀) 극복에 혼신의 노력을 쏟아부었다.

    그러나 제6공화국 국사학은 일제 식민주의 사관, 중국 동북공정, 분단사관, 민중사관, 유물사관, 수정주의 사관 등을 둘러싼 해묵은 사관 논쟁에 빠져 학문의 대(對)사회적 기능을 망각하고 있다. 

    국사학의 혼돈에 편승해 586 운동권 세력은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역사 전쟁과 체제 전복 전쟁 선동에 앞장서고 있어 대한민국은 혼란스럽다. 

    대한민국 역사를 버려야 할 '적폐(積弊)'로 폄훼하는 부정적 역사 인식이 이 시대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박탈감과 분노만이 쌓이고 있다.

    역사를 해석하는 잣대인 '사관'은 시대와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어도 하나같이 진실에 입각해야 한다. 그러나 제6공화국의 역사 논쟁은 진실 추구 원칙조자 지키지 않고 100여년 전 망국전야(亡國前夜)의 모순을 극복하지 못한 후진성을 드러내고 있다.

    ■ 대한민국, 현재와 미래를 부정하는 '내부의 적'과 전쟁 중

    대한민국 건국(1948년)을 기점으로 이전 30년이 한반도와 한민족의 과거를 폄훼하는 '외부의 적'과의 전쟁이었다면, 이후 70년은 대한민국의 현재와 미래를 부정하는 '내부의 적'과의 전쟁이 지속되고 있다. 1910년 국권을 상실하고 3·1운동이 태동한 무렵 한국 역사학에서 이 전쟁은 '사관' 전쟁의 형태로 전개됐다. 

    외부의 적인 '식민사관'과 내부의 적인 '계급사관', 이 둘은 지난 100년 한국 근대 역사학이 짊어지고 온 무거운 멍에이자 질곡이었다. 그러나 '역사 전쟁: 대한민국 폄훼와 싸운 100년 - 역사학은 무엇을 하였는가(박석흥, 기파랑 刊)'의 저자는 "사관은 사실(史實)을 이기지 못한다"고 단언한다.

    '역사 전쟁'은 발로 쓴 책이다. 저자는 1969년 경향신문에 입사해 학술담당기자를 맡은 이래 문화일보를 거쳐 대한언론에 재직하는 현재까지 53년째 필봉을 휘두르고 있는 현역 언론인이다. 

    그의 기자 초년 시절은 이른바 '해방 후 1세대' 역사학자들인 김철준·손보기·천관우·이기백·고병익 등이 아직 현역으로 활동할 때였고, 박정희 정부가 주도하는 국학진흥사업이 한창일 때였다. 

    실정(失政)으로 점철된 조선 후기와 구한말의 냉혹한 평가를 넘어, 한반도와 한민족의 역사 전체를 '망할 역사'로 매도하는 일제하 식민주의 사관의 잔재가 아직 남아 있는 가운데, 강만길·리영희 등의 계급·민중사관 등 '역사학의 정치화'가 고개를 든 것도 이때다. 

    이후 국내에서는 역사학의 주도권이 해방후 2, 3세대로 차례로 넘어갔고, 국외에서는 브루스 커밍스의 6·25 수정주의와 시바 료타로의 식민지 근대화론이 고개를 들었다.

    그러면서 김영삼 정부의 '역사 바로세우기'로 단추를 잘못 끼운 여파가 역대 정권의 대한민국 폄훼와 거듭되는 국사 교과서 논쟁으로 이어졌다. 

    최근에는 '체제 탄핵'과 '체제 전복' 기도가 가시화했고, '고종 재평가'와 '반일 종족주의' 논쟁 등이 벌어지는 가운데 해방 후 4세대 역사학자들이 전면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 반세기 동안 역사학은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세력들에 맞서 국민의 역사관과 역사의식을 정립하는 임무를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고 저자는 질타한다.

    저자는 최빈국이었던 우리나라가 선진국에 진입한 역사를 특권과 반칙의 역사로 폄훼하고, 대한민국 성장을 도운 국제관계를 제국주의로 비난하거나 대기업을 적폐 청산 대상으로 혹평하는 대중 선동을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저자는 역사인식의 혼란과 파괴는 정치인들의 편견과 선전선동 때문만은 아니라고 말한다. 역사교육과 정치교육의 빈곤으로, 국민의 3분의 1이 체제 전복 전쟁과 역사 전쟁에 동조하고 있다는 사실이 가장 심각한 문제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 과거에 매몰된 역사학엔 미래가 없다

    '역사 전쟁'은 지난 100년 역사 연구의 큰 줄기를, 현장 기자의 시각에서 '사관' 중심으로 훑는다.

    제1부 '해방 전후 한국 역사학'은 '역사학의 역사'다. 식민주의 사관과 역사학계의 세대별 과제를 중심으로 20세기의 역사학 연구를 시대순으로 조감한다.

    제2부 '역사·사관 논쟁'은 논쟁사다. 지역교류사를 포함한 고조선 이래의 고대사, 민족주의·분단사관·민중사관·식민지 근대화론과 반일종족주의 등 사관 전쟁, 건국 이래 4·19, 6·25, 교과서 전쟁, 최근의 건국 시점 논쟁까지의 굵직한 현대사 논쟁들이 망라돼 있다.

    특히 1960년 4월 11일 김주열 군의 시체가 바다에 떠오르면서 제2차 마산 사태가 일어난 다음 날, 국무회의에서 이승만 대통령이 "선거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질문을 세 번이나 했다는 국무회의 기록은 저자가 특종보도한 내용이다. '4·19 전야 국무회의록'과 '이승만 하야의 진실'을 비롯, 저자 자신이 발굴하고 보도한 뉴스가 책 곳곳에 인용되어 읽는 재미를 더한다.

    과거를 다루는 것은 역사학의 숙명이다. 그러나 역사학은 과거를 거울삼아 궁극적으로 미래를 비춰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 '역사학의 사관(史官)'을 자임하는 저자의 사론(史論)이다. 

    책의 마지막 장(제9장 '패러다임 시프트')에서 일본 학계, 한국 사회과학계, 한국 언론인들의 한국사 연구 성과를 살피면서, 인접 및 관련 학문의 방법론과 성과를 역사학이 적극 참고하고 반영할 것을 촉구한다.

    ■ 저자 소개

    저자 박석흥은 1942년 대전에서 태어났다. 대전고등학교,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행정대학원에서 '다산 정약용의 행정개혁론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1969년 경향신문 기자로 입사해 문화부장, 논설위원을 지냈고 이후 문화일보 편집국장대우, 출판국장 겸 편집국 포럼담당국장, 대한언론인회 주필 등을 거치며 53년째 기자 생활을 이어오고 있다. 한국외국어대, 숙명여대, 연세대, 대전대, 가톨릭대, 건양대, 건국대 등에서 가르쳤다. 

    저서로 '건국 60년 한국의 역사학과 역사의식', '한국근현대사 100년의 재인식', '신뢰와 존경 받는 언론', '21세기 선진국에 진입한 한국사회', '한국근현대사의 쟁점 연구' 등이 있다. 현재 대한언론인회 주필, 국채보상기념사업회 이사, 한국전통문화연구회 이사, (사)건국대통령이승만박사기념사업회 지도위원으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