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반도체 패권전 한복판에 분배 청구서 날아와국민배당·성과급 15% 요구에 시장 불확실성 확대황금알보다 다음 10년 투자 여력 지킬 정책이 먼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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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뉴시스
반도체 호황의 온기가 돌자 가장 먼저 날아든 것은 투자계획서가 아니라 '분배 청구서'였다. 삼성전자 노조가 일그러진 '분배의 탐욕'을 거둬들이기도 전에, 이번에는 국가 정책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청와대 정책실장이 '국민 배당금'이라는 해괴한 분배 논리를 꺼내 들었다. 경제 부총리보다 위세 당당한 정책실장이기에 대통령의 뜻이라 넘겨 짚어도 논리 비약은 아닐 것이다. (청와대는 '개인 의견'이라 치부했지만)김용범 실장은 '천재 관료'이자, 정치색에 덜 묻은 '만년 공무원'으로 평가 받았다. 두꺼운 영어 원서 책도 탐독하는 학구적 스타일에다, 시장 친화적 합리성까지 갖췄기에 수많은 관료 후배들은 물론, 시장의 사람들도 그를 따르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이재명 정부의 경제 성과에 가장 많은 공을 세우라면 첫번째는 역시 김 실장일 것이다. 하지만 12일 터져 나온 김 실장의 발언은 두 귀를 의심하게 할 정도로 '반시장적 어법과 문장'의 나열이었다.김 실장이 밝힌 '국민 배당금'이라는 말은 최첨단의 '현금 복지'라 할 것이다.그것도 선거를 한 달도 채 남기지 않고 나왔으니, 국민들로선 고유가 지원금보다 훨씬 반가운 선물이다.그의 말은 외견상은 틀리지 않다. 반도체 회사가 천문학적인 돈을 버는데, 기업 혼자서 한 것이 아니고 국민이 모두 기여했으니 나눠 먹자는 발상에 국민 모두가 박수를 칠 법하다. 전력망과 용수, 도로, 세제 지원, 지역사회 협조, 협력업체 생태계가 없었다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지금의 위치에 오르기 어려웠다. 기업이 세금을 내고, 고용을 늘리고, 협력사와 성과를 나눠야 한다는 원칙도 부정할 수 없다.하지만 한 발만 더 나아가면 이 논리가 얼마나 일그러진 반시장적 발상인지 금세 들통이 난다. 대한민국 기업은 엄연히 자본주의 체제 속에서 경영이 이뤄지고 있다. 그들이 이익을 내면 법인세를 내고, 근로자들은 근로소득세를 낸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기업이 해야 할 최고의 덕목은 경영을 잘 해서 이익을 내는 것이고, 이를 통해 세금을 많이 내는 일이다.이를 통해 쌓인 나라 곳간을 다른 용도로 쓰게 하는 일이 바로 '낙수 효과'다. 법인세를 내고, 남은 현금 유보금으로 수백조 원에 이르는 투자금을 쓰고, 더 키우기 위해 캐시카우를 찾아 인수합병(M&A)에 나서는 것이 기업이 할 일이다. 수 많은 사회 공헌 활동을 하지만, 기업이 하는 최고의 선은 역시 "장사는 잘 하는 일"이다. 이를 제대로 못하는 기업은 망한다. 망하기 직전까지 갔던 핀란드 노키아의 상황을 김 실장은 누구보다 잘 알 것이다. 김 실장의 배당금 구상은 바로 이런 순환의 고리를 끊겠다는 반시장 논리요, 자본주의 이치에 정면으로 거스르는 것임을 본인이 누구보다 잘 알 것이다.김 실장의 '배당금' 발언은 이른바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인정되는 반도체 사업에서, 이런 순환의 고리가 이어지기도 전에 배를 가르자는 생각과 다름 아니다.더욱이 지금의 반도체 산업은 채 성숙되기도 전이다. AI 메모리 수요가 폭발하고 있지만 반도체 초호황은 아직 확정된 승리가 아니다. 삼성전자는 HBM 경쟁력 회복, 파운드리 2나노미터 수율, 첨단 패키징 투자라는 과제를 동시에 안고 있다. SK하이닉스 역시 HBM 주도권을 지키려면 선행 투자를 멈출 수 없다. 중국 추격, 미국의 대중 규제, 빅테크 투자 속도 조절, 전력·용수 인프라 부족까지 변수가 쌓여 있다. 돈을 벌자마자 “누가 얼마나 가져갈 것인가”부터 따질 만큼 한가한 국면이 아니다.12일 오전 그의 발언이 나오기 무섭게 시장이 반응한 까닭이 무엇이겠는가. 코스피는 장중 8000선을 넘보다 급락했고, 외국인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중심으로 매물을 쏟아냈다.김 실장이 증세나 횡재세가 아니라고 강변한다 해도 시장은 이를 기업 이익에 대한 새로운 배분 개입 신호로 받아들일 수 있다. 특히 반도체처럼 조원단위 투자가 수년 앞을 보고 집행되는 산업에서 ‘초과이익 환원’이라는 표현은 어떤 논리를 들이대도 나눠먹기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
- ▲ ⓒ서성진 기자
삼성은 가뜩이나 거위의 배를 가르려는 다른 세력과 싸우고 있다. 삼성전자 노조는 영업이익의 15% 성과급 제도화와 OPI 상한 폐지를 요구하고 있다. 사측은 현행 OPI와 특별보상을 결합한 유연한 보상안을 제시했지만, 노조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성과를 나누자는 요구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문제는 영업이익 일정 비율을 고정해 제도화하자는 방식이다.반도체는 사이클 산업이다. 호황기에는 막대한 이익이 나지만, 불황기에는 감산과 적자를 감내해야 한다. 영업이익의 일정 비율을 성과급으로 먼저 떼어내는 구조가 굳어지면 호황기에는 분배 압력이 커지고, 불황기에는 투자 여력이 약해진다. 기업 입장에서는 미래 공정과 설비, 연구개발에 투입해야 할 현금을 현재 보상 재원으로 미리 묶어둬야 한다. 결국 이 문제는 한 기업의 임금협상이 아니라 산업 경쟁력의 문제로 번진다.지금의 이익도 하늘에서 떨어진 횡재가 아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메모리 불황, 공급 과잉, 중국 추격, 미국의 대중 규제 속에서도 투자를 멈추지 않았다. 삼성전자가 ‘5만전자’로 불리던 시기를 버틴 주주들도 있었다. 위험은 기업과 주주가 감당했고, 그 결과가 AI 메모리 슈퍼사이클과 맞물려 나타나고 있다. 과실이 보이자마자 사회 전체가 배분권을 주장한다면 다음 사이클에서 어느 기업이 과감히 투자하겠는가.물론 반도체 호황의 과실이 협력업체, 지역사회, 청년 일자리로 흘러가야 한다는 문제의식은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은 세금, 투자, 고용, 상생 프로그램, 연구개발 생태계 확대로 풀 문제다. 기업 이익을 정치적 구호로 먼저 나누자는 식의 접근은 산업정책이 아니라 포퓰리즘에 가깝다.황금알을 낳는 거위는 그냥 태어나지 않는다. 먹이를 주고, 병을 막고, 긴 겨울을 견디게 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 정치권과 노조 일각의 논의는 알이 더 나오기도 전에 거위 배를 가르자는 쪽으로 흐르고 있다. 반도체 패권 경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지금 필요한 것은 성급한 분배 경쟁이 아니라 다음 황금알을 낳게 할 투자와 신뢰다.청와대와 노조가 정말 국민과 근로자를 위한다면 지금 던질 질문은 “얼마나 나눌 것인가”가 아니다. “한국 반도체가 다음 10년에도 돈을 벌 수 있도록 무엇을 도울 것인가”여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