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12일 준공식과 함께 '감사의 정원' 공개6.25m 석재 조형물 23개…지하엔 참전용사 이름·증언 전시"생각보다 작다" 반응 속 관광 콘텐츠 기대·존치 우려도 교차
  • ▲ 6·25전쟁 참전용사의 희생을 기리는 '감사의 정원'이 12일 준공식과 함께 시민들에 공개됐다. ⓒ김승환 기자
    ▲ 6·25전쟁 참전용사의 희생을 기리는 '감사의 정원'이 12일 준공식과 함께 시민들에 공개됐다. ⓒ김승환 기자
    #. "특별한 날에만 유공자를 기억하는 게 아니라 평소에도 시민들이 한 번쯤 떠올려줬으면 했습니다. 이제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광화문광장에 이런 공간이 생겼으니 참전용사들을 기억하는 계기가 더 많아지지 않겠습니까."

    6·25 참전유공자 김광수 씨는 12일 광화문광장에 새로 조성된 '감사의 정원'을 본 뒤 이같이 소감을 밝혔다. 그는 시민과 관광객이 매일 오가는 서울의 대표 광장에 참전용사들을 기억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된 데 대해 "그 자체로 의미가 크다"고 했다. 김 씨는 "시민들이 이곳을 지나며 자유와 평화가 그냥 주어진 것이 아니라는 점을 한 번쯤 생각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6·25전쟁 참전용사의 희생을 기리는 '감사의 정원'이 시민들에게 공개됐다. 세종문화회관 측면에 6.25m 높이의 석재 조형물 23개가 광장을 따라 길게 늘어섰다. 조형물 하단에는 저마다 다른 국기가 하나씩 새겨져 있다. 

    가장 북쪽, 대한민국 국기가 새겨진 조형물 옆으로 향하면 지하 공간으로 이어지는 통로가 나온다. 계단을 내려가면 대형 스크린에 빼곡히 참전용사들의 이름이 기록돼 있다.
  • ▲ 감사의 정원 지하 공간 '프리덤 홀' 모습. ⓒ김승환 기자
    ▲ 감사의 정원 지하 공간 '프리덤 홀' 모습. ⓒ김승환 기자
    ◆ 광화문에 세워진 23개 조형물…숫자와 배치에 담긴 의미는?

    감사의 정원 지상부에 설치된 6.25m 높이의 석재 조형물 23개는 대한민국을 포함해 6·25전쟁에 참전한 23개국을 상징한다. 참전 시기에 따라 남측에서 북측 순으로 배치됐다.

    석재 일부에는 실제 각 참전국이 기증한 돌이 활용됐다. 현재 네덜란드, 인도, 그리스, 벨기에, 룩셈부르크, 노르웨이, 독일 등 7개국의 석재가 반영됐고 스웨덴·호주·미국·태국·터키 등 5개국 석재도 올해 말까지 추가로 활용될 예정이다.

    조형물의 모습은 군인이 총을 받들고 선 듯한 형상이다. 광화문광장 안쪽 세종대왕상을 향해 의장대가 사열하듯 배치했다는 게 서울시의 설명이다. 
  • ▲ 광화문광장 감사의 정원 석재 조형물 '감사의 빛 23' 저녁 모습. ⓒ서울시
    ▲ 광화문광장 감사의 정원 석재 조형물 '감사의 빛 23' 저녁 모습. ⓒ서울시
    23개 석재 조형물에는 '감사의 빛 23'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름 속 '빛'의 의미는 밤이 되면 드러난다. 매일 저녁 8시부터 11시까지 조형물에서는 하늘을 향해 빛줄기가 올라간다. 야간 조명이 켜지면 감사의 정원은 엄숙한 분위기와 도심 경관의 성격을 함께 갖게 된다. 시민들이 퇴근길이나 도심 나들이 중 자연스럽게 발걸음을 멈추고 사진을 남길 수 있는 야간 경관 요소로도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지하 공간의 이름은 '프리덤 홀'이다. 광장 위에 늘어선 23개의 조형물이 참전국과 용사들을 상징한다면 지하 전시 공간은 그들의 희생을 통해 지켜낸 자유의 의미를 영상으로 풀어낸 전시 공간이다.

    가장 큰 스크린에는 참전국의 국화를 활용한 영상과 참전용사들의 이름이 표시되고 맞은편 화면에서는 참전용사들의 증언과 인터뷰가 상영된다. 광장 위 23개의 석재 조형물을 지나 지하로 내려가면 숫자로만 보였던 참전국과 참전용사의 이야기가 영상과 이름으로 다시 이어지는 구조다.

    이날 준공식에서 필립 베르투 주한프랑스대사는 축사를 통해 "감사의 정원은 자유를 위해 함께 흘린 피로 맺어진 양국의 글로벌 전략적 동반자 관계가 얼마나 굳건한지를 보여주는 상징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고팔 바글라이 주한인도대사 역시 "감사의 정원이 인도와 대한민국 국민을 하나로 이어주는 연대와 희생의 영원한 상징으로 자리매김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 ▲ 12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감사의 정원 준공식'에서 참석자들이 기념 촬영하고 있다. ⓒ뉴시스
    ▲ 12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감사의 정원 준공식'에서 참석자들이 기념 촬영하고 있다. ⓒ뉴시스
    ◆ "이게 그렇게 문제였나"…정치권 논란과 달랐던 시민 반응

    이날 6·25 참전유공자와 참전국 주한대사들이 참석한 감사의 정원 준공식에는 조성 취지와 별개로 또 다른 관심도 집중됐다. 조성 단계부터 조형물 형태와 광화문광장 내 배치를 두고 정치권 공방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군인이 총을 받들고 선 듯한 조형물이 광화문광장과 어울리느냐는 지적이 제기됐고 광장 한복판에 6.25m 높이의 석재 조형물 23개를 세우는 것이 경관과 시민 동선에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선거 국면과 맞물리면서 감사의 정원은 단순한 공공시설을 넘어 정치권 공방의 소재가 됐다.

    하지만 감사의 정원 조형물을 본 시민들의 반응은 논란의 온도와는 다소 달랐다. 가장 많이 나온 말은 "생각보다 작다"는 것이었다. 

    광화문 인근 회사에 다닌다는 직장인 A씨는 "뉴스로 볼 때는 광장 한복판에 엄청난 구조물이 들어서는 줄 알았다"며 "막상 와서 보니 일반 빌딩 앞에 있는 조형물이나 기념물 여러 개가 함께 있는 정도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이 정도 시설을 두고 정치권과 언론에서 엄청난 문제처럼 다뤘다는 게 오히려 이상하게 느껴졌다"고 했다.

    40대 B씨 역시 "광화문광장 한가운데 만드는 줄 알았더니 측면에 있어서 무심코 지나가면 뭔지도 모를 뻔 했다"며 "6.25m 높이도 인근 세종문화회관 등 대형 건축물 사이에 위치해서인지 상대적으로 왜소해 보인다"고 말했다. 

    다만 크기와 상관 없이 조형물 설치 자체에 의문을 나타내는 시민도 있었다. 광화문광장을 찾은 30대 시민 C씨는 "참전용사를 기리는 취지는 공감하지만 굳이 광화문광장에 이렇게 많은 조형물을 세워야 했는지는 잘 모르겠다"며 "광장은 비워져 있을 때 더 광장답게 느껴지는 공간 아니냐"고 말했다.

    조형물의 '받들어 총' 형상을 두고 "극우 구애용 정치사업"이라는 정치권 비판과 달리 관광 콘텐츠로서의 가능성을 보는 의견도 있었다. 

    이날 관광콘텐츠 촬영을 위해 광화문을 찾았다는 유튜버 '릴리언니'는 "광화문은 외국인 관광객이 많이 찾는 곳이라 각국 국기가 새겨진 조형물 자체가 눈길을 끌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스페인이나 에티오피아처럼 한국에서 자국 국기를 자주 보기 어려운 나라의 관광객이라면 광화문에서 자기 나라 국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반가울 수 있다"며 "국기를 보고 다가왔다가 6·25전쟁 당시 한국과 함께했던 나라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한국에 대한 친근감이나 연대감도 생길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감사의 정원 존치 여부가 정치 쟁점으로 번지는 데 대한 우려도 적지 않았다. 준공식에 참석한 한 참전용사는 "나라를 지킨 사람들을 기억하는 공간은 몇 개를 만들어도 모자랄 판"이라며 "이미 만든 공간까지 없애겠다는 정치인들의 생각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또 다른 참전용사는 각국이 기증한 석재를 언급하며 "취지와 계획을 설명하고 기증받은 석재까지 활용한 공간인데 정권이 바뀌었다고 없애버리면 참전국과의 약속은 어떻게 되는 것이냐"고 했다.

    정치권의 논쟁 속에 출발한 감사의 정원은 이제 광화문광장을 오가는 시민들의 평가를 받게 됐다. 조형물을 둘러싼 정치적 해석을 넘어 이곳이 광화문광장의 새로운 기억 공간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는 시민들의 발걸음이 가를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