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주의 북한, 사유재산 인정 안해… 실익 없는 즉시항고는 북한 눈치보기일 뿐"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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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탈북 국군포로 한모씨와 탈북민지원인권단체 물망초 관계자들이 지난 7월 7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북한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상대 손해배상 소송에서 승소 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정상윤 기자
6.25전쟁 때 포로가 돼 강제 노역한 뒤 탈북한 우리 국민에게 손해배상금을 지급하라는 판결이 나온 뒤에도 배상금 지급이 지연되고 있다. 지급 책임이 있는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경문협, 이사장 임종석)이 법원에 즉시항고를 제기해서다.지난 7월 7일 서울중앙지방법원 김영아 판사는 탈북 국군포로 한모(75)씨와 노모(80)씨 등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과 '국무위원장 김정은'을 피고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측의 손을 들어줬다. 김영아 판사는 "불법행위의 기간·내용과 원고들이 겪었을 고통을 종합하면 위자료 총액은 6억원은 된다"고 판시했다. 그러면서 "북한과 김정은은 배상금 원금과 지연손해금을 포함해 한씨와 노씨에게 각각 4200여만원과 4300여만원을 지급할 것과 이를 가집행할 수 있다"고 선고했다.법원, 배상금 추심 명령… "2017년치 저작권료에서 압류 가능"5일 본지가 입수한 소송 관련 문서에 따르면, 이 판결 후 8월 4일 서울중앙지법은 한씨와 노씨를 채권자로, 북한과 김정은을 채무자로, 경문협을 제3채무자로 하는 '채권압류 및 추심명령'을 내렸다. 압류 대상 채권은 경문협이 북한·김정은에게 지급할 채권으로, 이 채권은 경문협이 2017년 한 해 동안 한국 언론사로부터 징수한 1억9252만6903원 중 배상액인 8500여만원이라고 법원은 결정했다. 경문협이 이 배상액을 북한에 보내서는 안 되며, 원고 측이 이를 추심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경문협 측은 이에 반발해 법원에 이의신청을 제기하며 즉시항고 했다. 본지가 입수한 '채권압류 및 추심명령에 대한 이의 신청’에 따르면 경문협 측 주장의 핵심은 이렇다. 북한에 보내야 할 저작권 사용료는 '북한'의 소유가 아니라 법인과 자연인의 소유란 것이다. 이의신청서는 "채권의 권리자는 조선중앙방송위원회·조선영화수출입사·조선작가동맹 중앙위원회 등 3개의 법인과 17명의 개인 등 저작물의 저작자다"라며 "채권자(원고 측)가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이 보관하고 있는 금원이 북한의 소유라는 막연한 추측으로 압류 및 추심명령을 신청했다"라고 돼 있다.경문협 반발… "저작권료는 개인 재산"이라며 즉시 항고이에 대해 원고 측 소송대리인 구충서 변호사는 6일 본지와 통화에서 "경문협은 '3개의 법인과 17명의 개인’이 아니라 북한의 저작권 사무소와 맺은 협약에 따라 우리 언론으로부터 저작권료를 징수하고 있다"며 "이 금원을 북한의 저작권 사무소가 어떻게 분배하는가의 문제는 본 소송에서 고려할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하지만 북한이 사유재산권을 인정하는지부터 의문이라는 게 법조계의 지적이다. 대한법률구조공단 이사장을 지낸 이헌 변호사는 "사회주의 국가에서 사유재산권이란 게 있을 수 없다"라고 말했다. 서정욱 법무법인 민주 변호사는 "조선중앙방송위원회가 저작권료에 대한 권리를 노동당 허가 없이 독자적으로 주장할 수 있겠나. 결국 북한 눈치보기 논리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는 "북한 헌법상 '전체 인민의 소유'라고 하는 국가소유가 원칙이다. 개인 재산은 없다"라고 잘라 말했다.또 다른 문제는 이 같은 양측의 주장이 타당한지 여부를 떠나, 압류 및 추심명령에 대해 제3채무자가 이같이 즉시항고 하는 것부터 통상의 절차가 아니란 게 법조계의 평가다. 구충서 변호사는 본지 통화에서 "경문협이 압류·추심명령에 따르지 않고 배상금을 원고들에게 주지 않으면 이를 받아낼 수단이 없다"며 "그렇게 되면 별도로 추심금 청구 소송을 밟아야 하며, 경문협이 보관하고 있는 저작권료의 소유자가 누구인지는 그때 가서 따지면 된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굳이 할 필요가 없는 이의신청을 통해 경문협이 추심명령을 지연시키고 있다는 것이다.즉시항고 실익 없는데… "북한 눈치보기일 뿐"이헌 변호사는 '압류액 만큼을 법원에 공탁하면 경문협은 더 이상의 책임을 지지 않는데 굳이 항고해 어떤 실익을 챙기려는지 알 수 없다"며 '그저 북한 눈치보기로밖에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 판결과 무관한 또 다른 변호사 역시 '채권 압류 및 추심명령에 대해 제3채무자가 이의신청(항고)하는 것은 드문 일이다"이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제3채무자인 경문협은 강제집행에 응해도 손해를 볼 일이 전혀 없다. 어차피 누군가에게 지급할 금원을, 법원이 지정한 다른 권리자에게 지급한 것뿐이기 때문이다.일단 경문협 측의 이의 신청에 따라 원고 측 대리인은 답변서를 법원에 제출한 상태다. 답변서는 '압류채권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경문협 측) 주장은 추심명령에 대한 항고사유가 될 수 없다"라고 반복해서 강조하고 있다. 저작권료의 소유자가 누구인지에 대해선 답변서에서 다투고 있지 않다.7일 본지는 '경문협 측이 즉시항고를 제기한 이유'를 듣기 위해 소송 대리인이 속한 법무법인에 연락해 의견을 구했다. 하지만 담당 변호사와 연락이 닿지 않았다.피살 공무원 유족에게도 영향 미칠 듯경문협의 즉시항고에 따라 서울중앙지법은 합의부를 구성해 해당 명령을 다시 심리해야 한다. 지난달 22일 북한군에 의해 피살된 해양수산부 공무원 유족이 우리 법원에 손해배상을 청구할 경우, 배상금의 출처로 경문협이 보관하고 있는 저작권료가 거론된다. 이에 따라 국군포로 강제노역 배상금을 해당 저작권료로 지불하게 될지 여부가 피살 공무원 유족의 대처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