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 터졌는데 국토위 소속 지역구 의원 안 나타나… 이혜훈 "오히려 방해될까 염려"
  • ▲ 이혜훈 바른미래당 의원. ⓒ뉴데일리 DB
    ▲ 이혜훈 바른미래당 의원. ⓒ뉴데일리 DB
    20대 예비신부가 숨진 '서울 잠원동 건물 붕괴사고'와 관련, 지역구 의원인 이혜훈 바른미래당 의원(서울 서초갑)의 행보가 비난을 샀다. 이 의원이 참사 현장과 희생자 장례식장에 일절 모습을 나타내지 않은 데 대한 비판이다. 이 의원 소속 상임위가 사고와 무관하지 않은 국회 국토교통위원회란 점도 함께 도마에 올랐다. 

    사고 당일 같은 지역구의 이정근 더불어민주당 지역위원장은 붕괴 후 5분 만에 현장을 방문했고, 전옥현 자유한국당 당협위원장도 당일 오후 현장을 찾았다. 

    지난 4일 건물 붕괴… 사고 7일까지 반응 안 보여 

    지난 4일 잠원동 신사역 인근 건물이 철거작업 중 돌연 붕괴돼 옆에 있던 차량이 매몰됐다. 차에 타고 있던 20대 여성이 숨지고, 30대 남성은 크게 다쳤다. 특히 두 사람은 결혼식을 앞두고 함께 결혼반지를 찾으러 가던 중 봉변을 당한 것으로 알려지며 주위의 안타까움을 샀다. 사고건물 외벽이 며칠 전부터 휘고 시멘트 조각이 떨어지는 등 붕괴 조짐이 있었다는 주장이 나와 인재(人災) 가능성이 제기된 상태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당일 오후 5시40분쯤 현장에 도착해 구조상황을 점검했다. 조은희 서초구청장 역시 구청에 대책본부를 꾸린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서초갑에서 3선을 지낸 이 의원은 사고 후 7일이 지난 11일 오전까지 의견 발표가 일절 없었다. 이 의원은 주택·토지·건설 등 분야에 관한 국회의 의사결정 기능을 수행하는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간사이기도 하다. 이 의원이 종종 자신의 지역구 행사 참여 소식을 알리는 페이스북에는 현재 서초구 축구대회와 족구대회 등이 올라왔을 뿐이다.  

    이혜훈 측 "현장 가면 쇼로 비칠까 조심스러웠다"

    이혜훈 의원실 관계자는 이날 "사건의 심각성을 알고 있으며, 당일부터 의원께 상황을 보고드렸다"면서도 "이 의원이 세월호 참사 당시 팽목항에서 느꼈던 대로 현장에 있으면 오히려 방해만 되고 불필요할 것이라는 판단이 있었다"고 해명했다. 이 관계자는 "다른 일정 때문에 바빠서 현장에 안 간 건 아니다. 갈 수도 있었지만, 유족들의 슬픔이 있는데 정치인이 현장을 방문해 사진을 찍는 게 '쇼'로 비칠까 조심스러웠다"고 말했다.  

    이 의원도 같은 우려를 표했다. 이 의원은 이날 오후 본지와 통화에서 "오해가 있을 수 있는데, 서초구청장의 잘못이 있어 보이는 사고현장에 가서 언론에 나오면 또 다른 정치적 해석을 불러올 수 있어 자제하려고 했다"고 토로했다. 이 의원은 "사고 후 관련기관에 신속하고 안전한 수습 및 철저한 재발방지대책을 주문했다"며 ‘무관심 논란’을 반박했다. 

    이 의원의 우려가 지나친 것은 아니다. 전옥현 한국당 당협위원장의 경우 실제로 현장을 방문하고도 빈축을 샀다. 전 위원장은 붕괴 현장에 있던 주민들에게 밝은 미소로 인사를 건네며 명함을 나눠주고, 현장을 배경으로 '인증사진'을 찍기도 했다.

    하지만 이 의원실의 주장처럼 정치인들의 사고현장 방문이 ‘쇼’로만 인식되는 건 아니다. 지역주민의 신고를 받고 바로 현장에 출동한 이정근 민주당 지역위원장은 현장지휘부에 가까이 가지 않고 구조상황을 지켜봤다. <더퍼스트미디어> 보도에 따르면 이 위원장은 고인의 명복을 빌고 유가족의 상심에 큰 위로를 보냈으며 부상자들의 쾌유를 기원했다.

    '고성산불' 지역구 이양수 "당연히 현장 가야"

    지역구에서 사고가 날 경우 국회의원들이 현장을 방문하는 게 상례다. 지난 4월4일 강원도 고성산불 당시 속초·고성·양양지역구인 이양수 한국당 의원은 당일 오후 8시 저녁식사 도중 사고 소식을 접하자마자 현장으로 떠났다. 

    이 의원은 이날 본지와 인터뷰에서 "그렇게 큰 재난이 있으면 당연히 현장에 가서 주민들과 함께 힘을 모아 헤쳐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물론 정치인의 사고현장 방문을 자제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민주당의 한 지역구 의원은 이 의원의 처지를 이해한다는 쪽이다. 이 의원은 본지와 통화에서 “사고 직후 굉장히 번잡스러울 때 수습에 바쁜데 정치인이 가서 브리핑받으면 방해가 되는 건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이혜훈 의원이 국토위 소속이란 점에서는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 의원은 “건물이 무너진 원인규명이 중요한데, 그같은 일들은 국토위 업무와 관련이 있을 수밖에 없어 이 의원의 경우 쇼든 아니든 가볼 필요가 있는 게 아니었나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 ▲ 4일 오후 서울 서초구 잠원동 신사역 인근의 한 철거 중인 건물 외벽이 붕괴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인근 차량이 사고 영향으로 넘어진 전신주에 깔려 있다. ⓒ뉴시스
    ▲ 4일 오후 서울 서초구 잠원동 신사역 인근의 한 철거 중인 건물 외벽이 붕괴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인근 차량이 사고 영향으로 넘어진 전신주에 깔려 있다. ⓒ뉴시스
    잠원동 건물의 안전관리 감독 부실의 1차적 책임은 지자체에 있다. 유족 측 법률대리인은 9일 건물주, 감리자, 서초구청 건축과장 등 7명을 과실치사 혐의로 고소했다. 서초구청은 별도의 현장점검 없이 건물주 측이 제출한 잠원동 철거공사 계획을 승인했다. 이 과정에서 감리자의 현장 상주를 조건으로 제시했지만 현장 감리자는 공사현장에 없었다.

    시민단체 "정부·국회, 근본 대책 마련해야"

    논란과 별도로 시민단체들이 국회와 정부에 근본적 안전대책을 요구하고 나서면서 이 의원은 곤혹스러운 모습이다. 안전사회시민연대·노년유니온·신시민운동연합 등 10개 단체는 10일 잠원동 건물 붕괴현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성명을 내고 “2017년 서울시 낙원동 건물 붕괴사고 때 지자체가 재발 방지 대책을 세우겠다고 했지만 다시 참사가 일어났다”며 “핵심은 안전 국가책임제를 도입하는 것이다. 안전에 대한 최종 책임은 국가가 져야 한다”고 규탄했다.

    아울러 △국민안전부 신설 △국민안전 종합대책위 구성 △안전대책 법률 재·개정 △건축 철거 시 안전책임자 현장 배치 등 대책을 세워달라고 촉구했다.
  • ▲ 안전사회시민연대, 노년유니온, 신시민운동연합 등 관계자들이 10일 오전 서울 서초구 잠원동 철거 건물 붕괴 현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회와 정부의 안전법률 제정 및 근본적인 안전대책 요구를 하고 있다. ⓒ뉴시스
    ▲ 안전사회시민연대, 노년유니온, 신시민운동연합 등 관계자들이 10일 오전 서울 서초구 잠원동 철거 건물 붕괴 현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회와 정부의 안전법률 제정 및 근본적인 안전대책 요구를 하고 있다. ⓒ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