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심으로 뭉치고 애국가로 단결…마음에 안들면 처벌하겠다는 그들이 극좌
  • ▲ 22일 경기도 성남 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2.27 전당대회 합동연설회. ⓒ박성원 기자
    ▲ 22일 경기도 성남 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2.27 전당대회 합동연설회. ⓒ박성원 기자
    ‘국민의례가 있겠습니다’라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장내엔 무거운 침묵이 감돌았다. 방금 전까지 옆 자리에 앉은 사람과 의사소통이 어려울 정도로 소란스러웠던 곳에서 옆 기자의 노트북 타자 소리가 또렷하게 들려왔다. 

    국민의례가 끝나는 데 약 10분. 자유한국당 전당대회장 참석자들은 꼿꼿하게 서서 한 곳, 태극기만을 바라보았다. 반주가 흘러나오고, 5천명이 부르는 애국가가 시작됐다.

    22일 경기도 성남 실내체육관에서 열린 2.27. 한국당 전당대회 합동연설회의 현장이다. 이날은 특정 후보의 연설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당원들이 야유와 고성을 쏟아내던 날이다. 언론들이 한국당이 극우화 됐다며 떠들던 날이기도 하다. 

    한국당 당원들은 전국 순회 합동연설회 기간 5.18 유공자 명단을 공개하라고 요구하고,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이 억울하다고 하소연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굴욕적인 평화를 얻기 위해 북한 김정은의 대변자를 자처한 것이 불만스럽다고 말하는 후보들에겐 열광적인 박수가 터졌다. “빨갱이- 종북을 척결하자”고도 외쳤다. 문재인 대통령 복심이었던 김경수 경남도지사가 드루킹 댓글 조작에 가담했다면, 문 대통령도 책임이 있다고 성토했다. “문재인 탄핵”을 외쳤다. 욕설이 섞여 나오는 격렬한 연설회장이 기자들 눈에도 많이 거슬렸을 것이다. 

    그러나 국민의례가 시작되면 북새통이던 대회장은 일시에 고요해진다. 행사 시작 전부터 지지 후보 이름을 목청껏 연호하고 쉴 새 없이 응원도구를 흔들던 사람들이 단숨에 깊은 침묵 속으로 들어가던 그 순간. 자유한국당의 전당대회는 애국심과 당심으로 하나가 됐다.

    자신의 심장을 오른손으로 감싸고 있는 주름 깊은 고령 당원의 눈에 서린 빛을 나는 보았다. 일제 순사 온다는 말에 벌벌 떨던 어린 시절, 북한군이 쳐들어와 6.25 전쟁이 터지자 부모 손을 잡고 피난 가던 날, 독일 광산으로 중동 사막으로 나라와 가족을 위해 밤낮없이 땀 흘리던 청춘, 베트남전에서 가져오던 그 부럽던 미국 물건들, 일제 카세트라디오를 뜯고 듣고 부러워하고 신기해하던 그 시절_.

    군부 정권 물러 앉히고 평화로운 정권교체로 자유민주주의가 꽃을 피우나 했더니. 가짜 뉴스를 스스럼없이 양산하는 언론과, 권력 앞에 국민을 등진 비열한 사법부까지 한국의 자유민주주의는 건국 후 최대의 위기를 맞았다. 

    지난 몇 년 태극기 집회에서 만난 시민들은 볼 때마다 같은 이야기를 했다. '이 추운 날 왜 태극기를 들고 나왔느냐'고 물으면 이렇게 말했다. “이 나라가 어떻게 세워졌는데, 나라 어려울 때 우리가 허리띠 졸라가며 이 나라를 어떻게 지켰는데. 우리 세대야 살면 10년 20년 더 살겠나. 우리 손자 손녀들이 걱정이지.”

    기자는 2016년 겨울에서 2017년 봄까지 태극기 집회와 촛불 집회를 취재를 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태극기를 조롱 섞인 눈으로 봤다. ‘태극기를 든 노인’은 비웃음의 대상이었다. 

    대다수 언론은 태극기 집회 참가자들을 보며 “집회에 나온 사람들이 박사모 (박근혜를사랑하는모임)가 몇 푼 쥐어주고 동원한 사람들이다” “태극기 집회는 곧 사라질 것이다” 라고 말했다.

    대부분의 기자들이 가짜뉴스에 따른 확증편향에 눈이 멀어 ‘마녀사냥’식 보도 경쟁을 벌였다. 가짜 뉴스가 가짜 소문을 만들고 가짜 소문이 다시 가짜 뉴스가 돼 온 나라를 흔들었다. 그렇게 촛불 집회 한 번 안 나간 사람은 왠지 유행에 뒤쳐지는 매국노가 됐고, 마치 광화문에 월드컵 응원 한 번 안 나가본 ‘찌질이’ 취급을 받기 일쑤였다. 태극기 집회에 청년들이 나오면 돌팔매를 맞던 시절이다.

    탄핵 사태 후 28개월이 지났다.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하고 민주당 문재인 대통령을 뽑은지 2년이 다 돼는데 언론의 예상과는 달리 태극기 집회는 여전히 매주 광화문과 서울역 시내를 뒤덮고 있다. 이젠 대한민국 정치 지형을 뒤바꾸는 ‘세력’이 됐다. 

    그리고 이때다 싶었는지, 5.18 유공자 명단을 밝히라는 태극기 세력의 요구가 나오자 여당과 친여당 세력들은 “태극기는 극우”라고 몰아세웠다.

    무엇이 ‘극우’ 인가? 5.18 유공자 명단을 밝히라고 하는 것이 극우인가? 

    의사소통과 표현의 자유를 사회적 위협과 공포로 누르고, 자신들이 주장하는 하나의 가치만을 강요하는 것이 전체주의요 극우 아닌가. 한 여당 의원은 '문재인 정부를 지지하지 않는 젊은 층은 전 정부에서 교육을 잘못받아서 그렇다'고 비난하며, 우리가 곧 선이요 진리임을 확신했다. 이야말로 전체주의적이고 극우적인 발언이다. 

    급기야 '5.18 훼손 처벌법'까지 추진

    여당은 급기야 5.18 명예훼손을 하면 처벌하자는 법까지 발의했다. 정치적 자유가 있다며 국가보안법 폐지 주장을 하고 나왔던 이들의 이중적 잣대에 기가 찰 뿐이다. 앞으로는 6.25, 독립운동, 천안함, 연평도 해전 등을 모욕하면 감옥에 가야 한다는 법도 발의해야 할까? 정말 묻고 싶다. 묻고 싶다. 어느 쪽이 극우인가?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태극기를 들고나와 애국가를 목청껏 부르는 이들이 그토록 보기 싫었던 걸까. 

    그렇게 싸우다가도 애국가로 하나된 자유한국당 전당대회장을 보며 반년 가까이 촛불집회를 취재했지만 그 곳에선 애국가를 들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친북인사들이 만든 ‘임을 위한 행진곡’은 숱하게 들어봤지만. 그들의 님은 누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