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 김가 세습 신정(神政) 체제의 경전(經典)이 풀이하는 3.1 운동과, 그 동안 우리 한국의 좌-우가 풀이하는 3.1 운동은 영 다르다는 걸 우선 알아야 한다. 이게 그렇게 다른데도 불구하고 현 운동권 집권 측이 북을 향해 “3.1운동 100주년을 한께 경축하자” 어쩌고 한 것부터가 뭘 몰라도 한 참 모른 코미디였다.
북은 3.1운동 자체를 높이 평가하지 않고 의도적으로 격하시켜왔다. 3.1 운동은 이른바 ‘부르주아 민족주의’ 명망가들의 한심한 비(非)혁명적 움직임이었다는 것이다. 오직 프롤레타리아 계급이 주도하는 반제(反帝)-반봉건(反封建) 민족해방-계급해방의 혁명적 세계관에 따른 무장투쟁-폭력투쟁만이 올바른 노선이라는 이야기다.
이 교설(敎說)에 따르면 민족대표 33인이 태화관에 모여앉아 독립선언서를 발표하고 일제 경찰에 연행당한 방식은 진정한 혁명투쟁이 못 된다는 것이다. 이게 바로 ‘부르주아 민족주의자’들의 한계라는 것이다.
이래서 한국의 좌파 역사학계는 33인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에 호응해서 전국적으로 일어난 노동자 농민 하층민들의 후속적인 궐기가 더 중요하다는 주장들을 내세웠다. 이래서 남쪽의 좌파들도 3. 1 운동보다는 그 이후에 만주에서 있었던 일련의 무장투쟁 쪽으로 관심의 초점을 옮겨갔다. 그러면서 33인 중 일제 때 훼절한 일부를 격하시키기도 했다. 김원봉 같은 인물을 갑자기 전면에 등장시킨 것도 그런 관점변화의 한 장면이었다.
그러다가 남쪽 좌파들은 3.1 운동의 새로운 효용성을 발견하게 되었다. 1948년 8월 15일에 세운 대한민국의 정통성-정당성을 허물기 위해서는 1919년에 세운 김구 등의 상해임시정부의 정통성-정당성을 일부러라도 한껏 추켜세우는 게 한 가지 썩 좋은 꼼수라는 데 착안한 것이다.
이래서 문재인 정부는 북한과 더불어 하는 ‘우리민족끼리’도 새삼 드높일 겸, 1948년의 대한민국도 물 먹일 겸 해서 북에 3.1운동 100주년을 함께 경축하자는 꾀를 낸 것이다. 그러나 이 꾀는 북한의 거부로 무산되었다. 쌤통이다.
북은 반세기 동안 주민들의 뇌리에 주입해 온 “3.1 운동은 웃기는 장난이고 오직 김일성의 무장투쟁민이 유일한 민족해방의 길이었다”는 신화를 도저히 허무를 수가 없었던 것이다. 평양도 상해임정으로 1948년의 대한민국을 물 먹이는 아이디어는 나쁠 게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그건 남쪽 안에서만 해야지, 북을 끌어들이는 것은 곤란하다고 여겼을 것이다.
북의 김정은 입장에서는 독립운동사와 관련해 허리를 90도로 굽혀 절을 할 대상은 김일성 김정일뿐이지, 다른 어떤 대상을 향해 그러는 건 ‘고사포로 콩가루 만들’ 역적행위가 될 것이다.
이걸 모르고 북에 뭐, 3. 1운동 100주년을 함께 경축하자고? 무식한 친구들, 북한을 모르는 남한 좌파, 이래서 북노당 마음속에선 적화통일 되면 모조리 폐기처분 할 대상일 것이다.
류근일 /전 조선일보 주필/ 2019/2/23
류근일의 탐미주의 클럽(cafe.daum.net/aestheticismclu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