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국 이용해 새로운 방식으로 제재 회피… 위장업체 만들어 中 ZTE와도 거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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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독자대북제재를 위반한 기업들을 수사했던 美연방수사국(FBI) 특수요원이 “북한의 제재 회피 방법이 창의적”이라고 평가했다. 범죄를 저지르는 데는 머리를 잘 쓴다는 말이었다. ‘미국의 소리(VOA)’ 방송은 30일 대북제재 위반기업 수사를 지휘했던 마이클 드리온 FBI 특수요원의 이야기를 소개했다. 마이클 드리온 FBI 특수요원은 애리조나 피닉스 지부장이라고 한다.
- ▲ 지난 8월 경북 포항시 북항에 북한산 석탄을 내려놓은 '진룽' 호의 모습. 이런 대북제재 위반은 보통 위장업체를 통해 이뤄진다고 한다.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드리온 요원은 “북한이 창의적인 방식으로 국제사회의 제재를 피하려고 노력 중”이라면서 “FBI는 이번 수사가 북한과 달러로 거래하는 해외기업들에게 경종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가 ‘창의적’이라고 칭찬하듯 비꼰 부분은 위장업체 사용법이었다.
과거 국제 돈세탁이나 제재 위반 시에는 제재 대상세력이 주로 위장업체를 만들었는데, 북한이 제재를 회피할 때는 북한 측의 의뢰를 받은 제3국 기업과 이들에게 물품 또는 서비스를 공급하는 업체가 각각 위장업체를 만들어 거래를 했다고 한다.
‘미국의 소리’ 방송에 따르면, 美법무부가 2017년 자산몰수 소송을 제기했던 ‘단둥 즈청금속회사’의 오너 ‘치유펑’은 직접 위장업체를 만든 뒤 북한산 석탄을 불법 수입하는가 하면, 중국 초대형 IT기업 ZTE와 자금거래를 했다고 한다. 美상무부 조사에 따르면, 中ZTE는 이와 별개로 북한국영기업 ‘조선체신회사’와 거래를 했는데, 당시 ZTE는 최소한 4개의 위장업체를 만들어 북한과 거래를 했고, 이때 ‘치유펑’이 만든 위장업체가 북한 대신 ZTE의 위장업체에게 1590만 달러(한화 약 178억 4000만 원)를 지불했다고 한다.
즉 실제로는 북한 당국과 ZTE가 거래를 한 것이지만, 물품과 대금은 북한을 대리하는 업체와 ZTE가 만든 위장업체를 통해 오고 갔다는 설명이다. 북한과 중국 기업들은 이렇게 거래 규모를 분산시키고, 거래 경로를 복잡하게 만들어 국제사회의 감시망을 피하려 했다는 것이다.대북제재 위반 기업들, 북한에게 수수료 20% 이상 받아 -
- ▲ 美정부에 따르면, 위장업체를 만들어 북한 당국과 거래한 기업 가운데는 중국의 대형 IT기업 ZTE도 들어 있다고 한다.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미국의 소리’ 방송은 “2016년 북한과 5억 달러(한화 약 5600억 원)을 거래한 혐의로 美법무부에 피소됐던 中단둥 훙샹그룹 사례에서도 이런 위장업체를 통한 거래 사례가 대거 발견됐다”고 설명했다. 中단둥 훙샹그룹은 최소한 22개의 위장업체를 만들어 북한 ‘조선광성은행’과 달러 거래를 했다고 한다. 이때 사용한 위장업체 소재지는 영국령 버진 아일랜드, 셰이셸 공화국 또는 홍콩이었으며, 회사 이름도 ‘뷰티 챈스’ ‘나이스 필드 인터내셔널’ 등을 사용해 북한과의 연관성을 숨기려 했다는 것이다.
‘미국의 소리’ 방송은 “대북제재 회피에서 위장업체가 등장하는 점은 유엔 안보리도 지적하는 문제”라고 설명했다. 2016년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위원회 전문가 패널들은 보고서를 통해 “북한이 계속 국제금융거래망에 접근할 권한을 얻어 악용 중”이라며 “자금 거래, 무역 등에서 북한의 불법 활동을 지원할 수 있는 외국인 대리인 뿐만 아니라 위장업체들을 이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이 과정은 해외 주재 북한 외교관들이 주도했다고 주장했다.
북한의 ‘잔머리’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외국 업체들이 북한을 위해 일하도록, 거치는 곳마다 수수료를 지급했다고 한다. 북한이 처음 송금한 대금이 위장업체를 거칠 때마다 조금씩 줄어드는 모습에서 이를 파악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북한을 위해 제재를 회피하는 외국 업체들은 적지 않은 수수료를 챙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참고로 북한이 中단둥 훙샹그룹에게 요소 비료를 사들일 때 대금은 톤당 405달러였지만, 단둥 훙샹그룹이 싱가포르 업체로부터 비료를 살 때는 톤당 320달러만 지불했다고 한다. 즉 북한이 쓰는 돈은 늘어났지만 어쨌든 제재 회피에는 성공하고 있다는 지적이었다.
이처럼 북한은 제재를 받지 않을 때와 비교해 최소 20% 이상의 비용을 들여가며 물품을 수입하고 있지만, 이는 대북제재가 미국 등이 생각하는 것만큼 치밀하지 않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