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무위원 시절 좌파와 싸운 기독교인 총리 '닮은 꼴'… 선거 3등으로 포텐셜 소진 우려
  • ▲ 황교안 전 국무총리가 김영삼 전 대통령의 빈소를 방문해 조의를 표하고 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1995년 지방선거에서 초대 민선 서울시장의 집권여당 후보로 정원식 전 국무총리를 내세웠으나 3등을 하면서 완패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황교안 전 국무총리가 김영삼 전 대통령의 빈소를 방문해 조의를 표하고 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1995년 지방선거에서 초대 민선 서울시장의 집권여당 후보로 정원식 전 국무총리를 내세웠으나 3등을 하면서 완패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6·13 지방선거의 시·도지사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되는 등 본격적으로 선거 분위기가 무르익으면서, 자유한국당 서울특별시장 후보에 다시금 시선이 쏠리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박원순 시장과 전현희·우상호·민병두·박영선 의원 등 현역 의원들이 어우러져 경선 분위기가 후끈 달아오르고 있고, 바른미래당에서도 안철수 전 대표 차출론이 본격화되고 있는 반면 한국당은 선수(選手)가 분명치 않은 가운데 각종 여론조사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황교안 전 국무총리도 정중동(靜中動)하고 있어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22일 정치권에 따르면, 한국당은 아직도 서울시장 후보를 찾지 못해 고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홍문표 사무총장은 이날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3월 10일 이후로 중순쯤 되면 우리가 모실만한 분이 두세 분 있다"며 "그분들이 3월 중순쯤은 돼야 말씀을 하실 것 같다"고 설명했다.

    단, 이 후보군 중에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서 범(汎)보수 후보로 선두 그룹을 형성하고 있는 황교안 전 총리는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홍준표 대표도 지난해 "서울시장 후보로 황교안 전 총리는 절대 아니다"라고 일찌감치 선을 그은 바 있다.

    황교안 전 총리 본인 또한 여론조사 결과에 고무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치행보로 비쳐질 수 있는 움직임을 일절 삼간 채 정중동하고 있다.

    제1야당의 서울시장 후보로 나선다는 것만 해도 정치적 체급이 일정 수준 이상으로 인정되는 것은 물론 전국적인 인지도 상승의 효과까지 있는데, 황교안 전 총리는 왜 안 나서는 걸까.

    이와 관련, 정무에 밝은 한 중진의원은 "한국당이 서울시장 선거에서 3등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라며 "황교안 전 총리가 정원식 전 총리의 길을 따라밟는 것을 경계하는 것 같다"고 귀띔했다.

    지난 1995년 지방선거에서 민주자유당(민자당) 후보로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했던 정원식 전 총리와 황교안 전 총리는 여러모로 공통점이 많다.

    제23대 국무총리를 지낸 정원식 전 총리는 국무위원(문교부장관) 시절, 좌파 성향으로 분류할 수 있는 단체(전국교직원노동조합)를 불법단체로 규정하고 이를 해산하기 위해 강경하게 맞섰다. 이후 총리를 지냈다. 한국외국어대를 방문했다가 달걀 세례와 함께 주먹질과 발길질을 당하는 등 좌파 단체의 시위로 곤욕을 치렀다. 교회 장로를 맡는 등 독실한 기독교인이다.

    제44대 국무총리를 지낸 황교안 전 총리는 국무위원(법무부장관) 시절, 좌파 성향으로 분류할 수 있는 정당(통합진보당)을 위헌정당으로 규정하고 이를 해산하기 위해 강경하게 맞섰다. 이후 총리를 지냈다. 경북 성주를 방문했다가 달걀 세례와 함께 시위대에 4시간 동안 포위당하는 등 좌파 단체의 시위로 곤욕을 치렀다. 교회 전도사를 맡는 등 독실한 기독교인이다.

    이처럼 공통점이 많은 두 사람이기 때문에, 황교안 전 총리가 본격적으로 정치에 입문하는 과정에서 정원식 전 총리의 사례를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아 경계하고 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전교조에 강경히 맞섰던 정원식 전 총리는 1995년 지방선거에서 집권 민자당의 후보로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했다. 당시 민주당은 조순 전 한국은행 총재를 내세웠으며, 제3세력 격인 무소속으로는 1992년 대선에서 돌풍을 일으켰던 박찬종 전 의원이 나섰다.

    정원식 전 총리는 국무총리까지 지낸 나름 거물급 인사였지만, 첫 선출직 도전에서 선거운동기간 내내 조순 후보와 박찬종 후보에게 끌려다니며 양강 구도를 허용한 끝에, 집권여당 후보로서는 충격적이게도 3등으로 선거 레이스를 끝마쳤다.

  • ▲ 정원식 전 국무총리(사진)는 국무위원 시절 좌파 성향 단체와 맞서싸우고 총리 때 운동권의 시위로 곤욕을 치른 인물로,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했으나 3등에 그치면서 정치적 잠재력을 소진했다. 교회 장로를 맡는 등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알려졌다. ⓒ뉴시스 사진DB
    ▲ 정원식 전 국무총리(사진)는 국무위원 시절 좌파 성향 단체와 맞서싸우고 총리 때 운동권의 시위로 곤욕을 치른 인물로,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했으나 3등에 그치면서 정치적 잠재력을 소진했다. 교회 장로를 맡는 등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알려졌다. ⓒ뉴시스 사진DB

    민주당 조순 후보가 42.4%, 무소속 박찬종 후보가 33.5%를 득표한 반면, 정원식 전 총리는 고작 20.7%를 득표하는데 그쳤다. 이 때, 큰 격차의 3등으로 완패하면서 정원식 전 총리는 정치적 잠재력을 일거에 소진하고, 그 이후로는 다시 정치 무대에 나서지 못했다.

    정원식 전 총리의 유일한 역할은 서울시장 선거에서의 3등으로 민자당에 충격을 안기면서, 이듬해의 대규모 정계개편을 촉발했다는 것뿐이었다.

    구체적으로 민자당이 신한국당으로 탈바꿈하면서, 직전해 선거에서 정원식 전 총리를 3등으로 밀어내며 2등을 했던 박찬종 전 의원이 신한국당에 입당했다. 이 때 이회창 전 총리 등도 함께 신한국당에 들어와 대권주자군을 형성했다. 지금의 한국당 홍준표 대표가 신한국당을 통해 정계에 입문한 것도 이 무렵이었다.

    지금 서울시장 선거에서 민주당이 강세를 보이고 있고, 지난 대선에서 나름 수백만 표를 득표했던 바른미래당 안철수 전 대표도 제3후보로서 서울시장 선거에 출사표를 던지려는 판국이다. 민주당 후보였던 조순 전 총재와 직전 대선의 대권주자로 제3세력이었던 박찬종 전 의원이 각축전을 벌였던 때와 상황이 너무나도 흡사하다.

    정원식 전 총리처럼 선거 경험은 처음인 황교안 전 총리가 한국당 후보로 서울시장 선거에 끼어들었다가는 자칫 3등으로 밀려나지 말란 법이 없다.

    한 중진의원은 "당선이 될 수 있다거나 양강 구도를 형성한 끝에 근소한 차이로 2등으로 석패한다고 하면 확실히 서울시장 후보로 나가는 것만으로도 이득이 된다"면서도 "제1야당 후보로 나갔다가 3등으로 밀려나버리면 치명상을 입고 정치를 시작해보기도 전에 끝나버릴 수가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서울시장 선거에서 2등했던 박찬종 의원이 그 다음해에 신한국당에 들어왔던 것처럼, 만약 안철수 대표가 이번에 2등을 하게 되면 복잡한 정계개편이 일어날 수 있다"며 "정계개편의 촉매제 역할만 하고 불살라져버리는 상황을 경계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본인 스스로 경계하고 있는 것 뿐만 아니라, 한국당 내부에서도 황교안 전 총리의 정치적 잠재력을 아깝게 여기는 몇몇 인사들이 출사 시기를 신중히 정할 것을 조언한 것으로 알려졌다.

    황교안 전 총리와 함께 내각에 있었던 한 한국당 의원실의 관계자는 "운동권 학생들로부터 달걀을 맞는 수모를 겪었던 정원식 총리가 95년이 아니라 (한총련의 연세대 사태가 일어났던) 96년 이후에 정계에 진출했더라면 또 상황이 달라졌을 것"이라며 "현 정권의 좌파 폭주 위험성이 국민들에게 좀 더 널리 알려진 뒤에 황교안 총리가 정계에 나서는 게 유리하다"고 바라봤다.

    그러면서 "황교안 전 총리가 지방선거 이후에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으면서 내년초 전당대회까지 당을 이끌다가, 4월에 재보선을 통해 국회에 들어오는 편이 좋다고 보는 의원들이 한국당에 꽤 있다"며 "아마 여러 경로를 통해 이러한 뜻이 전달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황교안 전 총리는 정치 행보는 삼가면서도 자유대한민국 수호와 범자유진영의 화합·소통을 기치로 오는 삼일절을 앞두고 28일 개최되는 국가비상시국대표회의에는 함께 할 것으로 알려져,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황교안 전 총리는 의원회관 대강당에서 열릴 이 행사에서 박관용·정의화 전 국회의장, 노재봉 전 총리와 함께 초청인 명부에 이름을 올렸다.

    역시 이 행사에 함께 할 것으로 알려진 한국당 중진의원실의 한 관계자는 "이 행사는 특정 정당의 행사라거나 본격적인 정치 행사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범보수우파 진영의 단결과 단합을 의도한 행사이기 때문에 황교안 전 총리가 초청인으로 이름을 올린 것은 의미가 있다"며 "멀리 보고 큰그림을 그리는 것 아니겠느냐"고 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