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석 "野 탄핵발의하면 책임있게 논의"… '조기 대선' 어른거려 개헌 생각 잊었나
  • ▲ 야권의 이른바 대권주자들이 20일 의원회관에 모여 오찬 회동을 가졌다. 이날 오찬 회동에 앞선 공개 모두발언에서는 국민의당 천정배 전 대표(사진 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내각분권형 개헌 논의의 필요성을 언급했는데도, 정작 최종 합의문에는 개헌 관련 언급이 빠져 의아함을 낳고 있다. ⓒ뉴시스 사진DB
    ▲ 야권의 이른바 대권주자들이 20일 의원회관에 모여 오찬 회동을 가졌다. 이날 오찬 회동에 앞선 공개 모두발언에서는 국민의당 천정배 전 대표(사진 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내각분권형 개헌 논의의 필요성을 언급했는데도, 정작 최종 합의문에는 개헌 관련 언급이 빠져 의아함을 낳고 있다. ⓒ뉴시스 사진DB

    "(박근혜 대통령이) 상당 부분 공모 관계에 있다"는 검찰 발표가 조급증을 부추겼던 것일까. 야권 대권주자들의 오찬 회동에서 권력 이양이라는 '잿밥'에만 합의가 이뤄졌을 뿐, 이번 사태의 근본 원인을 제거하는 개헌이라는 '염불'에 대해서는 합의가 이뤄지지 못했다.

    오찬 회동에 앞선 공개 모두발언 때에는 개헌에 관한 언급이 있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탄핵 정국'과 '조기 대선'이 가시화됨에 따라 '대통령병'이 중증으로 치닫게 된 일부 세력이 개헌 논의에 어깃장을 놓고 나선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이재명 성남시장·박원순 서울특별시장·김부겸 의원·안희정 충남도지사와 국민의당 안철수·천정배 전 공동대표, 정의당 심상정 의원 등 8인은 20일 정오 의원회관에서 '비상시국 정치회의'라는 명칭 하에 오찬 회동을 열었다.

    비공개 회동에 앞서 일부 참석자는 모두발언에서 공개적으로 개헌을 거론했다.

    국민의당 천정배 전 대표는 "대통령을 바꾸는데 그쳐서는 안 되고, 대한민국의 새 틀을 짜야 한다"며 "내각분권형 개헌을 논의하고 추진해나가자"고 제안했다.

    민주당 김부겸 의원과 안희정 지사도 우회적으로 개헌론의 필요성을 시사했다. 김부겸 의원은 "국정수습 방안으로 책임총리를 내고, 책임총리가 수습한 다음 대한민국의 나아갈 길에 대해 밝혀줬으면 한다"고 했고, 안희정 지사도 "국민들은 좀 더 안정적으로 국정 혼란이 메워지고 성숙한 국가로 나아갈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반면 각종 여론조사에서 야권의 대권주자 중 가장 지지율이 높은 것으로 나타나는 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는 개헌 등 미래 비전에 관해서는 전혀 언급 없이 박근혜 대통령의 즉각적인 퇴진 결단만을 압박하고 나섰다.

    문재인 전 대표는 "오늘 검찰 발표를 보면 박근혜 대통령은 현직 대통령의 특권으로 형사소추를 당하지 않는 것일 뿐 구속될 만한 충분한 사유가 확인됐다"며 "대통령은 스스로 결단해서 먼저 퇴진을 선언하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나아가 "지금이라도 대통령이 결단을 내려준다면 명예롭게 퇴진할 수 있도록 협력하겠다"며 "퇴진한 뒤에도 대통령의 명예가 지켜질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하겠다"고까지 했다. 마치 이미 차기 대통령의 신분으로 사면권 행사를 시사하는 듯한 발언이라는 지적이다.

    이처럼 8인 회동의 공개 모두발언에서 일부 참석자가 개헌을 직접적으로, 또는 우회적으로 언급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회동 뒤 발표된 합의문에는 개헌에 관한 언급이 전혀 없었다.

    두 시간에 가까운 회동 뒤에 이들 8인은 공동 명의로 8개 항의 합의사항을 발표했다.

  • ▲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가 20일 국회에서 긴급기자간담회를 열어 야당이 탄핵안을 발의한다면 책임있는 논의에 응하겠다는 뜻을 밝히고 있다. ⓒ뉴시스 사진DB
    ▲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가 20일 국회에서 긴급기자간담회를 열어 야당이 탄핵안을 발의한다면 책임있는 논의에 응하겠다는 뜻을 밝히고 있다. ⓒ뉴시스 사진DB

    합의사항의 주된 내용은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 △대통령은 국정운영에서 손을 뗄 것 △대통령 탄핵 추진 △국회 주도로 총리를 선출하고 과도내각을 구성 등이다. 그 외 '정의로운 국가 건설' 등 추상적인 미사여구가 덧붙여졌으나, '대통령을 끌어내리겠다'는 것 외에 구체적인 의미를 가지는 합의는 없었다는 분석이다.

    모두발언에서 개헌에 관한 언급이 있었는데도 최종 합의문에서 빠졌다는 점에서, 비공개 회동 중에 특정 대권주자가 이를 합의문에 넣는 것을 강하게 반대하지 않았겠느냐는 추론이 제기된다.

    이날 오전에 있었던 검찰의 중간수사 결과발표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직권남용·강요·사기(미수)·공무상비밀누설 등으로 기소된 최순실·안종범·정호성 등과 "상당 부분 공모 관계에 있다는 판단"이라는 언급이 있었다.

    헌법 제65조에 따른 국회의 탄핵소추권 발동 분위기가 무르익은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이대로 탄핵되거나 혹은 그 전에 자진 하야로 이끌어낸다면, 헌법 제68조 2항에 따라 60일 내에 대통령 선거를 치러야 한다.

    정치권 관계자는 "오늘 검찰 발표로 '조기 대선'은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로 성큼 다가왔는데, 이미 반쯤 대통령된 것처럼 분위기에 젖어 있는 사람이 있다"며 "중증 '대통령병 환자'가 분권형 개헌이 공론화되는 것을 좋아하겠느냐"고 분석했다.

    손학규 전 대표가 이날 회동에 초청받았는데도 불참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지난달 20일 국회에서 정계복귀를 선언할 당시, 손학규 전 대표는 "87년 헌법으로 만든 6공화국 체제에서는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더 이상 나라를 끌고 갈 수가 없다"며 "명운이 다한 6공화국 대통령이 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고 단언했다. 아울러 "내가 무엇이 되겠다는, 대통령이 되겠다는 생각도 없다"며 "이제 7공화국을 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7공화국을 위한 개헌'을 강조하는 손학규 전 대표의 입장에서는, 중증의 '대통령병 환자'들끼리 모여 개헌은 안중에도 없이 '현재 권력'을 조속히 끌어내릴 궁리만 하는 모임에 자리할 이유가 전혀 없다는 지적이다.

    이처럼 야권의 핵심 대권주자가 개헌을 제쳐놓고 퇴진 촉구와 탄핵 추진 등 탈권(奪權) 운동에만 골몰함에 따라,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을 추진하되 개헌 논의와 함께 '투 트랙'으로 논의가 이뤄지기를 원하는 새누리당 내의 비박계와는 엇박자가 날 것으로 전망된다.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는 이날 야권 대권주자들의 오찬 회동 합의가 발표된 직후 국회에서 긴급 기자간담회를 열어 "야당이 대통령 탄핵을 요구하면 헌법에 규정된 만큼 책임 있는 논의에 응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8명의 야권 대권주자가 합의한 국회추천 총리 문제도 적극적인 논의가 있어야 한다"며 "질서있는 국정 수습을 위한 국회의장·원내대표 협의체가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구성돼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