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소추는 해임건의와 달리 법적 책임 추궁… 위법사유 없이 발동할 일 아냐
  • ▲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의원.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의원.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3개월 전에 치러졌던 더불어민주당의 8·27 전당대회에서 개인적으로 송영길 의원(4선·인천 계양을)이 당대표로 선출되는 것도 괜찮겠다고 여겼다.

    민주당은 호남을 핵심 지지 기반으로 하는 정당이니만큼 호남 출신인 송영길 의원이 당대표가 되면, 호남에서의 반문(反文) 정서를 십분 반영해 당내에 만연한 패권주의를 척결까지는 못하더라도 일정 부분 억제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송영길 의원은 21일 의원총회에서 황교안 국무총리의 대통령 권한대행을 막기 위해 박근혜 대통령과 황교안 총리의 '동시 탄핵'을 주장했다고 한다.

    과연 집단지성은 현명하구나 싶다.

    민주당원들은 4선 의원에 인천광역시장까지 지낸 송영길 의원이 제1야당의 당대표를 할만한 역량을 아직 갖추지 못했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것 같다.

    헌법 제65조가 규정한 국회의 탄핵소추권이란 대통령·국무총리·국무위원 등이 직무집행에 있어서 헌법이나 법률에 위배한 때, 그 권한의 행사를 정지하고 공직으로부터 파면시키기 위한 제도다. 국회가 발동하기 위해서는 소추대상자가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사실이 있어야 한다.

    이 점에서 헌법 제63조가 규정한 국무총리·국무위원 해임건의권과는 다르다. 헌법 제63조 1항은 '국회는 국무총리 또는 국무위원의 해임을 대통령에게 건의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발동 요건이 명문으로 달리 규정돼 있지 않다.

    따라서 국무총리·국무위원 해임건의권은 입법부가 행정각료의 정책 추진 등에 있어서의 정치적 책임을 추궁하는 제도로 볼 수 있는 반면 탄핵소추권은 철저하게 법적 책임을 묻는 제도로 볼 수 있다.

    송영길 의원은 이날 의총에서 "황교안 총리야말로 부역 세력의 핵심으로 탄핵해야 한다"며 "황교안 총리와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이 동시에 의결되면 둘 다 권한정지가 되고, 유일호 경제부총리가 대통령권한대행을 맡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부역 세력의 핵심'이란 도대체 어떤 근거에서 나온 말인가. 박근혜 대통령은 전날 검찰이 33p에 달하는 공소장을 통해 최순실·안종범·정호성을 기소하는 과정에서 수 차례 그 이름이 언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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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의원.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검찰의 표현대로 직권남용·강요·공무상비밀누설 혐의 등에 있어 "상당 부분 공모 관계"에 있다고 볼 여지가 있기 때문에, 국회는 박근혜 대통령을 충분히 탄핵소추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면 시시비비는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과정에서 가려질 것이다.

    반면 황교안 총리는 직무집행에 있어서 어떤 헌법과 법률을 위배했나. 또, 그 헌법과 법률 위반 혐의는 어떠한 수사 과정을 거쳐 어떻게 드러났나. 송영길 의원만의 법전 속에 있는 '부역죄'란 대체 무슨 죄목인가.

    송영길 의원은 "(황교안 총리가) 2014년 정윤회 국정농단 의혹 사건 당시 법무장관으로서 우병우 당시 민정비서관과 공동으로 사건을 은폐했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송영길 의원에 의해 졸지에 '부역 세력의 핵심'과 공동정범으로 지목된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은 기소는 고사하고 지난 4일에 한 차례 검찰의 소환 조사를 받은 뒤로는 추가 조사 일정조차 잡히지 않았다. '공동 은폐'했다는 우병우 전 수석의 혐의조차 아직 불분명한데, 하물며 황교안 총리임에야.

    헌법재판소법 제40조 1항 후단에 따르면, 탄핵심판은 형사소송에 관한 법령을 준용한다. 그 청구서는 국회가 송달한 소추의결서의 정본으로 갈음하게끔 돼 있다. 즉, 국회의 소추의결서는 탄핵심판에 있어서 공소장의 역할을 한다.

    송영길 의원은 대체 황교안 총리에 대한 소추의결서를 어떻게 초잡을 셈인가.

    "소추대상자 황교안은 2013년 3월 법무부장관을 거쳐 2015년 6월부터 국무총리로 재직하던 중 대통령 박근혜의 탄핵소추를 맞이하게 된 바, 그러할 경우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게 되는데 이는 민주당으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이므로 부역 세력의 핵심으로 보아 동시에 탄핵소추를 하게 된 것이다"라고 쓸 셈인가.

    백번 양보해서 황교안 총리의 정치적 책임을 추궁하는 해임건의권이라면 발동하지 못할 이유도 없겠지만, 헌법과 법률에 위배한 법적 책임을 묻는 탄핵소추권을 오로지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길 수 없다는 정치적 이유 하나만으로 발동하려는 발상을 하는 국회의원이 있으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4선 의원답게 '정치적 상상력'이 풍부한 것인가. 정치적 상상력은 풍부할지 몰라도 '적법절차의 원칙'은 국회의원을 네 번 지내고 인천광역시장까지 했음에도 전혀 모르는가 싶다.

    만일 탄핵소추를 이렇게 요건이야 어찌됐든 마구 발동할 수 있는 것이라면 굳이 유일호 경제부총리를 지목할 이유는 또 무엇인가. 유일호 부총리도 친박(親朴)으로 분류되는 새누리당 재선 의원 출신인데, 송영길 의원의 논리대로라면 '부역 세력'의 일원 아닌가.

  • ▲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의원.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의원.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차제에 유일호 경제부총리와 이준식 사회부총리도 동시에 탄핵소추하고, 최양희 미래창조과학부장관부터 김영석 해양수산부장관까지 정부조직법 제26조 1항이 정한 17개 행정각부의 장을 전부 동시 탄핵해서 아예 무정부상태로 만들어버리는 것은 어떤가. 그러면 혹시 세상이 송영길 의원 뜻대로 돌아갈지도 모르지 않겠는가.

    그렇게 황교안 총리가 대통령권한대행을 하는 게 마음이 들지 않는다면, 애초에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를 찾아 정세균 국회의장에게 총리를 추천해달라고 할 때에는 왜 추천하지 않았나. 그 때 추천했더라면, 추천 절차를 거쳐서 임명됐을 총리가 권한대행을 하게 됐을 것이 아닌가.

    아마 그 때는 일이 하야(下野)라는, 송영길 의원의 마음에 꼭 드는 형태로 진행될 줄 알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 와서 일이 그렇게 돌아갈 것 같지가 않고 탄핵이 불가피하게 되니, 다시 머릿 속에서 정치공학적 셈법을 거듭해 고작 내놓은 게 요건에도 맞지 않는 '대통령~총리 동시 탄핵'인가.

    지금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는 중대한 변곡점을 맞이하고 있다.

    선진 민주주의 국가인 영국이 국왕을 압박해 민주헌장을 쟁취해내기도 하고(1215·대헌장), 국왕의 목을 자르고 공화정을 도입하기도 했다가(1649·찰스 1세 처형), 다시 국왕이 복위하기도 하고(1660·왕정복고), 국왕을 내몰고 다른 국왕을 옹립하기도 했고(1688·명예혁명), 국왕이 스스로 퇴위하기도 하는 등(1936·에드워드 8세 퇴위) 수백 년에 걸쳐 점진적으로 이뤄왔던 과정을 우리나라는 해방 후 70년 만에 압축적으로 경험하고 있다.

    광장에서의 시위로 대통령이 스스로 물러나게 해보기도 했다. 대통령의 궐위에 따른 대통령권한대행 체제도 경험해봤다. 다시 광장에서 시위를 벌여 보다 민주적인 헌법을 만들어보기도 했다. 국회가 대통령을 탄핵소추하는 용단을 내렸지만, 헌법재판소에서 기각당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이제 국회가 대통령을 다시 한 번 탄핵소추하려 하고 있다. 헌법재판소에서 이를 인용해 파면 결정을 내릴지 아니면 다시 한 차례 기각하는 선례를 남길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전자의 경우라면, 이는 다시 한 번 우리 헌정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우는 사례가 된다.

    이럴 때일수록 헌정사에 소중한 선례를 남긴다는 마음으로, 절차적 정당성에 아무런 흠결이 없도록 신경쓰는 자세가 필요하다.

    전혀 요건도 사유도 없는 국무총리의 동시 탄핵을, 오로지 대통령권한대행을 맡게 되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아서 결행한다고 하면, 이는 동시에 이뤄지는 대통령 탄핵소추의 절차적 정당성에까지 먹칠을 하는 행태다.

    이런 걸 일일이 풀어써서 4선 의원에게 알려줘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진실로 송영길 의원이 지난 8·27 전당대회에서 일찌감치 컷오프됐던 것은, 우리 나라와 우리 헌법, 그리고 민주당을 위해 천행(天幸)이었다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