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전통 불살라버리다니… 부족한 능력에도 이름 남길 방법, 달리는 없었을까
  • ▲ 정세균 국회의장.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정세균 국회의장.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에페소스의 아르테미스 신전은 고대 지중해 세계의 최대 건축물 중의 하나였다. 그 경이로움은 이를 '세계 7대 불가사의' 중의 하나로 꼽은 안티파트로스가 서술한 문장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안티파트로스는 "올림피아의 제우스 좌상, 바빌론의 공중정원, 로도스의 거상과 기자의 대(大)피라미드, 거대한 마우솔로스의 영묘를 봤다"면서도 "내가 구름 위로 치솟은 에페소스의 아르테미스 신전을 봤을 때, 모든 다른 불가사의들은 그 빛을 잃었다"고 극찬했다.

    이처럼 고대 세계의 7대 불가사의 가운데서도 으뜸으로 일컬어졌던 아르테미스 신전의 종말은 허무했다. 이오니아의 젊은 양치기 헤로스트라토스가 불을 질러 무너져버린 것이다.

    헤로스트라토스가 밝힌 방화의 이유가 압권이다. 헤로스트라토스는 "역사에 불멸의 이름을 남기고 싶어 가장 아름다운 신전에 불을 질렀다"고 했다.

    헌정 68년 동안 온갖 명암과 굴곡, 부침을 겪어온 우리 국회다. 두 차례 헌정 중단에 따른 해산이라는 아픔도 겪었고, 비대했던 행정권력의 서슬에 눌려 통법부(通法府)라 비아냥을 듣는 수모도 겪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무위원 해임건의안은 찬연히 빛나는 전통이었다. 국민의 직접투표로 선출된 대의대표들이 총의를 모아,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관료사회의 정점 국무위원을 해임하는 것은 삼권분립 체제에서 행정부를 견제하는 입법부의 자존심이었다.

    68년 헌정사 통틀어 몇 번 발동되지 않은 권한이었지만 그 파급력은 막강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두 차례 해임건의안에 분노로 부들부들 떨면서도 해당 장관을 경질했다. "그 사람 잘하고 있다"며 임동원 통일부장관을 감싸던 김대중 대통령도 수용했다. 임기 내내 국회를 무시했던 노무현 대통령도 지독히 아끼던 김두관 행자부장관의 사표를 수리해야만 했다.

    왜소했던 입법부의 위상을 감안하면 68년 동안 해임건의안의 권위를 지켜왔던 것 자체가 우리 헌정사의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꼽을 수 있을 정도다.

    그런데 제20대 국회의 전반기 국회의장 정세균 의원은 지난 9월 23일 밤, 이 아름다운 전통에 불을 질렀다.

    위법무효하게 산회 선포 없이 차수를 변경하고, 교섭단체대표의원과 협의 없이 새로운 의사일정을 일방적으로 잡았다. 원내 최다의석을 가진 정당의 원내대표가 한 번만 의사진행발언을 하게 해달라는 호소도 묵살했다.

    소중히 다뤘어야 할 해임건의안이라는 옥(玉)을 마구 다뤄 실정법 위반이라는 흠이 여기저기에 났다. 대통령이 해임건의안을 수용하지 않을 최적의 명분을 줬다. 다 정세균 의장이 자초한 일이다.

    그것도 모자라 국회의장석에 앉아 "세월호나 어버이연합 둘 중에 하나 내놓으라는데 안 내놔"라며 "맨입으로는 안 되는 거지"라고 태연히 말했다. "역사에 악명을 남기고 싶어 불질렀다"는 헤로스트라토스의 자백과 동격의 발언이다.

    자기자신의 얄랑한 명예욕에 인류의 자산인 아르테미스 신전에 불을 놓은 것처럼, 중립을 지켜야 할 국회의장이 '맨입으로는 안 된다'며 당리당략과 거래·흥정에 정신이 팔려 68년 헌정사의 빛나는 자산을 불살라버렸다.

    추석 방미 일정 중에 사사로운 가족 일정을 잡았다는 의혹, 동부인 초청이 없었는데 배우자를 퍼스트 클래스에까지 태워 동행시켰다는 의혹, 교민간담회에서 시계를 배포해 공직선거법을 위반했다는 의혹, 배우자 관용차에 부착된 H백화점 VIP카드 발급 의혹 등 '먼지'가 풀풀 나고 있지만, 68년 동안 지켜온 국회의 자존심을 스스로 무너뜨렸다는 것에 비하면 약과다.

    애초부터 친노·친문패권세력의 '표 몰아주기'에 힘입어 국회의장이 된 위인(爲人)에 불과하긴 했지만, 꼭 그렇게 해서 헌정사에 이름을 남기고 싶었을까. 6선 의원이 자신의 이름을 남기는 방법이, 젊은 양치기가 신전에 불을 놓은 것처럼, 국회의 소중한 유산에 방화를 하는, 그런 방법밖에 정말 없었을까.

    에페소스 시회(市會)는 헤로스트라토스의 처형을 결정하면서 모방범죄가 일어날까 두려워 "그의 이름을 모든 기록에서 삭제하라"는 기록말살형을 부과했다. 하지만 히오스의 테오폼푸스가 바로 그 사실을 기록하는 바람에 헤로스트라토스의 이름은 악명으로 영원히 역사에 남게 됐다. 지금도 영어로 'Herostratic Fame'이라고 하면 특히 부정적인 행각으로 얻은 악명을 가리킨다.

    국회에 방화를 저지른 정세균 의장의 이름을 모방범죄 방지를 위해 헌정사에서 파내버리고 싶다.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는 "(정세균 의장의 행동은) 헌정 사상 유래없는 작태"라며 "(야당 소속이었던) 김원기·임채정 두 분 국회의장도 이리하진 않았다"고 개탄했다.

    그런데도 정세균 의장이 응분의 대가를 치르지 않으면, 앞으로 국회의장이 스스로 국회에 불을 놓는 모방범죄가 기승을 부려 우리 헌정사의 전통이 돌 한 조각, 풀 한 포기 남기지 않고 잿더미가 될까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