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대위원장 권유부터 당대표 출마 요청까지… 발목 부상에도 쉴 틈이 없다
  • ▲ 국민의당 박주선 국회부의장이 지난달 26일 열린 외통위 국정감사 첫날 회의에서 아킬레스건 파열 사실을 알리고 양해를 구한 뒤 이석하고 있다. ⓒ뉴시스 사진DB
    ▲ 국민의당 박주선 국회부의장이 지난달 26일 열린 외통위 국정감사 첫날 회의에서 아킬레스건 파열 사실을 알리고 양해를 구한 뒤 이석하고 있다. ⓒ뉴시스 사진DB

    협치(協治)라는 단어가 기억조차 가물가물할 정도로 여야 간의 첨예한 대치가 심화되는 가운데, 국민의당 박주선 국회부의장에게 정치권의 기대가 모이고 있다.

    여야는 지난달 23일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장관의 해임건의안이 강행 처리된 이후, 달이 바뀌도록 극한 대치를 이어가는 중이다.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가 2일로 7일째 단식을 이어가고 있으며, 정진석 원내대표도 동조 단식을 하고 있다.

    이를 바라보는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는 "대통령이 '장하다' '잘했다' 하면 (곧바로) 끝날 일"이라고 자극했고, 우상호 원내대표는 이정현 대표의 충정 어린 '국감 복귀' 호소에 대해 "국민의 압력에 굴복한 것"이라고 설익은 '승리 선언'을 했다가 일을 그르쳤다.

    정세균 국회의장은 중립의무를 저버린 원죄(原罪)를 안고 있는데다, 온갖 의혹 제기에 발끈하면서 스스로 정쟁의 일주체가 돼버렸다. 국회의장으로서 사태를 중재할 권위를 이미 상실했다.

    이렇듯 제1당~제2당과 국회의장까지 엉겨붙은 극한 대치를 바라보는 제3당 국민의당의 상황은 어떨까. 당초 정치권에서는 양당의 대치가 길어질수록 국민의당이 '웃을' 기회가 많아질 것으로 봤으나, 작금의 상황은 그렇지가 못하다.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의 경솔했던 언동 때문이다.

    국민의당 박지원 위원장은 지난달 26일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가 무기한 단식에 돌입하자 페이스북을 통해 "푸하하 코메디 개그"라고 평했다.

    여소야대의 20대 국회가 개원할 때 우려하는 시각을 향해 박지원 위원장이 '일하는 국회'의 모범이라며 그토록 극찬했던 13대 국회의 모습은 어떠했었나.

    당시 여당 민정당과 신민당이라는 같은 뿌리에서 나온 야당 평민당~민주당 사이에서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던 것은 공화당이었다. 공화당 김종필 총재(JP)는 중요한 정치 현안이 있을 때마다 전용 메모지를 세로로 세운 뒤 직접 붓을 들어 편지를 쓴 뒤 총재비서실장을 통해 각 당 총재에게 전달했다.

    JP는 "3김 총재를 언론에선 '정치 9단'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는데, 9단들의 정치 방식은 달라야 했다"며 "예의와 격조를 갖춘 글월로 막힌 정국을 뚫어보려고 했다"고 회고했다.

    이게 바로 정치 9단의 방식이고, 캐스팅보트를 쥔 정당의 대표가 취할 길이다. 카운트파트너가 목숨을 건 단식에 돌입하는데 "푸하하 코메디 개그"라며 SNS에 떠오르는대로 휘갈기는 게 3김 중 한 명인 김대중 전 대통령(DJ)으로부터 정치를 배웠다는 박지원 위원장의 방식인가.

    지난달 30일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회의 모두발언에서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의 단식에 당황해서 비난했던 것을 사과한다"고 했지만 만시지탄이라는 비판을 피할 길이 없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국민의당 박주선 국회부의장에게 정가의 기대가 쏠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박주선 부의장은 4선의 중진 의원으로 애초부터 당대표·원내대표 등 뭘 맡아도 잘할 수 있는데도 굳이 국회부의장을 자원했다. "여소야대 20대 국회에서 협치를 이끌어야 할 국회의장단의 책임이 무겁다"는 이유에서였다. 동료 의원들도 압도적인 지지로 박주선 부의장에게 힘을 실어줬다.

    20대 첫 정기국회가 개회할 때부터 박주선 부의장의 존재감은 도드라졌다. 정세균 의장은 국회의장의 정치적 중립 의무를 저버리고 개회사에서 '사드 배치 반대' 등 자신의 속내를 가감없이 드러내, 국회는 개회하자마자 파행을 맞았다.

    결국 이 '개회사 사태'는 박주선 부의장이 의사봉을 쥐게 되면서 비로소 수습될 수 있었다. 11조 원 규모의 여야 합의 추가경정예산안이 적시에 처리될 수 있었던 것은 오롯이 박주선 부의장의 공이었다.

    이번 국회 파행의 원인이 된 김재수 장관 해임건의안 사태 때에도 정세균 의장은 사회권을 넘기지 않으려고 의장석에서 요지부동으로 버티고 있고, 단하(壇下)에서는 새누리당 심재철 국회부의장이 예정대로 사회권을 넘기라며 항의하는 사태가 빚어졌다.

    만일 이 때 서로가 합의해 박주선 부의장에게 사회권을 넘겼더라면 지금 같은 극한 대치가 벌어지기야 했겠느냐는 아쉬움을 토로하는 사람들이 많다.

    단식 중인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는 언론 인터뷰를 통해 "국회의장은 의원들이 선출하는 것"이라고 전제하면서도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여야 모든 의원들로부터 존경받고 있는 박주선 부의장이 의장이 됐으면 좋겠다"고 할 정도다.

    역대 국회를 보면 제1당과 제2당이 모두 과반 의석을 획득하지 못했을 때, 제3당에서 국회의장을 맡은 전례도 있다. 15대 국회 후반기에 한나라당과 국민회의가 모두 과반에 미달하자, 자민련 박준규 의원이 국회의장을 맡았다.

    다만 작금의 정국에서 박주선 부의장에게 기대가 쏠리는 것은 이러한 전례보다도 박주선 부의장의 성품과 인망, 그리고 '일하는 국회'에 대한 확고한 소신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당헌·당규 제·개정위원장으로서 어려운 업무를 잘 처리해 국민의당이 연내에 전당대회를 치를 수 있도록 이끈 박주선 부의장은 지난달 24일 발목 아킬레스건 파열을 당해 26일 수술을 받은 뒤 가료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의료진은 24일 파열 직후 수술을 권유했으나, 박주선 부의장은 26일 국정감사가 시작되는 점을 감안해 수술 일정을 미룬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로 26일 국회 외통위에 휠체어를 타고 나타난 박주선 부의장은 "우리 (국민의)당에 (외통위원이) 둘 뿐인데 수술이 임박해 자리를 이석하려 하니 양해를 구한다"며 "소임을 다하지 못한 부분은 서면질의를 통해 최대한 임하겠다"고 밝혔다.

    부상 중이라 중책(重責)을 맡기에 어려움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박주선 부의장에게는 벌써부터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아 사실상 당의 첫 전당대회를 공정하게 이끌어달라는 권유부터 당대표에 직접 출마해달라는 주문까지 온갖 요청이 쇄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주선 부의장은 일단 부상을 이유로 고사하면서도, 선당후사(先黨後私) 정신에서 지금 당을 위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숙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정치권 관계자는 "비대위원장이나 당대표나 어느 직책이든 박주선 부의장이 맡아줬으면 좋겠다는 여론이 점증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대선을 앞두고 호남 민심이 아직도 가닥을 잡지 못하고 있는데 어떠한 정치적 결단을 하는 것이 지역민의 요구에 부응하는 것인지는 멀리 봐야 한다"고 관측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