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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글 지도에서 살펴본 서울시 전경.
구글이 잘 가린 게 아니라, 미국 군대가 은폐나 엄폐를 잘한 게 아닐까요?
구글이 우리나라의 주요 보안 시설을 가리지 않는다면 '대축척 지도'를 절대로 내줄 수 없습니다.
지난 3월 11일 IBM 코리아에서 열린 '제6차 ICT정책해우소'에서 구글코리아 관계자와 국방부 관계자들 사이에 언쟁이 벌어졌다.
구글코리아 측이 "유독 대한민국에서만 구글 지도 서비스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5000분의 1' 이상의 대축척 지도 데이터를 해외로 반출해달라"는 요구를 하자, 국방부에서 "국가 안보 시설의 위치 정보가 담긴 지도를 함부로 국외 유출할 수는 없다"며 팽팽히 맞서는 모습을 보인 것.
이날 국방부 관계자들은 구글 지도에서도 미국 내 군부대나 CIA 등의 위치는 제대로 보이지 않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북한과 휴전 상태인 특수한 상황을 고려할 때 대한민국 안보 시설의 위치 정보를 기록한 지도 반출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재차 강조했다.
그러나 구글코리아 측은 "CIA 등의 위치가 잘 보이지 않는 것은 구글에서 필터링을 한 게 아니라, 스스로 은폐·엄폐 조치를 잘 했기 때문일 것"이라며 정 안보가 걱정된다면 우리 군에서도 은폐·엄폐를 잘 하면 될 일이라는 논리를 전개했다.
이에 한 국방부 관계자는 "구글 측에서 먼저 국가 안보 시설에 대한 정보 삭제를 약속하지 않는다면 우리 정부가 제작한 지도 데이터를 절대로 건네줄 수 없다"며 강한 불쾌감을 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구글코리아가 국방부에 요구한 자료는 국토교통부 산하 국토지리정보원에서 제작한 '대축척 지도'를 가리킨다. 이는 일종의 실측량 데이터로 우리나라 지형 지물의 정확한 위치와 높이 등을 기록한 정보를 담고 있다.
따라서 구글코리아는 자사의 위성영상지도(구글어스)와 국토부의 지도 데이터를 결합하면 더욱 정밀한 지도 검색 서비스가 가능해질 것으로 보고, 2007년부터 국내 정밀 지도의 반출 여부를 타진해왔다.
당초 '정보 당국'을 통해 은밀히 데이터 반출을 요구해오던 구글코리아는 올해 들어 공개 석상에서 지도 문제를 거론하는 등 보다 적극적인 자세로 돌아선 모습이다.
지난 3월 국방부 관계자와 언쟁을 벌일 정도로 강경한 자세를 내비친 구글은 지난 1일 국토지리정보원에 정식으로 '지도 국외 반출 허가 신청서'를 제출하며 사태를 공론화시켰다. 구글이 9년 만에 처음으로 우리 정부에 지도 반출을 공식 요청했다는 건, 그만큼 실측량 데이터의 필요성이 절실해졌다는 방증이다.
◆ 구글 '신사업' 정착 위해 위치정보 서비스 필수
구글은 국내 지도 데이터가 필요한 가장 큰 이유로 초행길 이용자, 특히 외국인 관광객들의 불편함 해소를 꼽고 있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서 구글맵 서비스를 이용하는 관광객 중에선 "건물 위치가 실제 모습과 일치하지 않는다"며 불편함을 호소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말만 하면 구글맵이 길을 알려주는 차량용 인포테인먼트 플랫폼 '안드로이드 오토'도 국내에선 이용 불가.
또한 국내에선 구글이 SK플래닛으로부터 'T맵 전자지도DB'를 구매해 서비스하고 있지만, '구글닷컴'에선 지도 서비스 자체가 안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구글이 국내 지도 데이터 입수에 공을 들이고 있는 진짜 이유는 대한민국에서만 뒤쳐지고 있는 구글의 '산업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차원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구글맵스에선 자동차 네비게이션, 내부지도, 3D 지도 등의 서비스가 일절 제공되지 않고 있다. 이용자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위치정보'가 부실해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
만약 위치정보 서비스가 앞으로도 계속 '부실한 상태'로 제공된다면, 미래 먹거리 사업으로 불리는 자율주행차나 사물인터넷, 구글글래스, 드론 분야에서 구글은 '한국 시장'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 이를 수도 있다.
타국에 비해 시장 규모는 작지만 세계 최고의 IT인프라를 구축한 대한민국은 글로벌 기업들이 '테스트 베드(Test Bed)'로 첫손에 꼽는 나라 중 하나다. 전반적으로 IT 제품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소비 사이클링'이 빨라, 신제품의 효과와 반응을 알아보려면 한국 시장을 먼저 두드리라는 말이 나올 정도.
구글이 '알파고 대국'을 대한민국에서 최초로 시작한 것도 이같은 배경과 무관치 않다. 따라서 차세대 서비스를 구현하기 위해 '한국 시장'을 놓칠 수 없는 구글 입장에선, 핵심 기술이라 할 수 있는 위치정보 서비스를 반드시 타국과 같은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하는 당면과제를 안고 있는 셈이다.
◆ "군사정보 삭제? NO 형평성 어긋나" 고집
하지만 이같은 절박한 사정과는 달리, 구글은 뻣뻣하기 이를데 없는 태도로 "지도를 달라"는 말만 되풀이 하고 있어 국방부 관계자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실제로 구글코리아의 한 관계자는 국방부 측에 "지도 반출을 허가 받는 문제와 필터링을 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며 "다른 업체들도 다 위성 사진을 팔고 있는데, 구글어스만 필터링해 파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주장을 편 것으로 전해졌다.
이 관계자는 "먼저 측정 데이터를 제공하고,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이스라엘처럼 법을 제정해 서비스를 제한하면 될 것"이라는 제안(?)까지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국방부 관계자는 "지정학적인 안보를 고려할 때 국가 보안 시설을 은폐·엄폐한 지도를 제공하는 게 가장 합리적인 판단이라고 여겨진다"며 "세계 유일의 분단 국가라는 특수한 군사적 대치 상황을 고려하면 '타국과 같은 수준으로 제공해달라'는 구글의 요청은 적절치 않다"고 밝혔다.
구글이 예로 든 이스라엘은 1997년 전자정부를 보호하는 테힐라(TEHILA)를 설립한 뒤 미국 내 유대 인맥을 총동원, 이스라엘 내 군사요충지를 찍은 위성사진을 서비스하지 못하도록 하는 법안 제정을 유도한 바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이스라엘처럼 미국 의회를 압박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 구글의 요구대로 지도 데이터를 해외 서버로 넘기게 되면 사실상 우리 정부의 관리 감독에서 벗어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군사 전문가들은 "구글의 첨단 서비스를 국내에서 100% 구현한다는 점에선 '정밀 지도'의 공유가 장점이 될 수도 있겠지만, 북한과 머리를 맞대고 살고 있는 현실 속에서 적의 타격 정밀도를 높일 수 있는 지도를 노출하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 네이버·SKT, 주요 보안시설 '블라인드' 서비스
IT업계에서도 "구글이 지나친 고집을 부리고 있다"는 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미 대축척 지도 서비스를 하고 있는 네이버와 SK텔레콤 등은 "주요 안보 시설을 가리라"는 국방부의 요구 사항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기 때문.
따라서 측정 데이터의 '전면 개방'을 요구하는 구글의 처사는 여타 IT경쟁사들과 대한민국의 특수성을 깡그리 무시하는 매우 이기적인 행보라는 주장이다.
구글에서 정말로 대한민국 국토의 '실측정 데이터' 서비스를 원한다면 구글어스에 노출된 주요 안보시설을 '필터링' 하면 된다.
또한 대한민국이 계속해서 데이터의 '국외 반출'을 꺼려한다면, 역으로 구글의 데이터 서버를 국내로 들여와 통제를 받으면 그만이다.
하지만 구글은 대중의 '알 권리'와 '무한 공유', 타사와의 '형평성' 등을 내세워 한 나라의 위험 지역을 가리는 일에 반대하고 있다. '서버 이전 문제' 역시 논의의 대상조차 되지 못할 정도로 강한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일각에선 구글이 이처럼 무리수를 두는 이유가 '세금 때문'이라는 주장을 펴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 민감해 하는 군사시설 정보를 차단한 상태로 지도 서비스를 내보내려면 사실상 해당 데이터를 국내에서 관리·감독해야 하는데, 구글의 데이터 서버를 국내로 이전할 경우 막대한 세금을 물어야하기 때문이다.
현행법에선 서버의 '위치'를 '고정사업장'으로 보기 때문에 서버가 국외에 있는 구글의 경우, 아무리 국내에서 천문학적인 매출고를 올린다해도 과세할 법적 근거가 전무한 형편이다.
한 IT전문가는 "아무래도 구글은 자신은 경쟁사들과 다르다는 '특권 인식'을 갖고 있는 듯 하다"며 "한 나라에서 연간 1조원에 달하는 막대한 매출을 기록하면서도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특혜'만 얻으려 하는 것은 글로벌 기업답지 못한 처사"라고 비판했다.
◆ 프랑스·중국·러시아, 정보유출 원천 봉쇄..한국은?
이와 함께 구글의 '이중적인 행태'도 도마 위에 오르는 모습이다.
구글세 부과 문제 등 유럽과 구글간에 벌이지고 있는 갈등 국면은 단순한 세금 문제를 넘어서 '정보 주권'의 문제로 확대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프랑스의 경우 국민의 '개인 정보'에 대해 해외 반출을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키고, 소위 '잊혀질 권리(the right to be forgotten)'를 위반한 구글에 벌금을 부과하는 등 가장 강도 높은 '反구글 정책'을 펼쳐나가고 있다.
유럽연합(EU)의 최고 법원인 유럽사법재판소(ECJ)는 지난해 10월 "유럽과 미국이 체결한 '세이프 하버(Safe Harbour)'는 무효"라며 미국으로의 개인 정보 전송을 불허하는 판결을 내려 구글의 입장을 난처하게 만들었다.
인도 정부도 최근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이유로 "구글의 '스트리트 뷰(Street View)' 어플리케이션 서비스 허용 신청을 거부한다"는 입장을 밝혀 주목을 받았다. 이번 인도 정부의 결정에는 '테러방지'를 우선으로 내세운 국방부의 의견이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가운데 개인 정보는 물론 국가 안보와 관련된 A급 정보까지 해외로 이전해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대한민국에 대한 구글의 '낮은 인식'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라는 지적이다.
손영동 전 국가보안기술연구소장은 "중국과 러시아의 경우는 원천적으로 자국 정보를 해외로 이전할 수 없게끔 하고 있다"며 "특히 중국은 '사이버보안법'을 만들어 개인 정보와 영업 기밀 등 중국에서 생성된 정보는 절대로 외국으로 유출하지 못하도록 막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자국에서 생성된 정보의 해외 유출을 막는 게 세계적인 추세"라고 밝힌 손 전 소장은 "중국 관영 IDC에 서버를 두고 운영하는 애플처럼 구글도 데이터 서버를 서비스하는 로컬에 두고 운영하면 되는데, 왜 굳이 서버를 밖에 두고 어렵게 정보를 반출하려고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