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금원 통해 한화갑 복권해준 노무현 정권의 '의리 천하'...박근혜 정권은?
  • ▲ 성완종 전 의원에 의해 의리파 4인방으로 지목된 새누리당 서청원 최고위원, 최경환 경제부총리, 윤상현 청와대 정무특보, 김태흠 의원(사진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뉴데일리 사진DB
    ▲ 성완종 전 의원에 의해 의리파 4인방으로 지목된 새누리당 서청원 최고위원, 최경환 경제부총리, 윤상현 청와대 정무특보, 김태흠 의원(사진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뉴데일리 사진DB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정치인들을 의리가 있다, 없다로 평가했던 성완종 전 의원. 하지만 그가 세상에 남긴 마지막 말은 역설적으로 '의리의 시대'가 끝났다는 점을 보여줬다는 지적이다.

    15일 채널A의 보도에 따르면, 성완종 전 의원은 지난 7일 가족들이 모인 자리에서 "이번 일을 겪고 보니 누가 의리가 있고 없는지 알겠더라"며 "끈 떨어지고 돈도 없는데 서청원·최경환·윤상현·김태흠만 의리를 지켰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언급된 네 사람은 모두 친박(親朴, 친박근혜)계로 분류되는 새누리당의 현직 의원이다. 서청원 의원은 지난해 7·14 전당대회에서 최고위원으로 선출됐으며, 최경환 의원은 새누리당 원내대표를 거친 뒤 경제부총리로 재직하고 있다. 윤상현 의원은 새누리당 사무총장을 역임한 뒤 현재 청와대 정무특보를 맡고 있으며, 김태흠 의원은 원내대변인을 맡은 바 있다.

    보도에 따르면, 서청원 의원은 6일 고인을 만나 사정을 들어준 뒤 그 사연을 윤상현 의원에게 전달했으며 윤상현 의원은 다시 이를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에게 문자 메시지로 보냈다. 또,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이병기 청와대 비서실장에게, 김태흠 의원은 이완구 국무총리에게 성완종 전 의원의 하소연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성완종 전 의원에 의해 "의리가 있다"는 칭찬(?)을 들은 네 사람은 떨떠름한 상태다. 이들은 관련 보도가 나가자 일제히 "성완종 전 의원의 억울하다는 주장을 단순히 들어주고 전달해준 것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자칫 청탁을 받고 구명(求命) 운동에 나선 것으로 오해받을 수 있기 때문에 최대한 조심스런 태도다.

    홍준표 경남도지사는 16일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성완종 전 의원이) 부탁을 들어준 사람은 의리 있고 좋은 사람이라고 이야기도 했다더라"며 "역시 메모에 등장한 사람은 모두 부탁을 거절한 사람"이라고 규정하기도 했다.

    이처럼 고인의 마지막 칭찬마저 정작 당사자들이 손사래를 치게 된 이유가 뭘까. 성완종 전 의원의 '의리' 개념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인간관계를 통해 국가 시스템이 움직이는 전근대적인 개념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화갑 전 의원은 노무현정권이 2007년에 행한 특별사면·복권 대상에서 당초 제외돼 있었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의 측근인 강금원 전 창신섬유 회장에게 하소연한 결과 복권되는 데 성공했다. 한 전 의원은 "당시 내가 복권된 것은 강 전 회장이 시켜준 것"이라고 말했다.


  • ▲ 한화갑 전 의원을 지난 2007년에 복권시켜준 것으로 알려진 강금원 전 창신섬유 회장(사진 맨앞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 그 왼쪽으로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와 노무현 전 대통령 내외의 모습이 보인다. ⓒ연합뉴스 사진DB
    ▲ 한화갑 전 의원을 지난 2007년에 복권시켜준 것으로 알려진 강금원 전 창신섬유 회장(사진 맨앞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 그 왼쪽으로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와 노무현 전 대통령 내외의 모습이 보인다. ⓒ연합뉴스 사진DB

    이처럼 '의리'에 의해 받을 수 없는 특별사면을 받았던 당사자가 바로 성완종 전 의원이다. 성 전 의원은 2년 전인 2005년 노무현정권에 의해 한 번 사면을 받았기에, 또 다시 사면받을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는 2007년, 언론사에 배포된 사면 대상자 명단에도 없는 '몰래 사면'을 받는데 성공했다.

    마치 '007, 두 번 산다'를 찍는 것처럼 '도저히 받을 수 없는 두 번째 특혜성 사면'을 받아냈던 성완종 전 의원이 습득한 것은 "세상은 법과 원칙이 아닌, 의리와 인정에 따라 움직인다"는 학습 효과였다. 그는 경남기업 분식회계와 관련된 이번 위기에서도 '의리'를 통한 정면 돌파를 모색했다.

    그의 억울한 심경을 담은 하소연은 박근혜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는 전현직 청와대 비서실장에게로, 또 '일인지하 만인지상'이라는 국무총리에게로 전달됐다. 하지만 이번에는 위기에 빠진 그를 구해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의리'를 저버린 자들이 자신으로부터 등을 돌렸다고 판단한 성완종 전 의원은 절망감에 빠져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안타깝지만 마지막까지 착각이었다. 더 이상 세상은 노무현정권이 그러했듯이 의리에 따라 움직이고 인정에 따라 뒤집히는, 그런 인치(人治)의 세상이 아니었다.

    새누리당 이정현 최고위원은 14일 대정부질문에서 "성공한 로비와 실패한 로비, 한 정부는 로비가 잘 통했던 정권이고 또 다른 정부는 로비가 전혀 통하지 않는 정권이라는 이 극명한 차이를 국민은 목도하고 있다"고 이 점을 절묘하게 지적해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신년 기자회견에서 "진정한 소통을 위한 전제조건은 지위고하 막론하고 법이 공정하게 집행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라며 "그럴 때 국민들도 자기만 억울하게 당하지 않는다는 생각에서 안도하면서 살 수 있지, 그냥 이것저것 다 받아들이는 사회가 소통이 잘 된다고 한다면 우리 사회는 점점 왜곡돼지 않겠나"라고 밝힌 바 있다.

    그말대로 이명박~박근혜 정부 하에서 이 사회는 인치(人治)의 사회에서 법치(法治)의 사회로 진화해 가고 있다. 이제는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도, 이병기 현 청와대 비서실장도, 이완구 국무총리도, 그 누구도 죄를 짓고 벌을 받아야 하는 자를 '의리'로 구제해줄 수 없는 세상이 됐다.

    배우 김보성의 식혜 CF로 '으리'는 떴지만, 성완종식 '의리'는 더 이상 우리 사회에서 발붙일 곳이 없다는 것. 고인이 가족을 모아놓고 마지막으로 한 정치인들의 '의리' 평가는 역설적으로 이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