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정부가 규제개혁 내세웠지만 성과는 매우 빈약조직 만들고 동지들과 협력해 규제에 얽힌 실타래 풀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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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왜 우리에게 마거릿 대처가 필요한가]

    규제개혁 드라이브를 건 박근혜 정부,
    마거릿 대처로부터 무엇을 배울 것인가.

    김이석 소장(시장경제제도연구소)

     

    박근혜 정부의 경제 정책도 기조상의 변화가 있었다. 과거에는 무상 복지(실제로는 세금 복지)와 같은 (재)분배 성격의 정책들이 정책적 논의의 주류를 이루었다가 최근 공기업 개혁과 규제개혁 쪽으로 방향을 선회하고 있다.

    대통령이 직접 주재하는 규제개혁 회의가 사상 최초로 중개되는 등, 규제개혁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대통령이 앞장서 드러내고 있다. 이런 최근의 박근혜 정부의 행보는 매우 바람직하고 환영할 일이다.

    다만 우리나라의 거의 모든 정부가 규제개혁을 내세웠지만 실제 성과는 매우 빈약했던 점을 감안하면 규제개혁과 관련해서 대처로부터 무엇을 배워서 규제개혁 정책에서 성공할 것인지 생각해봐야 한다.

     

    ◆ 마거릿 대처의 '미시정치'

    피리(Madsen Pirie)의 책, 《미시정치(Micropolitics): 성공하는 정책 만들기》에 따르면, 같은 보수당 출신 히스는 작은 정부와 시장경제를 내세워 집권에는 성공했지만 노조개혁과 같은 정책의 실행에는 실패했다. 이에 비해 히스와 정당의 대처는 마찬가지 정책적 성향을 내세웠으면서도 성공했다. 이 두 사람의 핵심적 차이는 미시정치의 활용 여부였다는 것이다.

    “미시정치”란 정책의 대중의 지지를 이끌어내면서 정책을 추진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공공임대주택 폐지 정책은 시장가격에 비해 더 저렴하게 임차하고 있던 사람들의 강력한 저항을 불러오고 (재)분배 정책을 중시하는 모든 정치세력들의 결집된 반대를 불러오기 쉽다. 이에 비해 임차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시장가격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자가(自家) 소유의 기회를 주는 것은 이들로부터 커다란 지지를 받을 것이다.

    강성 노조에 대처함에 있어서도 노조가 누리던 특권을 없애고자 시도하는 정책은 노조지도부와 노조원들의 일치된 반발을 불러온다. 그러나 노조민주화를 앞세워 노조지도부의 권한을 줄이고 노조원들의 권한을 늘리는 조치는 노조원들의 정치적 지지를 받을 수 있다. 그런 노조민주화의 일환으로 노조원들의 비밀투표에 의한 투표에 의하지 않고는 파업을 하지 못하게 하는 입법안은 노조지도부로서는 달갑지 않지만 일반 노조원들로부터 환영을 받을 것이다. 노조가입 의무화 조항의 폐지도 노조 가입 여부에 대한 선택권을 사람들에게 돌려주는 것이므로 이것 역시 사람들의 지지를 받기 쉬우면서도 강성 노조로 인한 폐해를 줄이는 기능을 한다.

     

    ◆ 규제개혁에 적용된 '미시정치'

    - 규제에 얽힌 이해관계 = 규제개혁의 경우에도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규제는 이로부터 손해를 보고 있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로부터 이득을 실제로 얻고 있거나 혹은 이득을 얻을 것으로 기대하는 사람들도 있기 마련이다. 아울러 규제권한을 행사하는 사람들은 규제로부터 간접적으로 이득을 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숙박시설에 대한 다양한 규제들이 존재하고 있다고 해보자. 그러면 서울에 오는 중국관광객들이 몰려 서울에 숙박시설이 모자라는 상태라고 하더라도, 오피스텔과 같은 시설들을 숙박시설로 전용해서 중국관광객들의 숙박시설로 사용할 수 없게 된다. 그러면 서울에 있는 기존의 숙박시설들은 더 높은 숙박료를 받을 수 있어 규제의 반사이득을 얻게 된다. 반대로 자신의 주거시설을 영업용 숙박시설로 전용해 사용할 수 없게 된 사람들은 더 가치 있는 용도로 자원을 사용할 수 없게 됨으로써 경제적 손실(장부상의 의미가 아니라 기회비용의 의미에서)을 입게 된다.

    규제는 각종 명분을 등에 업고 이루어지므로 규제와 관련된 이해관계들을 고려하지 않은 규제개혁 정책은 비록 구호는 요란하더라도 실제로 개혁을 해내는 힘을 강력하게 발휘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규제개혁은 많은 정책적 노력과 재정을 투입할 때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흔히 “규제개혁은 정부가 재정을 들이지 않고도 할 수 있다고 한다.” 이는 맞는 말이기도 하지만, 미시정치를 감안하면 틀린 말이기도 하다. 실제 저항을 이겨내고 규제개혁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각 규제들이 어떤 명분과 목적으로 실행되고 있는지, 또 여기에 이해관계는 어떻게 얽혀있는지에 대한 명확한 이해가 전제되어야 하며, 이런 이해관계를 돌파해낼 미시정치적인 해결방안들을 만들고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새로운 방안들을 짜내어야 한다.

    또 똑같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규제 이외의 방법은 없는지에 대한 방안들도 함께 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건축붕괴 사고가 발생하면, 여기에 대해 왜 그런 부실한 건물을 짓게 했느냐는 여론이 비등하게 되고, 당장 규제 법안이 만들어지기 쉽다. 그러나 이런 규제입법 이외에도 다른 대안이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피해 보상을 더욱 엄격하고 정확하게 함으로써 사고에 대비하도록 하게 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아마도 건물주들은 보험에 들 것이고, 보험회사가 행정규제에 비해 오히려 안전에 대한 대비를 더 잘 하게 해줄 수도 있다.

    이는 조직과 조직을 운영할 돈이 들어가는 일이다. 기존의 여러 연구소들이나 단체들과 긴밀한 협력이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수도권 규제와 입지 규제들이 국토균형발전이라는 명분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수도권 집중 현상은 일부는 중앙집권적인 현재의 정치제도의 영향이 있을 것이고 일부는 자연스러운 경제적 현상이기도 하다.) 이 경우 수도권 규제의 폐지는 지방의원들의 반대로 쉽게 성사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수도권 이외의 지역에 (중앙정부에 대한 재정 의존을 줄이는 세원의 양도와 같은) 특정 혜택을 주고 그 대신 수도권 입지 규제를 폐지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할 수만 있다면, 영국에서 공공임대주택의 폐지가 주는 것과 비슷한 경제적 효과를 이끌어낼 수도 있을 것이다.

    - 규제개혁 조직과 사람들 = 따라서 단순히 일회성 회의를 하고 질책을 하는 정도로는 기대하는 규제개혁의 성과를 만들어내기 어렵다. 이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규제를 개혁하는 데 총력을 기울일 의지와 이유를 지닌 사람들로 이루어진 조직이 필요하며, 대통령이 이들에게 힘을 실어줄 필요가 있다.

    그런 다음 이들로 하여금 그동안 규제개혁이 시늉만 냈을 뿐 덩어리 규제가 상존하는 이유를 미시정치적으로 분석하고, 이해관계를 파악한 후, 이를 무력화시키거나 우회함으로써 정치적 지지를 이끌어낼 수 있는 구체적 방안들을 만들고 이 방안들을 시행착오를 통해 더 실행가능한 방안으로 수정해 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럴 듯한 명분 아래 특정 규제들을 만들어 내고 이를 유지할 이유가 있는 사람들이 이미 존재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규제개혁에 성과를 낼수록 자신의 성공도 이룰 수 있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구체적 ‘조직’이 없이 규제개혁에 성공하기는 어렵다.

    - 정치적 동지들과의 협력 = 히스에게 당권에 도전했다가 정치적 실언으로 중도포기한 조지프 키이스는 보수당 내부에 정책연구소를 만들었고 여기에 대처도 참여했었다.(iea는 이 정책연구소의 설립과 운영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이런 연구소는 규제개혁, 공기업 민영화와 같은 정책이 왜 필요한지와 같은 인식을 정치적 동지들이 공유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대처는 자신의 정책의 형성에 이론적 토대를 형성하는 데 많은 공헌을 했던 iea(Institute of Economic Affairs)에 들러 감사를 표한 바 있다.

    대처정부는 결국 이런 곳에서 서로 머리를 맞대고 고심하던 사람들과 함께 공기업 민영화와 같은 어쩌면 규제 개혁에 비해 결코 정치적으로 호락호락한 이슈가 아닌 문제들도 돌파할 수 있었다. 비록 당내에도 무른 사람들(Wets)과 같은 반대파들도 있었지만 결국 자신과 생각을 같이 하는 이 사람들이 공기업 민영화와 노조개혁의 투사들이 되어 공기업 민영화와 노조개혁을 이루어낼 수 있었다.

    이런 점에서 규제개혁에 성공하려면, 청와대와 새누리당, 더 나아가 규제 개혁에 적극적으로 나설 기관들 사이의 긴밀한 협력은 필수적이다. 이들이 정치적 동지로서 규제개혁을 위해 미시정치적 방안들을 만들어내며 투쟁할 때 비로소 덩어리 규제의 혁파와 같은 개혁의 성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 박근혜 정부, '미시정치'로부터 어떤 교훈을?

    대처 서거 1주기를 맞아 현재 우리나라 박근혜 정부가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는 규제 개혁에 우리는 대처의 미시정치로부터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 아마도 영국에서 통했던 실제 미시정치적 방안들이 한국에서는 잘 통하지 않을지 모른다.

    그러나 정치적 지지를 확보하면서 (또 그렇기 때문에 성공할 확률을 높이면서) 목적하는 규제 개혁을 이루어내기 위해서는 대처의 '미시정치'의 시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서 통할 구체적 방법들을 개발해내는 일은 결국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이다. 그 일을 할 사람들을 조직하고 일을 성사시키는 것은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이다.

     

  • ▲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3월 20일 청와대에서 주재한 규제개혁장관회의 및 민관합동규제개혁 점검회의가 7시간 5분 만에 종료됐다. ⓒ 뉴데일리(청와대 제공)
    ▲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3월 20일 청와대에서 주재한 규제개혁장관회의 및 민관합동규제개혁 점검회의가 7시간 5분 만에 종료됐다. ⓒ 뉴데일리(청와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