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남자의 사랑과 죽음
MBC 일일드라마 <구암 허준> 28일에서는 한 남자의 절절한 사랑과 선비의 기개를 지키다가 아깝게 소인배 무리들에게 대역죄인으로 몰려 사약을 받는 애통한 장면이 나온다.
포도청 종사관인 이정명(송재희)은 우연한 기회에 위험에 빠진 예진(박진희)을 구해주고 의녀로 들어가게 해 준다. 그는 헌칠한 키에 선비의 기품을 지녔다. 자신의 임무를 엄격하고 공정하게 다루고 최선을 다하지만 권력에 관심이 없다. 권력의 세계에 있으면서 권력을 탐하지 않는다는 것 자체가 위험이 될 수 있다.
그는 상처하고 목석이 되었다. 그런데 예진이를 보자마자 다시 남자로 돌아온다.하지만 예진이는 이미 마음에 품은 남자기 있어 이리저리 말려도 한 번 마음에 들어와 자리잡은 사랑은 스스로 자라나고 그저 바라보고만 있어야했다.
원래 의녀들은 여자들이 남자한테 진찰 받는 것을 부끄러워 하여 받으려 하지 않고 심지어 죽는 일도 있어 특별히 동녀들을 뽑아서 양성했다. 연산군 때 인물이 좋은 의녀들을 연회 자리에 앉힌 후로 약방기생이라는 이름으로 양반들의 연회에 종종 간다.
예진이는 어쩔 수 없이 위의 명에 따라 참석하지만 목석같이 앉았다가 큰 곤욕을 치른다. 이정명의 도움으로 그 자리를 모면하고 나온다. 이를 비통하고 안타깝게 바라보다가 뒤쫓아 나와 말한다."내가 낭자를 지킬 수 있도록 날 받아 줄 순 없겠소! 당장 받아달라는 것이 아니오.
그저 마음이 닿을 수 있도록 조금만 내게 곁을 주시오!"간곡히 말한다.
이 얼마나 정겨우며 애틋한가! 자신의 간절한 사랑을 무조건 받아달라지 않고 동양화처럼 넉넉한 여백을 두어 마음이 생길 때까지 자신의 사랑을 가슴속에 조용히 품고 기다려준다는 선비의 품위! 다 달라는 것이 아니라 곁을 주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넓은 가슴!
예진이를 지켜보기만 하다가 영혼 깊은 곳에서 솟아 나오는 사랑은 흘러넘쳐 온 몸을 흐르고 흘러 서찰로 이어진다.'몇 날을 주저하고 망설이던 끝에 백지를 앞에 높고..
처음 본 순간부터 한 시도 지울 수도 잊지도 못하고 그리워해 왔소.
내 마음을 전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곁에 두지 못하는 안타까운 마음에 이토록 숨이 막히지 않을 것이오.
그저 먼 발치서 바라보기만 해도 낭자를 지켜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내 그리움을 가슴에 삭혀야 했소.
막막한 그리움으로 그칠 거라 예감하지만 아무것도 기대해선 안된다는 것 알면서도 만나고 싶은 간절한 마음 어쩌지 못하겠소!'남자의사랑이 어찌 이리 비단결처럼 고울 수 있는가! 아침 이슬처럼 청초한가!
강렬하고 파도처럼 거침없고 강렬함은 없지만 장 맛처럼 오래 되어 삭히고 삭혀 변할 수 없는 깊고 진한 사랑이다. 별꽃처럼 초롱초롱하게 빛나는 마음으로 바라보는가?
온갖 이벤트와 바람에 지나지 않는 멋진 말이 넘쳐나고 기다림으로 숙성시키면서 불순물을 걸려낼 새도 없이 잠깐 일어나는 포말처럼 솟구쳤다가 사라지는 감정과 즉흥적인 감각으로 쉽게 만났다가 기다림이 없었으니 즉시 헤어질 수 밖에 없는 불안한 사랑과 얼마나 다른가?
예진은 고민하다가 만나기로 한 나루터를 향해 걸어간다. 가장 고운 모습으로!
하지만 이정명은 친구의 살인을 밣혀내려다가 오히려 대역죄인으로 몰린다. 같이 있다가 놀라는 허준(김주혁)에게 담담히 말한다."내가 반역을 했네. 지금 세상에 권력을 탐하는 무리를 따르지 않는 것도 반역이지!
가세!"의녀 중에 하는 일이 대역죄인이 마실 사약을 가져가는 끔직한 일도 있다.
이정명은 허준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알리지 말라고 했는데 예진이한테 그 일이 떨어진다.
사약을 받는 현장에서 마주치게 된 두 사람! 예진이는 경악을 하고 이정명은 그저 안타깝고 미안할 뿐이다.
온 몸은 고문으로 핏투성이지만 흐트러짐없이 꼿꼿한 자세와 빛나는 눈으로 사약을 받는다."아버님 불효 소자를 용서해 주십시오!
아버님 가르침을 받아 선비로 올곧게 살자고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세상을 하직합니다.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움이 없으나 덕은 없었습니다. 소자를 용서하십시오!"사약 받기 전에 진심이 담긴 깊은 눈길로 예진이를 그윽히 바라보며 속으로 말한다.
'미안하오! 지켜주겠다고 하고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하오.
낭자의 마음 한 자락이라도 잡기를 원했으나 이젠 아니오.
내 허망한 죽음으로 고통 받지 말기 바라오.
우리 인연이 아무 것도 아니기를 간절히 바라오!'흔치 않은 선비의 덕을 갖고 있는 사람이 죽는 것이 안타깝고 홀홀단신의 외로운 자신을 그리도 귀히 여겨 주어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든든한 사람을 잃게 된 것이 그저 안타까워 에진은 한 없이 눈물을 흘린다.
외로운 여인을 따듯이 품어주고,세상을 밝히는 사람들의 든든한 친구로 남아 있어야 하거늘 어찌 그리도 허망하게 죽는단 말인가?
잠깐 나왔지만 이정명역을 맡은 송재희는 선비의 꺾이지 않는 지조와 한 여인을 향한 난초같이 그윽한 사랑을 깊게 각인시켜 주었다.





